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3일 (일)
(녹) 연중 제12주일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 - 사도 바오로의 말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95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 - 사도 바오로의 말씀

 

 

그리스도인의 소명인 영광의 찬미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이 지향한 거룩함의 빛깔은 ‘영광의 찬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하느님을 향해 가장 아름다운 음을 내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영원히 부르는 영혼이 되겠다는 것이 복녀 엘리사벳이 살아생전 그토록 원했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면 복녀 엘리사벳이 되고자 했던, 자신의 소명이라고 여긴 이 ‘영광의 찬미’란 어떤 것일까요? 복녀가 쓴 영적 작품 중 《마지막 피정》의 열넷째 날 36번에서 복녀는 필리 3,8을 통해 이를 풀어 나갔습니다. “나는 목표를 향해 곧바로 달려갑니다. …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를 부르시는 천상 소명의 상을 향해서.” 그리고 이 선상에서 다시 에페 1,11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자주 이 소명의 위대함을 계시하셨습니다. … 우리는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예정되었는데, 이는 우리가 그분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순수하고 사심 없는 영혼

 

복녀 엘리사벳은 자신의 작품 《믿음 안에서 천국》 중 제10일 둘째 기도에서 ‘영광의 찬미’가 되고자 하는 영혼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합니다. “영광의 찬미는 하느님 안에 거하는 영혼이며, 순수하고 사심 없는 사랑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감미로움 안에서 자신을 찾지 않는 영혼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사는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빛으로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려고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심私心이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은 하느님이야말로 절대 진리이시며, 그 앞에 선 우리는 허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고 자신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심 없이 하느님을 사랑할 줄 압니다.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복녀는 이 주제를 계속 풀어 가면서 ‘영광의 찬미’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에, 하느님의 뜻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내면의 힘을 잘 조율하는 영혼

 

두 번째로, 복녀 엘리사벳은 ‘영광의 찬미’는 성령께서 신비롭게 연주하는 가야금처럼 침묵하는 영혼이며, 성령께서 그 가야금에서 신묘한 천상 화음을 이끌어내실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유순한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일상에서 겪는 고통마저도 아주 아름다운 천상 화음을 만들어 내기 위한 하나의 ‘현(絃)’으로도 복녀는 보았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늘 즐겁고 기쁜 일만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일상이 지루하고 힘겹고 슬픕니다. 심지어 절망스러운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영혼은 그 모든 순간에 하느님께서 우리 자신의 영혼을 연주하실 수 있도록, 그래서 그 순간이 모두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간이 되도록, 온전히 그분의 연주에 자신을 맡겨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찬미’가 되고자 하는 영혼은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 심지어 절망스러운 순간마저도 하느님께 더욱 감미로운 소리를 내어 드림으로써 그분을 감동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순수한 눈을 지닌 침묵하는 영혼

 

세 번째로, 복녀 엘리사벳은 《마지막 피정》 중 둘째 날에서 ‘영광의 찬미’와 ‘침묵’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찬미하는 영혼이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전했습니다. 여기서 복녀는 시편 118,109(“내 영혼은 언제나 내 손 안에 있습니다” 대중 라틴말 성경)을 인용하면서, 침묵은 평화 자체이신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조율하고 통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복녀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또한 그것은 하느님의 빛으로 우리를 비추어 주는 ‘순수한 눈’을 갖는 것이기도 합니다.” 영광의 찬미를 지향하는 영혼은 침묵하는 영혼이고, 침묵하는 영혼은, 곧 하느님의 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모든 사건과 사물, 사람을 바라보는 영혼의 ‘순수한 눈’을 갖는 것이라고 복녀는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 ‘순수한 눈’이란 무엇일까요? 복녀는 다른 곳에서 이 순수한 눈이란 다름 아닌 우리가 가져야 하는 ‘지향의 순수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빛 속에서 순수한 지향을 갖고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 비로소 그 사람과 사물 그리고 나는 서로에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실현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렇게 쓰일 때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위에 자신을 건설하는 영혼

 

네 번째로, 복녀 엘리사벳은 콜로 2,6-7을 묵상하면서 ‘영광의 찬미’가 되고자 하는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야 하며, 그분 안에 뿌리내리고, 그분 위에 자기 존재를 건설하며, 믿음 안에서 굳건해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나아가서 끊임없이 감사하면서 그분 안에서 더욱더 성장하도록 가르칩니다. 복녀 엘리사벳에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걷는 것이란, “우리가 지나는 일상의 매 순간마다 그분 안에 뿌리내릴 만큼 아주 깊이 들어가기 위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자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고 또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 복녀 엘리사벳은 그리스도 위에 자기 존재를 건설한다는 것에 대해, “바위 위로 나를 들어 올리시리라. 나를 둘러싼 원수들 위로 이제 내 머리를 치켜들어”(시편 27,5-6)라는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풀어냈습니다. 이는 영혼이 자기 자신, 자신의 감각과 본성, 위로와 고통 위로 자신을 들어 높여 자기 존재를 뿌리내려야 할 굳센 바위, 곧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 바위를 바탕으로 우리 존재가 형성되어야 하고 우리 삶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2월호(통권 477호), 윤주현 베네딕토]

 

※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은 2016년 10월 16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횡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1,62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