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1012.....연중 제28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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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10-14 ㅣ No.1611

연중 제28주일 (가해)

이사야 25,6-10       필리피 4,12-14.19-20       마태오 22,1-14

2014. 10. 12.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부르심에......

사람이 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말을 하는 것은 누군가가 듣고, 행동하게 하는 목적을 있다는 의미도 포함할 것입니다. 내가 가진 뜻을 드러내고, 그 뜻을 다른 대상에게 전달했는데, 그 말이 내용이 완전히 무시되거나 우이독경(牛耳讀經)하는 결과만 얻게 되었다면, 그 상황은 암담할 것입니다.

 

이렇게 상상할 경우, 말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대처방법은 몇 가지로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처럼 자기가 한 말이 원하는 결과를 맺지 못한 것에 분노하고 그렇게 생긴 분노를 모독이라고 여기고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우리가 신앙에서 배우는 것처럼, 하느님이셨던 분이 그 지위나 신분마저 내려놓고 십자가에 못이 박히기까지 모든 것을 내놓으신 예수님의 본보기를 뒤따르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면 우리는 그 소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들으면, 내가 생각할 대답은 무엇일까 하고 정답을 찾을 수도 있지만, 공손한 마음이 없다면 하느님이 언제 나를 부르셨어?’ 하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하느님께서 우리들 각자의 귀에 당신의 소리를 언제 들려주실 것이며,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를 듣겠느냐는 것입니다.

 

구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히브리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후, 광야생활에서 백성들의 조직적인 반발에 부딪히게 되자,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시기만 하면, 제앞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온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의 명령대로 이 백성을 가나안 땅까지 충실하게 이끌고 가겠다는 다짐(!)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마음과 생각을 모두 읽으신 하느님은 모세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너는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탈출기 33,20)고 하시면서, 모세가 당신의 모습을 보고서 죽는 것보다는, 살아서 당신의 뜻을 실현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에 신앙이 어떤 힘을 갖는지 묻고 그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과정일 것입니다. 이렇게 삶과 신앙을 연결시키는 질문과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 귀에 다가온다고 해서, 그 질문에 모든 사람이 정성을 담아 즉시 대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대답을 한다고 해도, 그게 처음에 질문을 제기한 대상의 뜻을 정확하게 읽고 그 대상이 원하는 일을 충실하게 실천하겠다는 자세가 있는지도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하늘나라의 비유말씀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들을 순서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말씀에서, 여러분 가까이에 있는 하느님을 보신 분이 있으십니까? 그 얘기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면서 들으셨습니까? 그렇게 비유말씀을 통해서 이 자리에서 들은 소리가 하느님의 말씀이니, 나더러 어떤 자세로 살라는 얘기구나 하고 깨달은 분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우리가 드러낼 수 있는 삶의 자세와 태도는 다양합니다.

 

혼인잔치를 베풀었던 임금은 사람들이 저마다 핑계를 대고 혼인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자, 분노를 드러내는 한편으로 잔칫집을 손님들로 억지로라도 채웁니다. 그렇게 잔칫집을 채운 사람들이 자기발로 온 손님들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내용입니다. 그 와중에 임금의 눈에 예복을 갖춰 입지 못한 사람으로 발견된 그 사람을 여러분은 어떻게 위로하겠습니까? 준비도 없이 잔칫집에 억울한 사람이 있게 된 것은 명령을 내린 임금이 잘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올바른 예복을 갖춰 입지 않고 그 잔칫집에 간 사람에게 탓이 있을까요?

 

세상의 모든 일은 내가 아는 대로, 내가 인정하는 형식과 모양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좋은 결과로 생기는 일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서 내 삶에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주시라고 청하는 것은 아주 좋은 자세이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시도록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서, 우리들 각자를 위해서 좋은 일을 이루어주시기를 청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청하기만 한다고 그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 삶에 일어날 일을 미리 예상하고, 그 일들 가운데서 좋은 것은 감사하게 받고, 힘겨운 것은 잘 이겨낼 수 있게 해주시라고 청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연중28주일을 지내면서, 한 해의 결실과 수확을 생각하는 때입니다. 내 앞에 펼쳐질 좋은 일을 위하여 나는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지 그리고 혹시라도 아직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는지 잠시 생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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