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교회문헌ㅣ메시지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신앙의 해 선포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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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1-07 ㅣ No.434

신앙의 해 선포 미사 강론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새 복음화 대회 미사 강론

(바티칸 대성전, 2011년 10월 16일 주일)

 

 

존경하는 형제 주교님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저는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맨 앞에서 일하고 계신 여러분과 함께 거룩한 미사를 거행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 전례는 여러분의 만남을 마무리하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어제 이 새 복음화 사명의 다양한 분야들을 살펴보고 뜻 깊은 증언들을 나누었습니다. 저의 몇 가지 생각을 여러분께 전달하고 싶었는데, 마침 오늘 이렇게 여러분을 위하여 말씀의 빵과 성찬의 빵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생명의 빵과 말씀이신 그리스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참조)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 새 복음화 대회가 10월에, 그것도 전교 주일 전 주에 열리게 되어 기쁩니다. 이는 새로운 복음화의 올바른 보편적 차원을 만민 선교의 보편적 차원과 조화시켜 되새겨 보는 기회입니다.

 

먼저 교황청 새복음화평의회의 초대에 기꺼이 응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인사드립니다. 새롭게 설립된 이 평의회의 의장 살바토레 피시켈라 대주교님과 그분의 협력자들에게도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성경 독서들을 살펴봅시다. 제1독서의 이사야서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한분이시고 유일한 분이시며 주님 말고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과, 막강하다는 페르시아의 황제 키루스조차도 하느님께서만 아시고 펼치시는 더 위대한 계획에 참여할 따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이 독서는 역사의 신학적 의미를 전해 줍니다. 시대적 격변, 막강한 권력의 계승은 하느님의 최고 통치 아래 자리하고, 어떠한 지상 권세도 그 통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 신학은 새로운 복음화의 중요하고 핵심적인 측면입니다. 20세기 전체주의 제국의 암흑기를 거친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세상과 시간을 보는 종합적인 눈, 참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시각을 되찾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그 문서들을 통하여 이러한 시각을 제시해 주었고, 저의 선임자 하느님의 종 바오로 6세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분들의 교도권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2독서는 테살로니카 1서의 시작입니다. 이는 그 자체로 매우 뜻 깊습니다.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복음 전달자인 바오로 사도에게서 우리가 받은 가장 오래된 서간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외따로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실제로 그에게도 실바누스와 티모테오와 다른 많은 협력자들이 있었습니다(1테살 1,1 참조). 이어서 그는 매우 중요한 말을 합니다. 복음을 선포할 때에는 기도가 앞서고 기도와 함께하며 기도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모두 기억하며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1테살 1,2). 그 다음, 사도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그가 아니라 바로 하느님께서 선택하셨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곧 “우리는 여러분이 선택되었음을”(4절) 안다고 강조합니다. 모든 복음 선교사는 이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바로 주님께서 당신 말씀과 당신의 영으로 마음을 어루만지며 사람들을 신앙으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이루는 친교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끝으로 바오로는 자기 경험에서 우러나온 매우 소중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남겨 줍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씁니다. “우리 복음이 말로만이 아니라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5절). 복음화가 효과를 거두려면 성령의 힘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는 복음 선포를 북돋우시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 안에 사도가 말하는 ‘큰 확신’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본래 그리스어 pleroforia에서 나온 이 ‘확신’, ‘큰 확신’이라는 말은 주관적 심리적 측면만이 아니라 충만함, 충실함, 완전함을 표현하는 낱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선포가 바로 이러한 경우입니다. 완전하고 충실한 선포를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처럼 표징과 몸짓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말씀과 성령과 확신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복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게 합니다.

 

