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가톨릭 교리

가톨릭 교리 상식: 가톨릭교회는 화장 후 유골을 뿌리는 것(산골)을 금지한다면서요? 이유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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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16 ㅣ No.3845

[가톨릭 교리 상식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가톨릭교회는 화장 후 유골을 뿌리는 것(산골)을 금지한다면서요? 이유가 뭔가요?

 

 

예전에 어느 교우께서 아버지의 장례 미사를 마치신 직후에 “이제 저희 아버님께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라고 물어보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죽음 이후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미지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미리 경험해봤을 수는 없기에, 종교를 비롯한 여러 출처에서 제시하는 설명에 의지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사후 세계에 대한 묘사는 우리 그리스도교의 설명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령, 무신론자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완전히 무(無)로 돌아간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고 나면 기억도, 의식도 전부 사라지면서 영혼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한다는 것이죠. 그야말로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는 설명입니다. 반면, 다음 생이 있어서 다른 생명체로 다시 태어난다거나, 자연으로 돌아가서 자연의 일부로 순환하게 된다는 식의 설명도 있습니다.

 

이 중에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명이 있나요? 그러나 죽음 이후의 과정을 각기 다르게 파악하고 있는 여러 가지 관점 중에서 가장 큰 희망을 제시하는 설명은 단연코 우리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앞에서 제시해드린 그 어떤 설명도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제대로 떨쳐내지 못합니다. 죽음은 피하고 싶은 무서운 장애물일 뿐이죠. 그러나 우리 교회는 죽음이 더 이상 극복할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부활’의 믿음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새로운 삶을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안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라는 전례 중 사용되는 기도문이 우리의 믿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우리의 믿음대로 사는지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교회가 화장 후 유골을 뿌리는 것을 금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가장 큰 희망을 선사하는 가르침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절망적인 사후 세계를 뒤쫓는 실천에 그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이죠.

 

교회는 산골이 육신의 부활을 부정하는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합니다. 유골을 산이나 바다 등에 흩어버리는 것은 한 사람이 죽음으로 완전히 소멸해버렸음을 선언하는듯한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자연으로 되돌아가도록 놓아주는 것으로 읽힐 염려도 있습니다. 나아가, 윤회의 특정 단계에 들어간다던가, 육체의 감옥에서 해방되었다는 식의 표현으로도 읽힐 수 있음을 경계합니다. 반면, 유골을 묘지에 잘 모시는 것이야말로 전인적으로 한 인간이 온전히 부활하게 되리라는 ‘육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잘 보여주는 행동이기에 이를 권고하는 것입니다.

 

특히, 유골을 묘지나 교회 내 납골당 등에 모시는 교회의 전통은 한 사람의 죽음이 개인적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공동체가 그 사람의 죽음을 함께 기억하고 그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이 통공 안에서 하나의 교회 안에 속해 있음을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산골을 금지하는 것은 교회가 죽음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최고의 희망만을 바라보며, 살아서도 먼저 부활의 삶을 만끽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 위해서입니다.

 

[2023년 1월 15일(가해) 연중 제2주일 서울주보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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