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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자살자를 위해서도 미사를 봉헌해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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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30 ㅣ No.330

[사서함 16호] 자살자를 위해서도 미사를 봉헌해 주는가

 

 

최근 연이은 젊은이들의 분신 자살은 우리를 매우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우리 신자들도 있어 슬픔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교회의 가르침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살은 크나큰 죄악이며, 그래서 자살자를 위해선 장례 미사도 드려 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분신 자살자를 위해 장례 미사를 봉헌해 주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요?

 

 

요즈음 여러 젊은이들이 분신 자살을 했습니다. 그들 중 몇 년 전에 죽은 조성만 군이나 최근에 죽은 박승희 양은 우리 천주교 신자임이 밝혀져 많은 신자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살자들이 현사회의 불의를 죽음으로 고발한 열사로 추앙받는 분위기 속에서 또 다른 우리 신자 젊은이들 중에도, “자살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지만 자살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고, 어떤 경우 삶에 매달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미덕이 아니겠느냐?”란 생각과 함께 심정적 동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 신자들의 인간적 사고 방식 입니다. 신자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적 사고와 행동이 아니라 신앙에 의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구도자의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신앙심이란 주일 미사 때에만 발휘되는 감정적 요소가 아닙니다. 우리의 전생활 중에 감정뿐 아니라 의지, 지성, 정서, 생각, 행위 등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다 동원되는 전인격적 삶 자체가 바로 신앙 생활이어야 합니다.

 

또한 천주교 신자는 천주교식의 사고와 생활 방식을 자유로이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모든 행위를 (1) 그리스도교적 양심대로, (2) 성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법에 비추어, (3) 천주교의 거룩한 전통과 그 교회법을 따라, (4) 인간 모두에게 주어진 자연 도덕률을 지키며 살겠다고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 바로 천주교 신자들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이러한 모든 생활 규범을 전달하고 해설해 주는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따르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비윤리적 산아 제한, 불임 수술, 낙태, 자살, 뇌물 수수, 탈세, 혼전 혼외 정사, 이혼 등등 교회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지요!

 

신자들은 자살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역시 참된 신앙의 안목으로 겸손하게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더 이상 비신자들처럼 순수 인간적, 이성적 사고 방식으로써가 아니라 모든 것을 하느님과 연관시켜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 시초부터 자살을 엄격히 단죄해 온 것은, 무엇보다 먼저 자살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 질서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셔서 그를 극진히 사랑하고 존중하십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하느님의 절대적 자유를 나누어 받아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또한 각 사람은 유일신이신 하느님을 닮아 제각각 단 하나의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하느님은 각 사람마다 그에게만 해당되는 개인적 과제와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란 점입니다. 피조물은 그 조물주에게 종속된 존재이며, 따라서 그 창조주가 마련해 준 존재 질서에 매여 있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존재 절서를 극명하게 거스르는 것이 바로 자살입니다. 자신에게 생명을 준 창조주의 의도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기 생명에 대한 그분의 주권을 배척하는 일입니다. 인간에게는 자유가 “주어졌다”고 했는데, 그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주어진 자유, 제한적인 자유”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존재의 시작과 종말에 대해서만은 자유가 없습니다. 다른 모든 죄와는 달리 자살의 죄는 회개할 나 자신이 이미 없으므로 회개의 가능성조차 남겨지지 않는 결정적인 죄악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역동적인 존재, 즉 성장, 발전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자신을 보호하며 자기 발전을 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보호하며 그 생명에 대한 모든 위협을 물리치는 일은 자기 발전, 자아 실현의 기반을 보호하는 일이며, 따라서 자살은 이러한 자아 실현의 가능성 자체를 잃어버리는 일입니다.

 

또한 우리 각 사람은 이 우주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 중 하나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각 사람은 공동체에 주어진 존재이므로 자살은 그가 속한 공동체를 거부하는 것이고 공동체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인간적인 안목에서 보아 아무리 비천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은 그에게 그만의 소명을 주어 살아갈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는 그 소명을 통해서 인류 가족의 역사 증에 어떤 기여를 하도록 불림받은 존재인 것입니다. 자살은 이러한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소명을 결정적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어떤 자살의 경우, 그의 죽음이 공동체에 별 손실이 없어 보이는 죽음도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람의 가치를 실리와 기능 면에서 파악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 이미 가치입니다. 또한 그런 사람은 자살자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이 사회에 생명 경시 사상을 심화시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분신 자살은 고통, 절망 등 개인적인 동기에 의한 통상적인 자살이라기보다 중대한 공공의 불의에 대한 항거와 고발을 위한 자살이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이러한 자살이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어떤 사실이 중대한 공공의 불의에 해당되느냐 하는 판단의 문제입니다. 중대성 여부, 공공성 여부, 본 의미에서의 불의 여부에 대한 주관적, 자의적 판단은 곤란합니다. 대다수의 국민적 공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둘째, 그 불의를 종식시킬 다른 모든 적극적 활동이 먼저 시도되었어야 합니다. 생명의 희생은 그 다음입니다. 셋째, 다른 모든 종류의 활동이 시도된 후 이제 남은 것이라곤 내 목숨이 아니라 남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방법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넷째, 자신의 죽음이 최선이라는 확신과 그에 대한 그 사회 구성원의 공감이 확실할 때입니다. 즉 그의 죽음을 통해서 한 사람의 죽음보다 더 중대한 해악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오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조건들을 채우기란 실상 매우 어렵습니다. 그만큼 생명은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렇게 고귀한 인간 생명도 이러한 조건들이 채워지면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인간 생명은 절대적 최고 가치가 아니라 그보다 더 고귀한 가치가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인가를 판단하는 일은 결코 한 개인, 한 집단, 한 시대의 가치관에 맡겨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온 인류가 영원히 추구해야 하는, 생명보다 소중한 가치인가, 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서 내 생명을 버려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일에 있어 오늘의 젊은이들은 참으로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독선과 아집에 빠져 만사를 자기만의 좁은 시야로 판단하여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볼 때 참으로 서글픈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온갖 사회악, 사회적 조작의 세력에 대해서는 성인들의 책임이 참으로 크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 젊은이들이 저지르고 있는 자살의 모든 책임이 다 그들 젊은이들에게 돌아간다고 볼 수는 없으리라 믿습니다. 어떤 행위가 죄가 된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 자체의 성격뿐 아니라 그 행위가 이루어진 정황 및 행위자가 어떤 지향으로 그 행동을 했는지, 나아가서 그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 그가 알고 있었는지, 그 행위가 행위자의 자발적 의욕 행위인지를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젊은이들의 분신이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책임이요 죄악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기억해야 할것은 자살의 책임이 감해질 요소는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가 자살을 강요당한 것이 아닌 이상 자살을 결단한 그의 자유 의지는 작용했고, 따라서 그 자신의 중대한 책임과 죄악은 면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법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추문을 줄 위험이 있는 자살 같은 죄악에 대해서 그가 숨을 거두기 전 참회했다는 표시가 없을 경우 장례 미사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매 경우마다 교구장 주교님의 판단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경향잡지, 1991년 7월호, 소병욱 프란치스꼬(대구 황금동본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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