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122.....연중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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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1-22 ㅣ No.1682

연중 2 주간 목요일 - 홀수 해

히브리서 7,25-8,6         마르코 3,7-12

2015. 1. 22.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특별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가끔씩 그들의 삶을 향하여 4.5차원이나 5차원의 사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렇게 하는 표현이 옳을까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건이나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까, 거기에 가부간의 판단을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그렇게 차원이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겠습니까? 이렇게 차원이 다른 사람이 우리 삶에 빛을 주고 힘이 되는 경우도 있고, 내가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니 완전히 무시하는 대상이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볼 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반대의 입장에서 내가 그들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른 차원의 사람은 아닌지 그것도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예수님이 행동하시는 기적의 힘 때문에, 그가 머물던 장소에서 쫓겨나면서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표현을 들었습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니 분명히 어느 쪽인가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 속한 존재일 것입니다.

 

내가 사는 차원에 다른 사람이 항상 속해야 하는 것일까요? 세상의 논리에 따르면, 그래야 한다고 말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세상은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니, 내가 사는 세상을 다르게 바꿀 힘을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영들이 지르는 소리를 올바른 신앙고백의 내용으로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판단은 여러분 개인이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일이 너와 내가 사는 세계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좋은 의미의 차원이 다른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내가 드러내는 삶의 모양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려고 하는지는 봐야 합니다. 현실의 세상보다 좋게 만드는 것일까요? 아니면 나보다 앞서 나가고 좋은 세상을 지향하는 사람을 주저앉히고 너도 나도 모두 다 망하게 만드는 것이겠습니까?

 

대사제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셨다는 일을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로 평가해야 하며, 우리의 삶도 올바른 길로 향할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세상 삶도 대사제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세상에 좋은 흔적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을 향하여, 지금 내가 가진 자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잠시 내 삶의 모습을 봐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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