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102.....공현대축일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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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1-01 ㅣ No.1671

공현대축일 전 12

1요한 2,22-28       요한 1,19-28 -- 공현전 기간

2015. 1. 2. () 이태원.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우스 주교기념일)

주제 : 예수님은 참으로???

성탄대축일을 지내고, 그로부터 8일째가 되면서 세계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성모님의 축일을 지내고나서 하는 질문으로는 아주 외람된 내용을 담고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질문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그런 질문에 여러분은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그 질문은 <하느님의 아들로 공경하는 예수님은 정말로 역사 안에 태어난 일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후, 100년쯤 시간이 지난 다음은 이런 질문이 있었던 세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로부터 또 1900년이 더 지난 시간인 지금 상황은 어떤 때이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는 사람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신앙은 참으로 신기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을 마치도 본 것이나 손에 잡았던 일처럼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을 전제(前提)로 하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대해서 아주 비판(批判)적인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신앙인은 아주 뛰어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돌아버린 이상한 사람들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에 표현한 질문과 같은 상황이 있었던 것을 그 옛날에는 가현설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역사상에 등장한 적이 없었다는 이론입니다. 물론 우리가 믿고 따르는 정통신앙에서는 배격한 내용입니다. 배격하기는 했지만, 요즘 사람들의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 있을 이론입니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얘기가 오늘 독서 요한의 편지가 글로 쓰인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250년이 더 지난 다음에 활동했던 바실리오주교와 그레고리우스주교의 활동도 같은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주장한 이론을 가리켜, 아리우스이단(=신성부정)이단이라고도 합니다만, 그런 내용을 우리가 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 우리의 삶에는 없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구원자를 말하는 요한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 질문을 들은 요한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요즘의 우리로 치환(置換)해서 생각해봐도 가능할 것입니다. 눈으로 봐야만 그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그 차원을 넘습니다. 그 차원에 만족해야 한다면, 신앙은 자리를 잡을 곳을 잃어버린다는 얘깁니다.

 

공현대축일을 앞두고 신앙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에게 억지로(?) 믿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러거나 저러거나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생각하라는 권고일까요? 신앙을 선택의 문제로 바꾸는 것이 쉽거나 좋은 일은 아니라고 해도, 그 과정을 하나로 볼 줄 알아야 하는 것도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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