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919.....연중 제24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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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9-20 ㅣ No.1597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 짝수 해

1코린토 15,12-20         루카 8,1-3

2014. 9. 19. 이태원

주제 : 부활은 무엇인가?

신앙의 진리는 세상의 지식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언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신앙의 세계가 더 완벽하거나 완전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부족하거나 불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쪽 편 세상에서 다른 쪽 세상을 설명하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신앙의 용어가운데, 세상의 언어로 설명하기가 정말로 어려운 것이 부활(復活)’에 대한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그 말을 자유롭게 쓰거나 행동으로 드러낼 수도 있지만, 세상의 일에는 그렇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부활이란 무엇일까요? 글자의 뜻으로는 다시 살아남이라는 의미가 있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활을 체험하고 싶다면, 그에 앞서서 죽음이라는 과정을 체험하거나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인데, 어떤 것이 죽음인지 그 의미역시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했다는 것에 아주 큰 영향을 받습니다. 더더구나 그렇게 체험했다는 것이 다른 사람은 모르는 자기만의 경험에 대한 것이라면 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더 클 것입니다. 바오로사도는 코린토지역에 살던 사람들에게 부활에 대한 것을 열심히 얘기합니다만, 실제로 그가 부활이라는 것을 어떻게 체험했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바오로사도가 복음선포자로 나선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다마스쿠스가 가까운 곳에서 체험한 놀라운 일이었지만, 소시적(!!)에 겪었을 그 일이 20년 혹은 30년을 일관되게 드러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은 세상의 논리로서는 알아들을 수도 없고 설명하기도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신앙의 일이라고 말할 법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세상의 일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드러내신 부활, 우리가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함께 참여할 그 영광에 발길이 닿는다면 우리의 삶도 나름대로는 특별한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게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표현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차원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뒤따라 다니던 여인들이 한 일에 대한 얘기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돈으로 시중들고, 시간으로 봉사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 강렬한 햇빛아래서 그림자의 역할로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성실하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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