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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신학 산책41: 하느님의 아들이 죽으셨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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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2-12 ㅣ No.1567

신학 산책 (41) 하느님의 아들이 죽으셨다구요?

 

 

약 2,000년 전 어느 과월절(Passover)이 지난 금요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리스도, 메시아, 주님, 구원자라고 믿었던 예수님께서 무참히 참혹하게 죽으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고(요한 3,16 참조), 죽은 라자로를 살리셨으며(요한 11,38-44 참조), 스스로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라고 말씀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셨기에 죽어야 했던 것일까? 도대체 예수님을 고발한 이들과 죽인 이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왜 죽였는가?

 

‘신성모독!’ 예수님의 죄명은 다름 아닌 인간인 주제에 하느님 행세를 하였다는 것이다(마르 15,61-64 참조). 하지만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을 향한 유다인들의 적개심이 단순히 ‘하느님 모독’에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부터 일부 바리사이들, 헤로데 당원들, 사제들,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들, 즉 마귀를 쫓아내시고, 죄를 용서하시며,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실 뿐만 아니라,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시는 등, 자신들이 정한 율법과 규정에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제거하기로 뜻을 모았다(가톨릭교회교리서, 574항 참조). 이들에게 예수님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며 자신들과는 다른 가르침을 주는 적대자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에게 베푸셨던 자비와 죄의 용서를 본 후에도,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는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자비와 치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께서 특히 죄인들에 대한 당신의 자비로운 태도가 하느님의 태도와 동일한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에”(가톨릭교회교리서, 589항)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에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내 아버지의]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7-38).

 

2,000년 전,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자처하는 사람’(가톨릭교회교리서, 594항)”이라고 여겨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십자가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예수님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나는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뵙고 있는가?

 

[2016년 2월 7일 연중 제5주일 청주주보 4면, 김대섭 바오로 신부(복음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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