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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국교회의 과제: 평화는 평화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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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17 ㅣ No.1219

[증언, 한국교회의 과제] 평화는 평화로 이루어진다

 


“화해, 일치, 평화라는 하느님의 은혜들은 회심의 은총과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회심이란,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우리의 삶과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마음의 새로운 변화를 의미합니다.

…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을 믿으십시오! … 평화와 화해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기도가 이제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올려져,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로 마침내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고귀한 선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난해 8월 18일, 한국방문을 마치고 떠나시는 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시며 하신 말씀이다. 60년이 넘도록 거짓 평화를 유지하며 분단된 채 살아온 우리나라에게 ‘평화’는, 풀어야만 하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한국교회의 중대한 과제이기도 하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사제라 그런지, ‘평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다. 이제는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외의 중요한 이슈가 되어버린 강정마을 이야기로 평화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군비경쟁의 끝이 평화인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일에 대해, 국내 유수 언론은 물론, 미국 CNN과 뉴스위크지, 중국 국영방송, 아랍 알자지라방송 등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엄청난 규모의 기지 건설에 놀라면서,이게 중국을 견제하고 동북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미군의 전초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 이는 해군측이 국회 공청회에서 그 가능성을 인정한 바다.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미국이 동중국해와 그 이남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될 것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동북아는 군비경쟁의 각축장으로 전락할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그 중심에 위치한 한반도는 전쟁과 군사적 충돌의 위협이 도사리는 긴장지대가 될 것이고, 그 시발점인 제주도는 동북아의 화약고가 될 게 뻔하다.

2012년 중순경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유럽과 중동지역에 집중했던 군사력을 감축하고 아태지역에 최첨단 무기를 증강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에 중국은 즉시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당시 건조된 항공모함 ‘바라크호’를 한반도와 가까운 산둥반도의 칭다오에 건설 중인 해군기지에 정박시켜 놓고, 서해안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할 태세를 갖췄다. 향후 동북아에서 세계 최대 열강 간의 군사력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신냉전 체제가 조성되어 화해와 평화가 위협받을 지경에 놓였다.

사실 미국은 세계평화 유지란 명목으로 해마다 천문학적 군사비를 지출한다. 다른 나라들은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다. 끊임없이 최첨단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가공할 화력을 증강시켜 오고 있다.

중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십여 년 전부터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무모하게 세계패권 경쟁에도 뛰어들어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이런 군비경쟁에 대해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다.

“군비경쟁은 인류의 극심한 역병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군비경쟁이 계속된다면 그 수단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가공할 온갖 재앙을 언젠가는 일으키고 말리라는 것을 몹시 두려워해야 한다. … 평화는 무력의 위협으로 여러 국가에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들의 상호신뢰에서 태어나는 것이 분명하므로 모든 사람이 마침내 군비경쟁을 종식시키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사목헌장, 81-82항).

작금의 군비경쟁은 지구촌 전체에 양의 탈을 쓴 이리의 모습으로 다가와 세계평화와 인간의 존엄성, 다양한 문화와 삶의 가치들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특별히 지리적으로 초강대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에 포위되어 동북아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버린 우리나라는 위험한 곡예사의 처지가 되었다.

강대국에 맞서 군비경쟁에 가세하다가는 스스로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꼴이 될 것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현명하게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군비경쟁은 동북아의 긴장과 세계평화의 절대적인 장애물임을 깨닫고, 군비축소를 통한 대화와 협력으로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북아의 화약고를 자처하는가?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이 아니며, 오로지 적대세력의 균형 유지로 전락될 수도 없다. … 하느님께서 심어놓으신 그 질서의 열매, 또 언제나 더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행동으로 실천하여야 할 사회질서의 열매가 바로 평화이다. … 인간의 의지는 나약하고 죄로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평화를 이룩하려면 각자의 야욕을 끊임없이 다스리며, 정당한 권위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사목헌장, 78항).

이 실험대가 지금 제주도 강정마을에 추진하는 해군기지다. 8년전 해군기지 건설 장소로 강정마을을 선정할 때, 정부는 국가안위와 남방 수송로의 보호와 함께 제주도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많은 이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굳이 무장력을 갖춘 군기지가 아닌 해경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거다.

실제로 무역로 확보를 위해 해군이 출동하는 순간,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과 외교적 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 아마도 가장 큰 선정 이유는 대양해군에 대한 야심과 동북아의 패권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려는 미국의 강력한 입김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계 평화의 섬이자 세계자연유산인 제주도에 절차적 타당성과 필요성을 무시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가 없을 게다.

