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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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24: 예수님과의 만남을 향한 데레사의 여정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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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05 ㅣ No.591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24) 예수님과의 만남을 향한 데레사의 여정 ⑭


‘천상 신랑’이신 예수님과 사랑으로 일치



그리스도와 인간을 그분의 정배로 묘사한 모자이크 (마드리드의 성녀 카타리나 성당).


예수님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다양한 상징들

한 사람이 다른 그 누군가와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는 그가 그 사람을 어떤 이미지로 바라보고 인식하는가 하는 점과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고 고백하는가 하는 것은 내가 그분과 맺고 있는 관계를 드러내는 시금석(試金石)과도 같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당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제자들에게 물어보신 바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이 물음은 2000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물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심리학의 도움에 힘입어 우리는 부부의 관계가 단순히 연인 관계 이상으로 다양한 관계를 내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친구가 되기도 하고 엄마나 아빠가 돼 주기도 하며 오빠나 누이가 돼 주기도 합니다. 이런 다양한 관계를 교류하는 부부는 그만큼 풍요로운 인격적 관계를 누리며 이성적 매력이 다하더라도 변함없이 서로를 동반하며 건강한 부부 관계를 이루어갑니다.

하느님과 인간 간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처음 하느님을 알게 됐을 때 통상 우리는 그분을 단순히 추상적 진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무르익어 가면서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구체적 삶 속에 동반하시는 ‘벗’으로 받아들이며, 그분 말씀을 통해 진리의 길로 나아가면서 그분을 우리의 참된 ‘스승’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또한 이 관계가 무르익어가면서 이제 그분을 내 인생의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며, 그분과의 깊은 사랑의 교감을 나누면서는 그분을 나의 ‘정배’로 고백하게 됩니다. 과연 여러분은 지금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받아들이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신부되기 프로젝트

성녀 데레사는 예수님과 다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녀는 예수님을 자신의 ‘신랑’, ‘스승’, ‘임금님’, ‘심판관’, ‘성자’ 등으로 고백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만큼 예수님과 풍부한 관계를 맺었다는 말입니다. 그중에서 젊은 시절부터 성녀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는 ‘신랑’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성녀는 자신의 작품 곳곳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신랑이라는 사실을 이미 대전제로 한 상태에서 그 신랑과 우리가 어떻게 더 깊은 사랑의 관계를 엮어갈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구구절절이 가르쳤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를 향한 성녀의 영적 가르침은 천상 신랑이신 예수님의 품격에 맞갖은 천상 신부 되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선상에서 성녀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영성생활의 궁극 목표가 다름 아닌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사랑으로 깊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목표를 ‘결혼’이라는 인간적인 상징으로 풀어 제시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과 우리가 누리게 될 일치는 남녀 간에 누리는 일시적이고 육체적인 일치를 훨씬 초월합니다만, ‘결혼’이라는 비유 이상으로 이런 깊은 일치를 담아낼 수 없는 언어의 한계로 인해, 성녀는 이 비유를 바탕으로 우리가 하느님, 구체적으로는 예수님과 누리게 될 일치를 ‘영적 결혼’이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신랑’으로 인식하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곧 그분의 ‘신부’라고 하는 인간 존재의 고상한 품위를 간접적으로 드러내 줍니다. 그리고 그분의 신부로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이에 대해 성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금실이 좋은 여자는 남편이 근심할 때 슬픈 얼굴을 하고, 남편이 기뻐할 때 자기는 별로 그렇지 않더라도 기쁜 기색을 합니다.… 마음이 기쁘거들랑 부활하신 당신을 우러러보십시오. 무덤을 뛰쳐나오신 그 모습은 상상만 하여도 기쁨이 벅차올 것입니다”(「완덕의 길」 42,4). 이처럼 성녀가 소개하는 ‘천상 신랑’ 예수님과의 사랑의 길은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면에서 그분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해주는 지름길입니다.


성적 정체성에 따른 고유한 예수님 사랑

그러나 주님을 ‘신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처한 성(性) 정체성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열심한 여성 신자들은 남성으로 강생하신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성 신자들이 남성이신 예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신랑’으로 여기는 것은 인간적인 조건상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남성, 여성 모두에게 존재의 근원이자 목표요 그 어떤 인간적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성적 조건상 남성은 그게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성의 세계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이 본성적인 혜택을 좀 더 누린다고들 합니다.

필자 역시 이 화두를 갖고 많은 고심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남성은 남성이 갖는 고유한 성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그 나름의 지름길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영성생활의 목표를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는 것’,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 한다면, 남성으로 강생하셔서 느끼셨을 희로애락, 십자가 길을 걸으며 하셨을 고뇌를 그분과 같은 성을 공유하는 남성은 여성보다 본능적으로 더 직접 느끼고 그분과 동화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은 여성대로, 남성은 남성대로 고유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각자 주님을 향한 사랑의 길에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건은 얼마나 예수님을 내 사랑의 1순위로 받아들이고 관계를 맺는가 하는 점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예수님을 여러분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랑으로 고백하며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평화신문, 2014년 8월 3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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