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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에디트 슈타인의 창세 1,26-29에 대한 인간학적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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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92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에디트 슈타인의 창세 1,26-29에 대한 인간학적 묵상

 

 

철학의 눈으로 성경을 묵상하다

 

성녀 에디트 슈타인은 유다교 환경에서 자라 훗날 유다교의 한계를 경험한 후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인류를 위한 봉사’라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삶 전체를 투신하며 철학을 통해 절대 진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현상학을 연구하면서 종교 현상에 눈을 뜨게 되었고 아빌라의 대 데레사의 《자서전》을 통해 가톨릭 신앙에 귀의하게 됩니다.

 

세례를 받은 에디트는 철학이라는 도구를 바탕으로 가톨릭 교회의 신앙을 다방면에서 재해석해 동시대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노력에는 성경과 관련된 주제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전문 학술서를 쓰진 않았지만, 에디트는 성경에 담겨 있는 구원 역사를 통찰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깨달은 성경의 메시지들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많은 작품과 논문에 담아냈습니다.

 

 

창세 1,26-29에 대한 에디트의 묵상

 

성녀는 현상학뿐만 아니라 20세기 초반에 꽃피기 시작한 철학적 인간학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갖게 된 이후 자연스레 ‘신앙 안에서 본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구원의 진리를 담고 있는 성경은 인간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등의 문제에 관심을 쏟게 되었습니다.

 

성녀가 성경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첫 번째 진리는 하느님의 인간 창조(창세 1,26-29)에 담긴 메시지였습니다. 성녀는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자신의 책에서 이 점을 깊이 성찰했습니다. 성녀는 창세 1,26에 나오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묵상하는 가운데 인간의 기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유래한 그분의 피조물’입니다.

 

성녀는 성경에 따른 이 정의에서 인간에 대한 두 가지 원리, 곧 ‘개별성의 원리’와 ‘인류의 단일함’을 끌어냈습니다. 이 두 원리에서 성녀는 모든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인격적 사랑의 바탕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성녀가 말하는 인간의 고유한 개별성(個別性)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손수 창조하셨다는 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당신의 품격을 드러내는 당신의 모습을 각인시켜 주셨습니다. 성녀는 이 하느님의 모상을 인간이 완성시켜야 할 과제로 보았습니다.

 

 

인간의 고유한 개별성에 대한 성경의 근거

 

성녀는 자신의 저서 《유한한 존재와 영원한 존재》에서 한 인간의 고유한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이 개별성의 근거를 성경에서 제시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많은 근거를 우리에게 제공해 줍니다. … 예를 들어, 시편 33,15(“그들의 마음을 다 빚으시고 그들의 모든 행위를 헤아리시는 분”)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각 사람의 마음을 개별적으로 만드셨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각각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에서 유래했으며 특별한 인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성녀는 같은 선상에서 묵시 2,17(“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숨겨진 만나를 주고 흰 돌도 주겠다. 그 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다”)을 거론하는 가운데, 이 구절에서 말하는 ‘새 이름’은 그 이름을 받게 될 사람의 가장 내밀한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자 하느님 안에 숨겨진 그의 존재가 지닌 심오한 신비라고 보았습니다.

 

동시에 성녀는 1코린 13,12(“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을 인용하며, 마지막 날에 사람은 하느님께서 보시듯 그렇게 자기 존재의 신비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 신비란 다름 아닌 창세 1,26이 전하는, 하느님에 의해 인격적 존재이자 그분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신비를 말합니다.

 

 

창세 1,26-29을 바탕으로 본 인간의 소명

 

나아가 성녀는 창세 1,26-29에서 인간 존재의 소명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끌어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모상을 완성하는 것’, ‘자손을 번성시키는 것’, ‘땅을 통치하는 것’입니다. 성녀는 이 가운데 특히 첫 번째 소명에 주목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완성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근본 소명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두 소명은 첫 번째 소명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성녀에게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을 완성한다는 것은 하느님 안에서 자기 존재의 원형(原形)을 발견하고 이를 실현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성녀는 인간이 단순히 하느님이 아닌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상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는 특히 창세 1,26(“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에 나오는 복수형 표현에 바탕을 둔 해석입니다. 나아가 성녀는 창세 2,18에 등장하는 여자의 창조 과정에 주목하면서,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시므로 그의 모상인 인간 역시 혼자가 아니라 삼위일체적 차원에서 창조되고 실현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성자가 성부에게서 발출(發出)하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이 발출하듯이,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오고 이 두 사람에게서 후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랑은 혼자가 아니라 적어도 두 인격체가 전제된다고 하며,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은 인간 역시 혼자가 아니라 ‘너’로 대변되는 또 다른 인격체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깊은 신비를 발견하고 자신을 실현시켜 간다고 가르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녀는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자기를 실현할 소명과 더불어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세상 앞에서 하느님의 ‘공동 창조자’, ‘공동 주인’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과제를 통해 그분의 창조 사업, 구원 사업에 협력하도록 불렸다고 보았습니다. 이렇듯 성녀 에디트의 인간 이해는 철저히 성경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9월호(통권 474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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