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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평신도 영성: 중세 유럽을 밝힌 여성 평신도 신비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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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17 ㅣ No.456

[평신도 영성 - 인물] 중세 유럽을 밝힌 여성 평신도 신비가들


- 루뱅의 베긴회 수녀원, 1305년 건설, 199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중세의 영성을 이해하려면 십자군전쟁과 흑사병으로 상징되는 역사적 배경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5세기 말, 로마제국이 몰락하자 800년 그리스도교 왕권은 중부유럽을 중심으로 신성로마제국을 형성하고 스페인의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한 이슬람 세력을 몰아냈으며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십자군전쟁(1095-1291년)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와 교황권의 강화를 위해서 시작된 십자군전쟁은 교황권의 약화와 중앙집권적인 왕권국가들의 전개로 이어지고 몽고를 통해서 들어온 흑사병의 유행(1346-1350년)으로 유럽 인구는 1/3이 줄어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중세 유럽은 암흑기로 표현된다.


평신도 여성 공동체, 베긴


빛은 무엇이었고 그 빛을 가려 시대를 어둡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아가 그 어두움의 한가운데에서 빛을 밝힌 이들은 누구였을까? 역설적으로 중세는 비로소 영성에 눈을 뜬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영국과 동유럽까지 전파되었고 수도원들은 복음대로 사는 모범을 보여주었으며, 신앙은 생활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십자군전쟁으로 남자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여성들이 생산활동에 참여하면서 형성된 평신도 여성들이 모인 ‘베긴’과 여성 신비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베긴(Begijn)은 “기도하다”는 플랑드르어 표현으로, 처녀, 동정녀를 뜻하는 라틴어 Virgo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12세기 라인강변의 빙엔에 살았던 신비가 힐데가르트의 영향이 강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베긴은 독신으로서 경제활동(수공업)을 통해 개인재산을 가진 도시의 평신도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자율적인 결사체로 시작되었다. 제도교회의 형식과 규칙, 나아가 보호를 넘어서 복음에서 영감을 받은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종신제가 아닌 입회와 탈퇴가 자유로운 평신도 공동체가 곳곳에 만들어졌다.

12-14세기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170여 개의 단체가 자발적으로 형성되었으며, 독일의 쾰른 지역에서는 전체 인구 1만 5,000명 가운데 10%가 넘는 2,000여 명이 베긴회 소속이었다는 놀라운 기록도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성과 고통을 따르며 정결과 청빈의 금욕주의적인 삶을 지향했다. 또 사도적 전통을 이어 비정형의 자유로운 가족 형태를 추구하고 이분법적 삶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아가서의 신비적 합일 (결혼)을 모델로 “속죄와 정화,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 신비체험, 신성에 참여, 일치, 우주적 합일, 영적인 삶”의 전 과정을 여성의 경험을 토대로 이해하였는데, 이 모델의 여성적 경향은 인간 영혼의 여성성을 바탕으로 한다.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한 내적 고통은 영적 체험을 통해서 내밀화되는 과정에서 신비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함으로써 관상과 활동이 일치하는 삶을 이루었다.

그들은 성체공경을 통해 신비적 합일을 갈망하고 그 신비체험을 토대로 자국의 언어로 작품을 저술하였다. 각 지역에서 영적인 쇄신을 위해 노력하고 영어 불어 독일어 플랑드르어 등 자국어로 된 문학작품을 남겼다. 기록을 남긴 대표적인 베긴들의 사상을 알아보자.


대표적인 베긴들

우아니의 마리아(1177-1213년)는 신비경험을 통해서 사제의 권위를 넘어서는 예언적 권위를 가진 여성이었다. 1215년, 그의 문하생이었던 자크 드 비트리 신부가 쓴 그의 전기를 통해서 베긴회의 독립적인 삶이 전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의 전기를 통하여 베긴회에 대한 이단의 의심이 시작되었다.

