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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의 해: 신앙에 물주기 - 말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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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3 ㅣ No.598

[신앙의 해 특집] 신앙에 물주기 - 말씀 편



올해는 교황청이 선포한 ‘신앙의 해’입니다. 계간 <평신도>에서는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고 굳건한 믿음의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신앙의 해 특집 - 신앙에 물주기’ 코너를 마련 했습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말씀과 전례, 기도와 나눔을 통해 성장합니다.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님의 연재로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말씀에 더 가까워지고, 현존하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지 알아봅니다.

‘신앙의 해 특집 - 신앙에 물주기’ 글 싣는 순서


* 봄 - 말씀 편
* 여름 - 기도 편
* 가을 - 전례 편
* 겨울 - 나눔 편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과 친교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구약에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신약에서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을 당신과의 친교에로 초대하십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계시헌장」 2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를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과 사귀시며,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들이신다.”

이런 하느님의 초대에 합당하게 응답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해서 그분과의 친교 안에 머무르게 될 때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인간의 말도 나름대로 힘이 있습니다. 그럴진대 전능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야 얼마나 더 큰 능력이 있겠습니까?

그분의 말씀은 무에서 유를 이루는 창조의 말씀(시편 33,9 참조)이고, 그분이 뜻하시는 바를 성취하는 능력의 말씀(이사 55,10-11 참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신앙의 불꽃이 일어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사도 바오로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이 아무리 엄청난 능력을 지닌다고 해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능력이 발휘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자식이 안 받아들이면 그 사랑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할 때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신앙을 심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루카 8,4-8 참조)가 바로 그런 점을 강조합니다. 길에 떨어진 씨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짓밟혀 싹도 못 트고 죽어버리고, 바위에 떨어진 씨나 가시덤불 한가운데 떨어진 씨는 조금 자라다가 죽어버리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비유에서 씨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길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악의 세력의 방해를 받아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바위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신앙의 뿌리가 없어서 시련이 닥치면 신앙을 잃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지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인생 걱정에 짓눌리고 재물과 쾌락에 마음이 뺏겨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루카 8,15)입니다.

성경에는 ‘좋은 땅’이 된 사람들이 여럿 소개됩니다. 그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분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처녀의 몸으로 구세주를 잉태할 것이라는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런 순종의 응답이 있었기에 구세주가 세상에 오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열린 자세로 듣고 마음에 간직할 때 사랑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발치에 앉아 당신의 말씀을 듣고 있던 마리아가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2)고 칭찬하십니다.

하느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우리 믿음이 시작되고 거듭 새롭게 되기 때문에 미사의 전반부는 성경 말씀을 듣는 ‘말씀 전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사 중에 봉독되는 독서와 복음 말씀을 귀담아 듣고 마음에 간직한다면 영성체 때 주님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은 루카복음서가 전하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24,13-35)에서 암시됩니다.

두 제자는 자신들이 큰 기대를 걸었던 스승 예수님이 너무도 허망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낙담과 절망에 가득 차서 예루살렘을 등지고 엠마오로 떠납니다.

그런데 길을 가던 두 제자에게 낯선 나그네가 다가와 성경을 뜻풀이해주면서 메시아는 고난을 겪고 나서 영광에 이른다는 것을 설명해줍니다. 엠마오에 도착한 두 제자는 그를 초청하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됩니다. 식사 중에 낯선 나그네가 그들에게 빵을 떼어줄 때 그들의 눈이 열려서 그분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알아봅니다. 그 순간에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사라지십니다.

그러자 두 제자는 서로 이렇게 말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뜻풀이해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길에서 나그네가 성경을 뜻풀이해준 것은 말씀 전례를, 빵을 떼어 나주어 준 것은 성찬의 전례를 암시합니다. 우리 역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처럼 말씀 전례에서 성경 말씀을 귀담아 듣고서 마음이 열리게 되면, 성찬 전례 때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말씀 전례에서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잘 준비된 사람은 영성체를 통해 주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미사 전에 그날의 독서와 복음을 미리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5분 정도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어서 10분 동안 말씀을 읽고 새기는 시간을 갖는다면 미사 중에 봉독되는 성경 말씀이 귀에 더 잘 들어와 우리 마음을 움직여줄 것입니다. 그러면 성체를 영하면서 주님의 현존을 훨씬 더 잘 감지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도 성경을 옆에 두고 자주 읽고, 묵상하며, 필사를 하는 것을 생활화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자주 성경 말씀을 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 말씀이 내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때가 바로 문자로 된 성경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순간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이 말한 대로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가깝게 대하여 그리스도와 더욱 가까워져 그분이 주시는 행복을 충만하게 누리는 신앙인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역경 속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평신도, 제39호(2013년 봄),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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