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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파트 경비노동자 사건과 인간의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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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1-13 ㅣ No.1211

[복음살이] 아파트 경비노동자 사건과 인간의 존엄성



지난 2014년 10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한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입주민과의 언쟁 끝에 유서를 남긴 뒤 분신해 숨진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평소 경비원들을 하인 부리듯 하고 음식물을 먹으라고 던져주고, 인격모독적인 언사를 퍼붓는 몇몇 주민 때문이라는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더구나 이 일이 있은 후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지난 11월5일 회의를 열어 용역업체 변경을 결정했고, 이어서 경비노동자 78명을 포함해 용역업체 노동자 106명에게 12월 31일자로 ‘해고 예고 통보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경비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그동안 ‘간헐적 노동’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의 90%까지만 지급하도록 한 제도를 2015년부터 100%까지 지급하도록 개선했는데, 일부 현장에서는 오히려 경비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보장으로 인한 관리비 상승을 줄이기 위해 이들을 집단 해고하거나, 식사와 수면을 위한 무임금 휴게시간을 경비회사가 늘려 잡아 결과적으로 임금을 깎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휴게시간이라고 해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사실상 근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난 해 11월 말 경 서울 석관동의 두산아파트 입주민들은 입주민대표회의에서 2015년 경비노동자 임금을 최저임금에 추가 인상분을 더하여 19% 인상하기로 결정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아파트 입주민들은 이미 2010년부터 경비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할 것이 아니라 전기료를 아껴서 관리비를 줄이는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냉장고 설정 온도를 올리고, 여름이 아니면 에어컨 전기코드를 뽑고, TV나 인터넷의 전원을 뽑거나 절전모드로 바꾸었습니다.

절반 정도인 천 여 가구가 참여하여 연간 1억 원 가량의 전기요금을 절약했고, 아파트 내 가로등 조명도 형광등에서 LED로 바꾸는 등 공동전기요금도 연간 2억 원 가까이 줄였습니다.

무엇보다 입주민들은 경비노동자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2011년 경비 업체와 계약을 맺을 때 경비노동자의 고용보장 조항을 추가하여 수습기간 3개월이 지난 경비노동자를 해고할 때는 주민 동의를 먼저 거치도록 하였고, 수습기간을 넘지 않은 경비노동자도 교체 비율이 30%를 넘으면 업체와의 계약 자체를 해지하기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경비노동자는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해고 걱정 없이 주민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오래 근무할 수 있게 되었고,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더 잘 파악하게 됨으로써 주민들에게도 혜택을 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경비노동자들의 처우문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각박한 인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지난 2014년 9월 한 달간 아파트 경비노동자 152명을 대상으로 현장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평균 66.2살인 경비노동자들은 본래 업무인 방범 및 안전점검(22.1%)만큼이나 청소(22.6%)나 택배 업무(20.5%)에도 많은 시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과거 1년 사이에 입주민이나 방문객에게서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비율도 69.4%나 되었습니다.


경비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스스로 성찰해야

비교적 고령인 나이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보수를 받으면서 고용 불안과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경비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고용한 용역회사와 입주민들이 이들에 대한 고용주로서의 우월의식과 계급의식을 버리고, 이들이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며 나의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를 바라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4,40)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들의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어려운 이웃중 하나인 경비노동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대해 왔는지 스스로 성찰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성북구 두산아파트 입주민들이 보여준 것처럼 경비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를 살펴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와 같은 아름다운 이웃사랑을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사실 경비노동자들은 투명인간도 아니고 내 맘대로 부릴 수 있는 종도 아니라, 우리의 형제이고 이웃이며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엄한 인격체이며 예수님께서 자신처럼 여기시는 작은이들 중 한 사람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사람을 어떤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이나 도구로 여기는 것은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며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경계합니다(1887항).

경비노동자들을 단순히 집의 안전을 지켜주는 방범용 벨이나 택배를 받아주는 도구처럼 물질적인 수단처럼 여겨서는 안 되며, 그들도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며, 가족을 부양하고자 하는 한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사랑을 다하기 위해 애쓰며, 주민들을 위해 헌신하며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격으로서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사람을 수단이나 도구로 여기는 것은 하느님 법을 어기는 것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또한 인간이 인간답게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선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능력을 기르고 끊임없는 내적 회개와 함께 잘못된 관행과 사회구조를 개선하도록 노력하는 ‘사랑의 길’을 걸으라고 촉구합니다(1888-9). 물질만능주의 시대에서 자칫하면 우리는 무의식중에 현세에 동화되어 자신이 가진 재물의 정도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따지는 지극히 속된 부류로 떨어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의 아파트를 위해 일하는 경비노동자가 모멸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일부 상류층 사람들의 오만함과 무례함은 짧은 경제 성장 속에서 무너져 버린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세속적 권력과 물질만능주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으면서, 인생의 참된 가치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고 많이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서 이웃 사랑의 길을 걸어가느냐에 달려있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로마 12,9-16).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서울 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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