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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십자가의 성 요한과 아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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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86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십자가의 성 요한과 ‘아가’ 묵상

 

 

신자들이 《가르멜의 산길》, 《어둔 밤》 같이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수덕과 고행과 정화에 대해 가르치는 작품을 접하면, 대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성에 대해 공부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일상의 일과 사람 관계를 유지하면서, 출가한 스님이 깊은 산중의 암자에서나 할 법한 고행을 하라니 어찌하란 말인가?’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은 그의 영성의 핵심적 요소와 부차적 요소가 뭔지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가를 영적으로 해설한 《영혼의 노래》

 

십자가의 성 요한이 철저한 고행과 극기에 대해 말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성인이 가르치고자 한 것은 하느님과 인간의 더할 나위 없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사랑하는 임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날 수 있습니다.

 

성경 가운데 ‘아가’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며, 교회는 역사상 이 연인을 하느님과 교회, 하느님과 인간으로 해석하여 풀어냈습니다. 그래서 아가는 적지 않은 교회학자와 성인들이 해설하기를 원한 성경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역시 아가를 묵상하고 영성적으로 해설한 주옥같은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바로 《영혼의 노래》라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의 영성을 이해하려면 그의 작품 가운데 《영혼의 노래》를 먼저 읽으라고 권합니다.

 

 

《영혼의 노래》의 기원

 

《영혼의 노래》가 집필된 데에는 한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톨레도의 감옥에서 탈출한 후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활동할 당시, 성인은 엘갈바리오라는 수도원 원장으로 소임했습니다. 그때 그는 걸어서 한나절 거리인 베아스의 가르멜 수녀원에서 미사 집전과 강의를 하며 수녀들을 도왔습니다. 그러던 1578년의 어느 날, 그곳의 원장 수녀 ‘예수의 안나’가 성인에게 자신이 쓴 시에 대해 해설을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영성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작품이 《영혼의 노래》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해 아가에 대한 해설은 아닙니다. 아가를 모티브로 하되 성인이 톨레도의 감옥에서 겪은 철저히 어두운 밤에 대한 체험, 그와 더불어 모든 고통과 어둠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에 대한 체험, 그리고 그 임을 찾아 떠나는 자신의 여정에 빗대어 쓴 독창적 작품입니다.

 

 

《영혼의 노래》의 전체 구조

 

《영혼의 노래》는 서른아홉 개의 연으로 구성된 기나긴 서정시입니다. 한국어로는 2009년에 수원가톨릭대학교의 방효익 신부가 처음으로 번역하여 출간했습니다(《영가》, 기쁜소식). 그 책에서 시 전문과 해설을 보시기 바랍니다.

 

전체 39연 중에 십자가의 성 요한이 톨레도 감옥에서 고초를 겪으며 몰래 쓴 뒤 탈출할 때 갖고 나온 것이 1-31연입니다. 32-34연은 탈출한 후 바에사에서 지내면서 쓴 것이고, 35-39연은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대해 질문한 어느 수녀에게 써 주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시의 전체 흐름은 ‘신부’로 상징되는 인간 영혼이 ‘신랑’이신 하느님을 찾아 여행을 떠나 유랑하며 느낀 사랑의 애절함이 깊어 가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사랑하는 임을 만나 그분과 사랑을 나누며 만끽하는 사랑의 기쁨과 평화입니다. 이런 큰 흐름을 바탕으로 내용의 전개에 따라 여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신랑이신 임을 찾아 떠남(1-11연) ② 사랑하는 두 연인의 만남(12-16연) ③ 두 연인의 신비로운 합일(17-26연) ④ 영적 결혼(27-31연) ⑤ 영적 결혼을 통해 두 연인이 나누는 내밀한 사랑의 삶(32-34연) ⑥ 하느님 안에서 영광스러운 삶에 대한 원의와 그 징조(35-39연).

 

우리에게 전해오는 《영혼의 노래》에는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흔히 《영혼의 노래 A》로 표기되는 작품은 성인의 톨레도 원체험을 중심으로 후에 추가된 부분을 소개하는 작품입니다. 《영혼의 노래 B》는 성인이 여러 지역에서 사목하며 신자들에게 체계 있고 정리된 작품을 보여 줄 필요를 느껴 사목 차원에서 시 전체를 수정하고 보완한 것입니다(전체 40연). 통상 《영혼의 노래》라 하면 정리가 잘 된 《영혼의 노래 B》를 일컫습니다. 반면에 약간 거친 《영혼의 노래 A》에는 성인의 깊은 신비 체험의 정수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세 가지 영적 단계

 

《영혼의 노래》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무르익어 마침내 사랑으로 합일하는가 하는 내용을 신랑과 신부라는 상징으로 설명합니다. 내용을 보면, 두 연인의 사랑이 성장하는 과정은 영성적 차원에서 인간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 여정의 세 단계를 포함합니다. 그것은 영적 초보자가 거치는 ‘정화의 길’, 진보한 이가 거치는 ‘조명의 길’, 완덕에 이른 이가 도달하는 ‘일치의 길’입니다. 성인은 이러한 전통 구도를 완성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인 ‘영광된 삶’의 단계를 따로 할애해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성인은 《영혼의 노래》 1연에서 다음과 같이 운을 떼며 사랑을 찾아 떠나는 영혼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당신은 어디에 숨으셨나요? 신랑이여, 내게 탄식을 남기시고 … 내게 상처를 남기시고, 소리치며 따랐으나, 당신은 가버리셨네요.” 인간의 영혼에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우리의 유일무이한 최고의 사랑이신 주님을 찾아 떠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숨겨진 이 갈증을 느끼는 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여행을 떠난 영혼이 애절한 심정으로 목동들에게 묻습니다. “혹시라도 그분을 보았거든 말해 다오. 나는 앓고 아프고 죽어간다고”(2연). 그 영혼은 오직 임만 그리워하며 길가의 꽃도 꺾지 않고 외골수의 길을 간다고 전합니다(3연). 그분을 향한 그리움은 사무치다 못해 깊은 상처가 되고 영혼은 그 상처로 인해 죽어갑니다. 그의 유일한 소원은 임을 뵙는 것입니다(10연). 그렇게 죽어 가던 영혼이 마침내 임을 만나 사랑을 나누며 소원을 풀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영혼은 오직 혼신을 다해 당신을 섬기는 일에 전념했다네. … 오직 사랑만이 나의 일이라오”(19연). 여러분도 십자가 성 요한의 인도에 따라 최고의 사랑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 않겠습니까?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3월호(통권 468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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