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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십자가의 성 요한과 사도 바오로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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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87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십자가의 성 요한과 사도 바오로의 만남

 

 

완벽한 그리스도인의 전형인 사도 바오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을 읽다 보면 어디서 자주 들어 봤다 싶은 말들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신학자나 영성가도 100% 자기 고유의 것을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선대에게 물려받은 가르침을 바탕으로 자신의 체험과 새로운 공부를 통해 자기만의 세계를 열어 갔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성인은 성 토마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성인은 특히 사도 바오로를 좋아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자신이 체험한 그리스도에 대해 직접 말했으며, 그 체험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규범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사도 바오로를 ‘그리스도의 종’이나 ‘나의 사도’, ‘완벽한 그리스도인의 전형’이라 부르곤 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간직한 ‘열정’, ‘바람’, ‘신음’을 느끼면서 이를 자기 것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두 성인이 바라본 ‘옛 인간’과 ‘새 인간’

 

무엇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사도 바오로의 사상에서 받은 영향이라면, 하느님과의 합일을 향한 인간의 여정을 사도의 주요 가르침 가운데 하나인 ‘옛 인간’과 ‘새 인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기 전에 율법의 지배 아래 살던 인간을 ‘옛 인간’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에 의해 조건 없이 의로운 이로 변화한 상태를 ‘새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자신의 영성적 비전을 바탕으로 사도가 밝힌 이 두 가지 개념을 더욱 풍요롭게 설명했습니다.

 

십자가의 요한이 제시하는 영적 변모, 발전의 과정은 육적 인간에서 영적 인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을 방해하는 세상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애착, 궁극적으로는 자기 안에 뿌리 깊이 스며 있는 이기적 욕구들에 대한 정화(淨化)와 맥을 같이합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성 요한은 ‘육(肉)’으로 대변되는 이기적이고 왜곡된 사랑의 방향을 하느님께 몰아가는 것을 정화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변화하기 전에, 세상과 자신에 대해 집착의 노예가 된 인간을 ‘옛 인간’으로 보았습니다. 반면 ‘어둔 밤’의 정화 과정을 통해 그런 집착에서 해방된 인간,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온전히 집중한 인간을 ‘새 인간’으로 제시했습니다. 내용 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사도 바오로와 십자가의 성 요한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 전과 후의 인간을 설명하는 거시적 틀에서는 일치합니다.

 

 

두 성인이 선호한 인간에 대한 삼중적 이해

 

십자가의 성 요한과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된 구원 업적의 수취인인 인간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인간을 이해하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구성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이중적 인간관’(그리스 철학의 영향)입니다. 그에 비해 인간을 ‘영’, ‘영혼’, ‘육체’로 이루어진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삼중적 인간관’(히브리 사고방식의 영향)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설명하며, 이 두 틀을 다양한 맥락에서 적재적소에 활용했습니다.

 

교회 역사상 삼중적 인간관에 대한 언급이 문헌에 처음 나오는 것은 1테살 5,23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pneuma)과 혼(영혼: psyche)과 몸(soma)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사도 바오로 이후 역사상 많은 영성가가 이 삼중적 인간 이해를 상당히 선호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서 변모되는 과정을 구체적이고 역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매력적인 틀이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본 영적 진보와 퇴보

 

십자가의 성 요한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주요 작품에서 이중적 인간관과 삼중적 인간관을 혼용하여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성인 역시 영성가이기에 자신이 겪은 하느님의 신비 체험,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을 향한 인간의 상승적 변모 과정을 적절히 설명해 줄 틀로 사도 바오로의 삼중적 인간관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성인이 말하는 정화 과정이란 ‘감각’ 또는 ‘욕구’로 대변되는 육적 인간에서 ‘영’으로 대변되는 영적 인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성인은 ‘영’과 ‘육체’의 중간에 ‘영혼’이 자리하며, 바로 그곳에 인간의 주요 영적 특성인 ‘지성’과 ‘의지’와 ‘자유’가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영혼’은 인간 존재의 ‘자아’라고 할 수 있는 부분으로, 이 영혼이 인간을 어디로 인도하는가에 따라 발전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습니다. 성인은 영혼이 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영적 진보로, 육적 욕구의 노예가 되어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영적 퇴보로 보았습니다.

 

여기서 성인이 말하는 영적 진보는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해 자신을 온전히 몰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영적 퇴보는 단순히 육체의 욕망을 따르는 것에서 나아가 하느님을 멀리하고 이기적 탐욕에 빠져드는 것까지를 말합니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4월호(통권 469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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