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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의 해6: 사랑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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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7 ㅣ No.1202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의 해] 사랑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1964년 미국의 아동문학가 셸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이 쓴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한 소년을 사랑했던 나무 한 그루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전해 줍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언제나 한 그루 나무 곁에 머물며 나무와 함께 놀았습니다.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어 쓰고, 가지를 엮어 그네뛰기도 하였습니다. 나무가 주는 사과를 먹고, 나무 그늘 밑에 누워 단잠을 자기도 했지요. 소년은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소년이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아주 가끔씩 무엇인가 필요할 때만 소년은 나무 곁에 와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나무는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어 주었습니다. 돈을 벌 수 있도록 사과 열매를 소년에게 내어 주고, 집을 지을 수 있게 가지들을 잘라 주고,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소년에게 줄기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나무는 소년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소년이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가 나무를 찾아왔을 때, 나무는 이제 아무 것도 내어 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미안해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된 소년은 그 나무 밑동에 앉아 편안하게 쉬었습니다. 이 동화는 다음의 말로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사랑의 찬가’(1코린 13,1-13)에서 드러난 사랑의 특성은, 앞선 동화가 보여 주듯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나무는 바보 같았습니다. 자신의 것을 온전히 소년에게 내어 주다가 결국 볼품없이 늙어 버린 밑동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소년에게 쉴 자리를 내어 주는 바보 같은 나무. 이런 사랑이 과연 가능할까요?

 

사실 바오로 사도가 언급한 이 성경 구절은 많은 오해를 샀습니다. 교회 내 많은 주석가들과 신학자들은 사랑이 오직 타인만을 사랑해야 하는 절대적 이타주의가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행복도 함께 추구해야 하는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지요. 이 논쟁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종종 마주할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라고? 그럼 난? 내 행복은 뭐가 되는 거지? 주는 것이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지금 당장 내가 먹고 쉴 수 있는 곳도 없는데?’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언제나 타인에 대한 사랑과 자신에 대한 사랑을 저울질합니다. 하지만 이 싸움은 어떤 것을 선택함으로써 다른 어떤 것을 배제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 안에 이기적인 욕구를 비워 내고 그 안에 하느님의 사랑을 가득 채우려는 우리의 노력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각자의 욕구에 따라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먹고 싶은 욕구, 자고 싶은 욕구,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욕구 등 이러한 욕구가 없다면 우리의 행동은 아무 이유 없는 행위에 머물고 말겠지요.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이처럼 항상 욕구와 함께 움직입니다. 하지만 이 욕구만을 따라 행동한다면, 본능에 충실한 동물과 다를 바 없겠지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이 힘, 바로 ‘욕구’를 마주해야 합니다. 이 욕구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욕구인지, 아니면 진정 내가 바라고 열망하는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자신의 욕구를 사심 없이 바라볼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자신의 욕구에 하느님의 사랑이 스며들도록 마음을 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나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만을 위해 힘쓰지 않고 타인과 하느님께 헌신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행복하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합니다. “사랑이 내 안에서 활동하면, 성령이 내 안에서 사랑으로 샘솟으면, 일순간 나 자신과 지금 이 순간 내게 떠오르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면 그저 사랑이 흐를 뿐이고, 나 자신을 내어 놓게 됩니다. … 그러면 내 안에서 사랑이 샘솟고, 나 자신을 잊고 타인에게 헌신하는 체험을 거듭하게 됩니다. 이것은 행복의 순간이며, 속 깊은 하느님 체험의 찰나입니다.”(《사랑,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 분도출판사, 171쪽)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마주하는 연습, 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또 행복하게 하신다는 믿음으로 그분께 우리 자신을 내어 놓는 연습, 이것이 바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랑’의 능력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8년 6월호, 사목국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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