이제 복음 구절을 살펴봅시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지 합당하지 않은지에 관한 구절입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이 잘 알려진 예수님의 대답이 나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 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 22,21). 그런데 그 이전에 복음화 사명을 지닌 이들에 관한 구절이 나옵니다. 예수님께 질문한 이들은 바리사이의 제자들과 헤로데 당원들인데, 그들은 예수님께 가서 매우 공손하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16절). 이는, 비록 위선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말입니다. 바리사이의 제자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자기들이 말해 놓고도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이 말은 그들에게는 그저 맘에 없는 입에 발린 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 말은 소중한 진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진실하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지 않으십니다. 그분 자신이 이 ‘하느님의 길’이시고, 우리는 이 길을 따라 걸어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이와 관련하여,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단 길을 알면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진리로 이끌어 줍니다. 생명으로 이끌어 줍니다. ……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그분을 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길로 걸어갑니까?”(「요한 복음 강해」[In Iohannis Evangelium Tractatus], 69,2). 새로운 복음 선포자들은 먼저 그리스도이신 이 길을 걷도록 부름 받습니다. 이 길에서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걸어갑니다. 이는 친교와 형제애의 체험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이들이 우리처럼 그리스도와 그분 교회를 체험할 수 있도록 그들과 친교와 형제애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포와 일치하는 증언은 진리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열어 그들이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게 합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도 간략히 성찰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놀랍게도 현실적인 정치 의식으로 예언 전승의 신중심주의와 연결시켜 대답하십니다. 황제에게 내야 할 세금은 내야 합니다. 동전 위의 초상은 황제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 모든 인간은 그 안에 다른 초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누구나 하느님께, 오로지 하느님께만 자기 존재에 대한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부들은 예수님께서 세금으로 내는 돈 위에 새겨진 황제의 초상을 언급하신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얻어,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대로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근본 개념에 비추어 이 구절을 해석하였습니다. 한 익명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은 황금 위가 아니라 인류에게 새겨져 있습니다. 황제의 돈은 황금이지만, 하느님의 돈은 인간입니다. …… 따라서 여러분의 물질적 부는 황제에게 주십시오. 그러나 하느님을 위하여 여러분의 양심은 흠 없이 간직하십시오. 그곳은 하느님을 관상하는 곳입니다. …… 황제는 자기 초상을 모든 돈 위에 새겨 넣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 영광을 위하여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을 선택하셨습니다”(저자 미상, 마태오 복음에 관한 미완 저술[Opera Incompleta su Matteo], 강론 42).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강론에서 이에 관하여 여러 차례 언급하였습니다. “황제가 동전 위에 자기 초상을 새길 것을 요구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그 안에 새겨진 당신의 모습을 요구하시지 않겠습니까?”(「시편 상해」[Enarrationes in Psalmos], 94,2). 또한, “황제에게 돈을 되돌려 주듯이, 하느님께는 당신 모습이 새겨져 있는 빛나는 영혼을 되돌려 드립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인간 안에 머무십니다(「시편 상해」, 4,8).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인간학적으로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그저 정치적 상황에만 축소시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황제의 권한과 하느님의 권한 사이에, 정치와 종교 사이에 정당한 차이가 있음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켜 왔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사명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고, 하느님의 주권을 기리며, 모든 이에게, 특히 정체성을 잃어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것에 대한 하느님의 권리, 곧 우리 삶에 대한 하느님의 권리를 되새겨 주는 일입니다.

 

온 교회는 사람들을 그들이 헤매고 있는 광야에서 생명의 풀밭으로, 곧 우리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주시는 그리스도와 나누는 친교로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의 이 사명에 새로운 활력을 주려는 목적에서, 저는 앞으로 적절한 교황 교서를 통하여 설명 드리겠지만, 우선 이 성찬례 거행의 자리에서 ‘신앙의 해’를 선포하기로 결정하였음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신앙의 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 50주년이 되는 2012년 10월 11일에 시작되어 2013년 11월 24일 그리스도의 왕 대축일에 끝날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께 돌아서는 더욱 온전한 회개를 위한 은총과 다짐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고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기쁨에 넘쳐 하느님을 선포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려움이 없지는 않겠지만 바로 여러분이 첫 그리스도인들과 똑같은 열정으로 교회가 새롭게 추진하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일할 주역입니다. 끝으로, 저는 우리가 들은 바오로 사도의 말을 빌려 말씀드립니다. 저는 기도할 때 여러분을 모두 기억하며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끊임없이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노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의 인내를 기억합니다. 동정 마리아께서는 주님의 말씀에 두려움 없이 ‘예’하고 응답하셨고, 말씀을 잉태하시고는 기쁨과 희망에 가득 찬 길을 걸으셨으니, 동정 마리아께서 언제나 여러분의 모범이자 안내자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주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그분께 세상의 힘이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겸손하면서도 용기 있고, 단순하면서도 신중하며, 온유하면서도 강인해지는 법을 배우십시오.

 

[출처 : 주교회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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