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1117.....연중 제3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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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11-18 ㅣ No.1638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 짝수 해

묵시록 1,1-4.5; 2,1-5ㄱ      루카 18,35-43

2014. 11. 17. 이태원

주제 : 눈으로 본다는 것(?)

사람은 눈으로 본다는 것의 중요성을 아주 크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해석하는 이론에도 경험론과 합리론이 있다고 하지만, 사람의 삶에 더 큰 힘으로 다가오는 것은 경험론일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경험론이 옳다는 얘기도 아니고, 합리론이 잘못된 근거에 바탕을 두었다는 얘기도 압니다. 다만 사람이 선호하는 방법과 분야에 따를 때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경험론을 대표하는(?) 말로 얼마 전부터 떠나지 않는 소리중의 하나가 내가 봤는데....!!/내가 해봐서 아는 일인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눈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아주 크게 봅니다. 물론 느끼거나 손으로 잡는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중요성이 있다고 해도, 그건 각자의 판단이니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판단할 줄 안다면, 사람이 눈으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 눈으로 보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달리하면, 똑같이 봐도 그렇게 본 것에 대한 중요성을 서로 달리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단순히 다르게 본다는 말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흔적이 엄청나게 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골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남대문을 봤다는데, 그렇게 보고 온 사람과 다른 사람의 말로 전해 듣은 내용을 종합하여 자기지식으로 만든 사람이 말싸움을 벌이면 누가 이길까요? 어디까지나 이론인 소리지만, 그 싸움의 결과는 뻔한 것이라고 말하겠지요?

 

오늘 복음은 예리코에 살던 어떤 소경의 현실이 바뀐 이야기입니다. 그는 눈으로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보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실의 변화가 따랐으니, 좋았겠지만, 그 일은 정말로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을까요? 오늘 복음에는 그 뒤의 상황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만, 판단기준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수도 있습니다.

 

오늘부터 다음주간 토요일까지, 우리는 첫 번째 독서로 요한묵시록을 읽습니다. 세상 끝 날이 가까워오면 어떤 상황인지를 말하는 것이 묵시록입니다. 묵시록을 읽으면서, 염세주의 세계관을 가져야 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본모습도 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심판하실 하느님의 아들을 반길까요? 아니면 아직 살만한(?) 세상인데, 왜 위협하느냐고 흥분할까요?

 

사람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일도 아니지만, 우리가 바른 자세로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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