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1020.....연중 제29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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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10-20 ㅣ No.1617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 짝수 해

에페소서 2,1-10         루카 12,13-21

2014. 10. 20. 이태원

주제 : 세상을 대하는 자세

누군가가 나타난 사람이 내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처음에 대하는 모습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신기하다고 하겠지만, 어쩌면 그런 일이 내 삶에 숨겨놓고 싶은 모든 일을 다 말해주는 것이라면 아마도 겁이 나고 두려운 느낌이 더 커질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개인사에 대한 것 말고, 단체나 공동체의 삶을 평가하는 소리도 마찬가지일까요? 어쩌면 개인에 대한 것만큼 민감하게 대할 얘기는 아니지만, 판단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지면 우리들 각자는 어떻게 대하는 사람이 될까요?

 

우리가 질문을 한다고 해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 아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지식을 추구하고 지혜를 쌓아가는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나를 평가해줄 대상 앞에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는 것은 한 번 더 판단이 필요할 것입니다.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하고 물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일까요? 고민이라고 해도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자본주의 세상, 모든 것을 돈을 우선으로 평가하는 세상에서는 바랄법한 일들일 것입니다. 세상의 모습에서는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이렇게 살기를 원하겠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옳지 않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준의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판단이 우리들 마음에 들까요? 정말로 개인적인 것이야 제가 다 알 수 있는 범위에 있는 것은 아니니, 함부로 알겠다는 소리는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복음말씀에 나온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하는 사람일까? 그리고 내가 그렇게 대하는 자세가 정말로 올바른 것일까 하는 판단은 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세상의 인간으로 살든지, 신앙의 인간으로 살든지 어떤 것이든지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말해줄 수는 있어도, 그게 다른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느님도 사람의 의지를 거슬러가면서 인간에게 당신의 뜻을 강요하시는 분은 아니라는 판단을 하는 것이 신학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자율권을 주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자율권 다음에는 그 일을 감당할 책임도 물을 것입니다. 세상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과연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자세를 드러낼 경우, 어떤 판단이 가능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판단을 무서워해야 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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