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85) 18세기 ② 베륄 영성 사상의 흔적

그리스도 중심 영성 사상으로 이단에 맞서

17세기 프랑스에서 베륄(Pierre de Brulle, 1575~1629)을 대표로 하는 ‘프랑스 영성 학파(cole franaise de spiritualit)’는 이단적인 영성 사조와 대립했습니다. 베륄 영성 학풍을 전해 받은 올리에(Jean-Jacques Olier, 1608~1657)가 설립한 ‘생-쉴피스회(Compagnie des Prtres de Saint-Sulpice)’의 신학교에서 양성된 사제들은 이단 사조와 대립하면서 건전한 영성생활을 가르치려고 노력했습니다.

- 장 바티스트.

기도와 묵상을 가르친 교육자, 장 바티스트

프랑스 북동부 랭스(Reims)의 부유한 가문 출신인 라살의 장 바티스트(Jean-Baptiste de la Salle, 1651~1719)는 파리에 봉장팡(Bons Enfants) 대학에서 인문 교양과 철학을 공부하고 1670년 파리 생-쉴피스 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했으며, 1678년 사제품을 받고 1680년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장 바티스트는 병자를 돌보고 가난한 소녀들의 교육 책임을 실천하는 ‘아기 예수 수녀회(Suoers de l’Enfant-Jsus)’의 지도 신부 겸 고해 사제가 되면서 가난한 이들을 교육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특히 1679년 루앙(Rouen)에서 가난한 소년들에게 교육 활동을 하던 평신도 교육자 나일(Adrien Nyel, 1621~1687)을 알게 된 장 바티스트는 동료들을 모아 나일과 함께 교육사업에 매진했습니다. 장 바티스트는 1684년에 교육제도를 개혁하고자 ‘그리스도교 학교 형제회(Frres des coles chrtiennes)’라는 교육 수도회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학교 교육 제도를 보급했습니다. 프랑스 전역에 학교를 설립하고, 1710년 로마에도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장 바티스트는 가난이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직업 훈련을 시키는 학교를 운영했으나, 처음에는 교회 당국의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교회 당국은 직업 훈련을 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수도생활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장 바티스트는 저서 「기도 방법 해설(Explication de la Mthode d’Oraison)」, 「주일을 위한 묵상(Mditations pour les Dimanches)」, 「축일을 위한 묵상(Mditations pour les Ftes)」, 「피정 시간을 위한 묵상(Mditations pour le Temps de la Retraite)」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바치는 추리기도를 강조했으며, 수덕생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실천했습니다. 특히 장 바티스트가 학생에게 가르친 신심생활인 미사 참여, 영성체, 고해성사를 비롯한 기도와 묵상은 얀센주의자의 극단적인 수덕생활 실천과 대립하면서 신자들이 얀센주의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 루이 마리.

탁월한 성모 신심 실천가이자 선교사 및 설교가, 루이 마리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역 몽포르쉬르뫼(Montfort-sur-Meu) 출신인 루이 마리 그리뇽 드 몽포르(Louis-Marie Grignion de Montfort, 1673~1716)는 청소년 시절부터 인근 렌(Rennes)에 있는 예수회원이 운영하는 성 토마스 베켓(St Thomas Becket) 대학에서 인문 교양 및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이 시기에 루이 마리는 극빈자들 사이에서 설교하는 것에 고무됐으며 성모 마리아 신심을 키워 나갔습니다. 1693년 파리로 와서 소르본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루이 마리는 1695년에 생-쉴피스 신학교에 입학했고 1700년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신학생 시절에 루이 마리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프랑스 영성 학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성모 마리아 신심을 더욱 강하게 키워 나갈 수 있었습니다.

푸아티에(Poitiers)에서 병원사목을 하던 루이 마리는 1703년에 트리셰(Marie-Louise Trichet, 1684~1759)와 함께 가난한 자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지혜의 딸들 수녀회(Filles de la sagesse)’를 설립했으며, 1705년 파리에서 남자 선교 수도회인 ‘마리아회(Compagnie de Marie)’를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루이 마리는 성모 마리아 공경, 가난한 자들과 어린이들에 대한 애덕 실천, 선교 열정에 기인한 설교 및 극기 생활 등을 실천했다는 이유로 얀센주의자들에게 박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루이 마리는 저서 「거룩한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Trait de la vraie dvotion la Sainte Vierge)」에서 예수와 마리아와의 깊은 관계 안에서 성모 신심을 언급하면서 그리스도론적인 마리아론을 전개했습니다. 루이 마리는 예수님께서 성모 마리아를 통해 육화하셨듯이 이후에 전개될 구원 사업에서도 성모 마리아를 통해 구원 사업을 펼치시기를 바란다고 언급했습니다. 성모 신심도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루이 마리는 성모 신심이 하느님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루이 마리의 그리스도론적인 마리아론은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성모 신심을 지향했습니다. 루이 마리는 저서 끝 부분에서 찬미기도를 바쳤습니다. “오 사랑하올 예수님, 주님의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저는 온전히 주님의 것이오며, 제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옵니다.” 한편 루이 마리는 저서 「회심과 구원을 위한 로사리오의 훌륭한 비밀(Le Secret admirable du trs saint Rosaire pour se convertir et se sauver)」을 통해 묵주기도 신심을 널리 전파했습니다.

신비체험가이자 영성 작가, 그루

프랑스 북부, 칼레(Calais) 출신인 그루(Jean Nicolas Grou, 1731~1803)는 1746년 예수회에 입회했으며, 처음에 그리스 철학과 라틴 문학에 관심을 두고 번역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루는 1770년부터 영성 작가로 전향했습니다. 그루는 저서 「진정한 신심의 특징(Les Caractres de la Vraie Devotion)」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것이 진정한 신심이며 모든 영성의 바탕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저서 「예수와 마리아의 내면(L’Intrieur de Jesus et de Marie)」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지식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데서 나오며, 그리스도인이 실천할 성덕은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그루가 「하느님 사랑에 대한 피정 형식을 통한 묵상(Meditations, en forme de Retraite, sur I’Amour de Dieu)」을 저술했을 때, 정적주의자들이 그루를 비판했으나 그루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영성 사상을 계속해서 펼쳤습니다. 결국, 그루의 영성은 베륄의 영성과 유사했으며 프랑스 신비체험가 쉬렝(Jean-Joseph Surin, 1600~1665)의 가르침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학자들은 그루가 사용한 신비체험에 대한 전문 용어와 징후가 의심스럽게 보여도, 그루를 18세기를 대표하는 신비체험가이자 많은 작품을 남긴 영성 작가라고 평가했습니다.

17세기 유럽 가톨릭 영성을 대표한 프랑스 영성은 18세기에 나타난 세속주의의 도전에 직면해 17세기 영적 유산을 바탕으로 마지막 노력을 다했습니다. 프랑스에서만큼은 베륄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영성 사상이야말로 얀센주의 등의 이단 사조를 대적하는 데에 적합한 도구였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7월 29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