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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수도생활의 유래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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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3-17 ㅣ No.226

[교회상식 교리상식] (84) 수도생활의 유래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수도생활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려 주세요.

 

수도생활은 정결과 청빈과 순명의 복음적 권고를 지킬 것을 공적으로 서약하면서 수도회의 고유한 정신에 따른 활동(사도직)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설립하지는 않으셨지만, 복음을 더욱 철저하게 생활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온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도생활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교회는 사도들의 활발한 복음선교 노력에 힘입어 로마 제국 곳곳으로 크게 확산돼 나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교회는 혹독한 박해를 겪게 됩니다. 기원 후 64년 로마에서 발생한 화재를 기화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대대적 박해를 가한 네로 황제의 대박해 때부터 약 250년 동안 교회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 기간에 적게는 6000~7000명이, 많게는 10만 명 이상이 순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라는 저 유명한 말처럼,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주님 말씀에 더욱 충실하며 굳세게 뿌리를 내려갔습니다.

 

기원 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마침내 긴 박해가 끝났습니다. 박해가 끝나면서 교회도 안정을 찾게 됐지만 박해 시대와 달리 영웅적으로 신앙을 증거할 기회도 없어졌습니다. 박해 시기에는 순교를 하는 것이 신앙의 가장 확실한 표현이었지만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면서 그런 기회가 사라지자 열심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이 주는 안락함을 버리고 사막이나 광야로 들어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머물고자 했지요. 이들을 은수자(隱修者) 혹은 독수자(獨修者)라고 부릅니다.

 

이에 앞서 이미 사도 시대 이후부터 "하느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마태 19,12)는 말씀을 받아들여, 복음에 더욱 충실하고자 금욕 또는 동정을 지킨 열심한 남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은 도시에서 머물기도 했지만 도시를 떠나 사막으로 들어가 은수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은수자들 가운데 교회 역사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이집트 북부 테베 출신의 성 바오로(229~342)와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251~356)입니다. 도인(道人)이나 고승(高僧)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도를 닦으려는 이들이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가곤 하듯이, 엄격한 독수 생활을 하면서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며 모범적 덕행을 실천한 안토니오 성인 주변에는 특히 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안토니오 성인을 '수도승의 아버지' 또는 '은수생활의 창시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도시에서 또는 사막에서 금욕이나 동정을 지키면서 하느님 안에 머무르려는 열심한 남녀 그리스도인이 늘어나면서 폐단도 없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이 혼자서 덕을 쌓으려고 하니까 극단으로 치우쳐 이단으로 빠질 위험이 있었지요. 이런 폐단을 없애는 데 일조한 대표적 인물이 성 파코미오(287~347)입니다. 군 복무 중 세례를 받고 은수 생활을 시작한 성인은 혼자서 하는 은수 생활의 폐단을 깨닫고는 은수자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최초의 수도원을 320년 쯤에 이집트 나일 강변의 테베에 세웁니다. 은수 생활에서 공주(共住, 공동거주) 생활로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파코미오 성인을 공주생활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파코미오 성인이 생각한 이상적 수도 생활은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곧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 것도 자기 소유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생활(2,44-46; 4,32 참조)입니다. 바로 초기 교회 모습을 그대로 실현하려는 생활이지요.

 

이렇게 이집트를 중심으로 시작된 은수 생활과 공주 생활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삶은 거의 동시에 팔레스티나와 시리아 등 동방 전역으로 급속하게 퍼져 나갔고, 성 바실리오(329~379)는 공주 생활을 위한 규칙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수도 생활은 마침내 서방 교회인 로마에까지 알려졌습니다.

 

뒤이어 히포의 주교로서 주교관을 수도원으로까지 개조해 수도생활에 심취한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아우구스티노회 규칙서를 써서 수도생활을 장려했고, 이는 베네딕토회 설립자인 성 베네딕토(480~547?)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베네딕토 성인은 서방 수도생활 규칙서의 대부격인 베네딕토 규칙서를 통해 수도생활 틀을 정립합니다.

 

[평화신문, 2008년 3월 16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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