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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십자가의 성 요한이 가르치는 그리스도를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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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85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십자가의 성 요한이 가르치는 ‘그리스도를 따름’

 

 

십자가의 성 요한은 자신의 신비 체험뿐 아니라 영성적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다양한 작품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주요 주제들이 담겨 있습니다. 성인은 이 주제들을 뒷받침하는 1차 자료로 계시의 원천인 성경을 자주 인용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과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계시와 공동체 차원의 구원 역사를 한 개인의 구원과 성화를 다루는 영적 여정과 비교하면서, 신구약 성경 구절들을 ‘영적 여정’이라는 기준으로 선택하여 접목하고 해석했습니다.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적인 하느님과의 합일

 

성인은 《가르멜의 산길》이라는 작품에서 천상 본향을 향한 인간의 여정을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40년간 광야에서 보낸 여정에 비유하였습니다. 그것을 ‘자유를 향한 해방의 여정’, ‘하느님과의 사랑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한 정화의 여정’으로 소개했으며, 이를 위해 적합한 성경 구절을 선택해서 인용했습니다. 이 작품은 성인의 전체 영적 가르침에서 영적 여정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인간 편의 ‘능동적 정화’ 과정을 다룹니다. 성인에 따르면, 인간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궁극적 목적은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에 있습니다. 현세에서 인간은 바로 이 목적을 실현해 가는 여정에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은 창세 1,26에 나오는 ‘하느님의 모습과 비슷하게 창조된 존재’라는 인간에 대한 정의와 맥을 같이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은 여타 피조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고상한 존재론적 품위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동시에 더욱더 하느님을 닮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존재, 그가 바로 인간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소명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시는 분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이 세상에 계시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인간 창조의 원형이시며,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랑하고 닮아야 할 종말론적 모델이십니다.

 

 

주님과 순도 100% 사랑을 이루기 위한 정화 과정

 

인간의 여정은 ‘그리스도를 닮고 따르는 데’ 있습니다. 이는 복음서가 전하는 핵심이기도 합니다(마태 16,24-28; 마르 8,34-38; 루카 9,23-27 참조). 그래서 성인은 인간이 하느님(또는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과 사랑의 합일을 실현해 가는 여정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정을 동일시했습니다. 그분과의 사랑의 합일에서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거나 그 목적에 맞게 정돈하는 것을 ‘정화(淨化)’라 불렀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면에서 정화되어야 하는가? 성인에 따르면, 정화되어야 할 대상은 바로 인간 자신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 세상 사람과 사물에 애착하는 자신의 모든 ‘생각’과 ‘욕구’와 ‘감정’을 정화해야 한다고 성인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가르쳤습니다.

 

결국 성인이 말하는 정화란 신구약의 모든 계명을 종합하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루카 10,27; 마태 22,37; 마르 12,30 참조)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인간 존재 전체가 온전히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몰입하여 그분과 순도 100%의 사랑을 나누고 일치하기 위한 준비 과정을 말합니다. 이러한 정화는 인간 편에서 애착을 끊고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기에 영적·육체적 고통을 수반합니다. 정화 과정은 인간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둠입니다. 성인은 이 정화 과정을 ‘어두운 밤’이라고 불렀습니다.

 

성인의 대표적 작품 《가르멜의 산길》은 이 정화 과정에서 인간이 자기 힘으로 노력하여 정화할 수 있는 부분을 가르칩니다. 인간 편에서 ‘능동적’으로 할 수 있으므로 ‘능동적 정화’라고 부릅니다. 반면 《어둔 밤》은 인간 존재의 뿌리 깊은 데 숨어 있어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찌든 때와 얼룩을 하느님께서 손수 정화해 주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 편에서 볼 때 이는 ‘수동적’으로 받는 것이므로 ‘수동적 정화’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하느님과의 완전한 사랑의 합일’ 또는 ‘그리스도를 닮고 따르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능동적 정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르멜의 산길》 1권 13장 2-4항에 그 가르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매사에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원의

 

첫 번째로 성인은 자기 삶을 그리스도께 맞추면서 매사에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일상적 원의를 지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본받고 만사에 그분이 하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의 삶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분의 강생과 공생활, 구원 역사의 핵심인 수난과 죽음과 부활 사건이 담긴 복음서를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를 잘 본받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것이 순수하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공경하도록 이끄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그것을 거절하고 비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34)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양식으로 삼고 그 외의 것은 원하지 않아야 합니다. 헛된 기쁨에 마음을 빼앗기지도 않아야 합니다.

 

성인은 이러한 가르침을 늘 마음에 새기고 일상에서 실천하여 습관화하기를 권했습니다. 그리하여 매일 그리스도를 닮으려 노력하고, 기쁨과 희망과 두려움과 고통 같은 우리의 모든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가라앉히고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 영혼에 많은 덕행이 피어 오르며 공로를 세울 수 있다고 합니다. 성인은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권고를 전했습니다. 독자들도 실천해 보기를 바랍니다.

 

“항상 마음을 담아서 실천해야 한다. 더 쉬운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을, 더 맛있는 것보다 더 맛이 없는 것을, 더 즐거운 것보다 오히려 덜 즐거운 것을, 쉬는 것이 아니라 고된 것을, 위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가 없는 것을, 많은 것이 아니라 적은 것을, 크고 값진 것이 아니라 작고 값이 없는 것을, 무엇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을. 세속적인 것들 가운데 더 좋은 것을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쁜 것을 찾아야 하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철저하게 벗어버림과 비움, 그리고 가난함으로 들어가기를 원해야 한다”(《가르멜의 산길》 1권 13장 6항).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2월호(통권 467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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