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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복자 124위 열전53: 오반지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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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22 ㅣ No.1449

[복자 124위 열전] (53) 오반지 바오로


방탕한 생활 청산하고 신앙 모범 보여 … 진천 교우촌 출신 첫 순교자



충북 진천에 교우촌이 형성된 시기는 1820∼18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료에는 1839년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이 순교한 뒤 4남 최우정(바실리오)이 진천 동골에서 양육됐고, 3남 최선정(안드레아)이 서들골(현 충남 천안 목천읍 송전1길 일대)에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복자 오반지 바오로


동골과 서들골은 인접 지역이어서 신자끼리 왕래가 빈번했다. 이 무렵 절골ㆍ용진골ㆍ정삼이골ㆍ삼박골ㆍ발래기ㆍ명심이ㆍ지구머리ㆍ새울ㆍ지장골ㆍ굴티 등 오늘날 충북 진천군 백곡면과 문백면 일대엔 교우촌이 즐비했다.

진천 곳곳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린 교우촌에 1866년 3월 초 박해의 피바람이 분다. 그해 2월과 3월 서울과 거더리(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길 일대)에서 제4, 5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ㆍ다블뤼 주교가 체포돼 순교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진천 지장골 교우촌에 살고 있던 오반지(바오로, 1813∼1866)는 박해가 일어나자마자 청주 충청병영에서 파견된 포졸들에게 체포돼 그해 3월 27일 순교함으로써 병인박해 당시 진천 교우촌 출신의 첫 순교자가 됐다.

그러나 오반지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인물이 아니다. 진천 반지(진천군 이월면 장수로 일대)의 양반 집안 출신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것도 40세가 훨씬 지난 1857∼58년 사이의 일이다. 장성할 때까지 비교적 풍요롭게 살면서도 공부와는 담을 쌓았고 혼인한 뒤로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다 날려버렸던 그는 천주 신앙을 받아들이고 나서 크게 변화된 면모를 보였다. 영세 이후 채 10년이 되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아주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했다. 심지가 굳었고 성품이 온화했으며 생계를 유지할 줄도 몰라 곤궁하게 살았지만, 빈틈없이 신앙을 실천하며 겸손하게 살았다. 다블뤼 주교도 「조선 주요 순교자전」을 통해 “그는 대단한 신심과 수긍할 줄 아는 온순함을 보였다”고 기록한다. 그러던 중 그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고자 지장골로 이주했는데, 그곳에서도 그는 교회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가난을 참아 견뎠다.

병인박해가 일어나자마자 그해 3월 초 체포된 그는 진천 관아에 투옥됐다가 청주로 이송됐다. 병영에 압송돼 모진 형벌과 문초를 받아야 했지만, 그는 교회 일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누설하지 않았다. 거의 입을 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선교사들과 관련된 질문엔 부인으로 일관했다. 오로지 “나는 천주교인이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당시 감옥에는 그와 함께 체포된 젊은이와 훗날 체포돼 들어온 배 바오로라는 교우가 함께 있었지만 오반지만 관장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옥중에서 아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가 「병인치명사적」 제1권에 그의 며느리였던 서 수산나의 증언으로 지금까지 전해온다. “교우로서 본분을 잘 지키고 남의 빚은 잘 갚도록 해라. 그리고 만일 (관에) 체포되면 주님을 위해 순교하도록 해라.”

관장은 어떤 형벌로도, 어떤 유혹으로도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는 “만 번 죽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님을 배반할 수 없다”며 굳은 신앙을 증거한 뒤 청주성 남문 밖으로 끌려나가 목이 졸려 죽었다. 그의 나이 53세였다. 훗날 서 수산나의 증언을 따르면, 그가 순교한 뒤 “백일청천에 무지개가 떠서 그의 시신에서 하늘까지 닿았다”고 전한다. 시신은 아들과 신자들 몇몇이서 지장골로 옮겨져 인근에 안장됐다.

그의 순교 행적에 대한 증언은 다른 순교자들과 달리 아주 풍부하고 자세한 편이다. 이는 당시 조선에서 선교하다가 중국으로 탈출한 칼레 신부나 페롱 신부가 탈출 직전 지장골과 아주 가까운 목천면 소학골에 숨어지내며 그의 순교 행적을 자세히 기록한 문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평범했지만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신앙을 진실하게 실천했던 인물, 그가 바로 오반지 복자다.

[평화신문, 2015년 3월 22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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