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1116.....연중 제33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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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11-15 ㅣ No.1637

                              연중 제33주일 (가해)

잠언 31,10-13.19-20.30-31       1테살로니카 5,1-6      마태 25,14-30

2014. 11. 16. 이태원

주제 : 세상을 대하는 눈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란 천주교회에서 사용하는 낱말로, 신앙인들 가운데 절대다수인 신자들, 사제들을 제외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수를 셈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범위에 드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옳은 것이겠느냐고 질문하고, 그들이 목적에 맞춰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을 한 번 더 권고하는 주일입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한두 번 듣는다고 해서, 즉시 알게 되거나 알아들은 대로 활동할 수 있는 힘이 곧바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미리 생각하지 못하고 놀라운 일을 맞이하면 이리저리 허둥대다가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도 있는 상황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만, 미리 준비하거나 대비하고 그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삶에서 실패할 가능성은 줄이고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확률은 훨씬 더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듣는 말을 통해서 교회공동체에 속한 신앙인, 다른 말로 평신도로서 뭔가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내 삶에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2차 바티칸공의회를 마치고, 1968년부터 하느님백성들의 모임인 교회에서, 사제들과 함께 한 축을 이루는 세상일을 우선으로 하는 신앙인들이 교회공동체에도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실현해야 한다는 뜻으로 시작된 것이 평신도주일이었습니다. 이 표현을 사용하는 범위에 드는 여러분은 평신도라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으십니까? 알아들으면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습니까?

 

오늘은 연중33주일입니다.

오늘을 평신도주일이라고 강조하고는 있습니다만, 조금 전에 들은 독서와 복음은 평신도로서 가져야 할 사명이라든가 그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을 말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들으신 것처럼, 탈렌트를 서로 다르게 받았던 3명의 종이 자기들의 능력을 드러내서 다른 결과를 보였다는 것이 복음말씀이었고, 훌륭한 아내가 누구인지 그 상황을 칭찬하는 잠언서의 말씀이 첫 번째 독서였으며, 주님의 날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갑작스레 올 수도 있다고 말하고 그렇다면 우리가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독서 바오로사도의 말씀이었습니다.

 

남들이 나에게 좋은 의도를 갖고 말해주는 소리라고 해도, 우리가 그 소리를 듣는 것을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좋다는 얘기가 아니라서 반복합니다만, 나에게 들려오는 소리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남들에게서 어떤 말을 들으면 그 소리를 내가 듣고 싶었던 소리라고 생각하고, 즉시 내 삶의 한 부분이었던 것처럼 행동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는 재능으로 알아들을 수도 있고, 돈의 단위로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인 탈렌트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우들을 가리키는 표현도 같은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탈렌트라는 말을 돈 단위로 생각하면,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는 노동자가 165개월쯤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금액에 해당합니다. 얼마나 될까요?

3(=일당-5만원) / 5(=일당-83,333) / 6(=100,000)

주인으로 등장한 이 사람은 대단히 배포가 큰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담보를 생각하고 자기 종에게 그렇게 큰돈(3/6/15)을 주었는지는 그 근거에 대한 얘기가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주인은 자기 종들을 전폭적으로 믿은 사람으로서 도박에 가까운 일을 합니다. 문제는 종들이 주인의 마음과 생각을 읽고 행동했느냐는 것입니다.

 

이 비유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 부분에 관심을 두고 들었습니까? 5탈렌트를 받아서 그만큼을 더 벌어들인 종에 대한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2탈렌트를 받아서 그만큼을 더 벌어들인 종에 관한 것이었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주인의 마지막 판결에 나오는 것처럼, ‘땅속에 파묻어 두었던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갖고 왔다는 종이 그 돈을 빼앗기고 주인을 원망했을 법한 사람을 옹호하는 입장이었습니까? 1탈렌트를 빼앗긴 그 사람의 처지가 불쌍해서 그 사람에게서 돈을 빼앗은 주인의 행동이 불공평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었던 이야기의 초점은 한탈렌트를 고스란히 보관했다가 엉뚱하게 빼앗긴 종에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하느님에게서 받은 재능을 어떻게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혹시라도, 내가 이 모양으로 사는 것을 보면, 나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재능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나는 하느님께 갚아야 할 것도 아무것도 없는 게 당연하지......하고 말할까요? 하느님은 어찌하여 사람들에게 차별을 두고 재능을 주느냐고 하느님의 판단기준에 의문을 제기할까요?

 

세상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우리는 삶에서 서로 다른 결과를 맺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 대우는 내가 지금 이 순간부터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받은 재능이나 탈렌트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렇게 알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내가 세상의 삶을 통해서 맺어야 하는 결실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고 말해도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훌륭한 아내를 얻는 것은 다 만들어진 상태에서 그냥 주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내 곁에 있는 배우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만, 미래에 내 삶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아야 좋은 것은 아닙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이 기쁘고 좋은 것이라면 지금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미래에 일어날 일이 나쁜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이거나 저거나 도움이 될 자세는 아닙니다.

 

세상을 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누가 그 지혜를 알려주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내 삶에 베풀어주실 은총과 복이 어떤 것이겠는지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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