그렇다면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동북아의 화약고를 자처하는 꼴이고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시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 일인가.

시쳇말로 까놓고 말하자면, 군사적 무장은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우리가 아무리 강한 군사력을 갖춘다 해도 초강대국과 경쟁할 수 있을까. 그럴수록 극심한 긴장만 조성하여 전쟁의 씨앗이 발아할 위험만 초래할 뿐이다.

동북아에서의 과도한 군비경쟁을 감소시켜 긴장을 완화하고 서로 간의 군사력을 감축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내려면, 그 어떤 나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평화지대가 있어야 한다. 바로 동북아의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제주도가 그 평화지대가 될 수 있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양심

제주도가 평화의 지대로 남을 수 있다면, 지리적으로 동북아의 요충지라는 것을 넘어서서, 역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 제주도에 가장 비극적인 일은 4·3사태다. 불과 반세기 전에 발생한 사건으로, 좌우이념의 틈바구니 속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이 참극의 고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해마다 4월 제사 때가 되면, 부모형제와 친척, 자녀를 잃고 시름에 젖은 이들의 통곡소리가 하늘에 닿을 정도다.

그런데 그 진상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십여 년 전에 불과하다. 그 이전에는 국가가 나서서 과거를 애써 부정하고, 심지어 지우려 했다. 도리어 그것을 들추어내는 시도들을 무력으로 억누르고 막았다. 어둠과 무지의 시대였다.

그러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진실이 알려지게 되고 국가의 이름으로 사과를 하고 특별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지난날의 어둠과 고통에서 벗어나 화해와 상생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제주도는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되었다. 제주도는 4·3사태의 희생을 거름으로 참된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야 하고, 동북아의 평화만이 아니라 세계평화를 견인하는 전진기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던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2007년 5월에 강정마을이 해군기지로 정해지고 점차 정부의 계획이 구체화되자, 「경향잡지」 2011년 9월호 ‘제주의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통해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문화를 이룩하며 세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에서 배운 것을 밑거름으로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제주의 땅은 4·3의 희생을 거름으로 참된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인용하였다.

“과학 무기의 발달로 전쟁의 공포와 잔혹성은 엄청나게 불어났다. 이런 무기를 사용하는 전투행위는 정당방위의 한계를 훨씬 벗어나는 막대한 무차별 파괴를 가져올 수 있다. … 도시 전체나 광범한 지역과 그 주민들에게 무차별 파괴를 자행하는 모든 전쟁행위는 하느님을 거스르고 인간 자신을 거스르는 범죄이다. 이는 확고히 또 단호히 단죄받아야 한다”(사목헌장, 80항).

또한 1967년에 바오로 6세 교황이 발표한 회칙 「민족들의 발전」을 인용했다. “지금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기아에 울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빈곤을 당하며 얼마나 많은 문맹자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가? 또 사람들은 학교다운 학교, 병원다운 병원, 주택다운 주택들을 얼마나 바라고 있는가? 그런데 공적 사적인 낭비, 국가나 개인의 허영된 지출, 치열한 군비경쟁이 웬 말이냐? 본인은 이 사실을 명백히 지적할 중한 책임을 느낀다. 너무 늦기 전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 경고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민족들의 발전」, 53항).

강정해군기지는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가속화하여 전쟁에 대한 위기를 증가시킬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호시탐탐 동북아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노리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틈새에서 우리나라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자국의 안전을 보장하고 서로간의 긴장지대를 통한 인위적 평화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생각인가.

역사 이래로 전쟁은 필연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우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9·11테러로 이라크전쟁이 발발하여 수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승자가 없는 허무한 전쟁과 그 후유증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평화는 결코 무장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거짓이요 속임수다. 평화는 평화로서 이루어지며, 역대 교황님들이 한결같이 호소해 오듯 군비축소에서부터 비롯된다. 특히, 분단국가로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평화는 절실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대로 희망을 믿으며, 끊임없이 기도하는 자세, 이것이 우리가 절대 놓지 말아야 할 끈이다.

“한국의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 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절실한 대의입니다. … 우리에게는 한 가지 희망이 있습니다. 남북한은 한 형제입니다.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합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머니가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분단의 고통은 매우 큽니다. 저는 그것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는 분단이 종식되기를 기도합니다”(방한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기내에서 열린 기자회견, 2014년 8월 18일).

* 고병수 요한 - 제주교구 신부이며, 교구 복음화실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2월호, 고병수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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