안트베르펜의 헤드비히는 궁정 연애시 형태로 신비경험을 저술(1221-1240년)하였다. 그에게 고통의 원인은 죄가 아니라, 신비적 합일이다. 사랑의 지향은 신비가의 고통이며 역설적 기쁨으로 성체를 통해 일치를 경험하고 사랑 안의 재창조를 위해 자신을 봉헌하기를 바랐다. 그의 사상은 ‘사랑의 신학’으로 이성과 지성을 앞서는 사랑을 강조하였다.

마그데부르크의 메히틸드(1208-1282년)는 자신의 신비경험을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오는 빛」이란 제목으로 펴냈다. 1-6권(1264년)은 마그데부르크에서, 7권은 1270년 이후 헬프타의 수도원에서 저술하였다.

그는 ‘빛의 흘러내림’, ‘사랑’ 등의 은유를 통해 직접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랑의 비행을 표현하고, 신적 사랑에 연결하여 죄를 짓지 않는 인간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하느님과 개인 사이의 매개를 거부하고, 겸손을 통해서 여성이 권력을 가지지 않음을 ‘없음의 완성’과 자유로 긍정하였다. 나아가 당시 성직자들의 생활을 비판하는 예언자의 면모를 보였다.

마르그리트 포레트(1255?-1310년)는 특별히 기억해야 할 여성이다. 1310년 6월에 「단순한 영혼들의 거울」을 저술하여 영적 여정에서 자유의지를 행사하는 영혼들의 관계를 이해하였다.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여정에서 이성보다 사랑을 통한 일치의 길이 일치를 향한 신비주의에서 중요한 것이며, 하느님과 평범한 여성인 자신의 영혼 사이에서 완벽한 일치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그는 이단으로 단죄되었으며 파리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18개월 동안 자신에 대해 아무런 변호도 하지 않았고, 사랑의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만을 추구하다가 화형을 당했다. 자신을 변론하지 않고 침묵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평화로운 모습이 이단 심판관들의 분노를 더 키웠다고 전해진다.

부정신학의 전통을 잇는 포레트의 신학적 성찰을 받아들인 에크하르트의 신비사상은 오늘날에 이르러 그 빛을 드러내게 되었다.

복음을 따라 청빈하고 기쁘게 사는 베긴들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새롭게 요청되는 정신이라 하겠다.


신비가, 동정녀로 알려진 노르위치의 줄리안

마르그리트 포레트 이후 베긴들은 이단자로 고소되어 수많은 여성이 화형당하거나 수도회로 편입되었다. 그들의 영성과 활동을 재평가하는 일은 우리 시대의 과제로 남아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영국 노르위치에서 신비가, 동정녀로 알려진 줄리안(1343-1416년)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불안으로 염세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드러나던 시기에 신비주의적 접근을 통해 고난을 딛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1373년 5월 8일, 심한 고통 중에 하느님으로부터 16차례의 ‘환시’를 보고, 이를 두 개의 텍스트로 이루어진 「계시」라는 책으로 남겼다. 그의 영성은 그리스도의 고통, 수난에 참여하고 통회의 상처, 연민의 상처, 하느님을 갈망하는 지향으로부터 느끼게 될 상처를 받고, 이를 재해석하였다.

풍요의 영성은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전적인 신앙을 고백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 믿음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라는 희망의 근거가 되었다. 나아가 하느님과 예수님을 어머니로 이해하는 모성의 영성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으로 감싸고, 안고, 반기고, 포용하고, 우주적이고, 확장적인 특성으로 나타난다.

곧 하느님의 모성은 삼위일체의 속성의 일부이며 성체는 우리를 먹이고 기르고 새로 나게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유이다. 여성성은 하느님의 부성을 조화롭게 보완해 주며, 모성은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의 각 위격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의 영성은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의 라디오 메시지를 통해 선포되었다. 하느님은 아버지일 뿐 아니라, 어머니로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중세의 평신도 영성가들은 그 시대를 앞서 개인의 이성과 자유의지에 따른 신적 사랑의 합일을 지향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 최우혁 미리암 - 평신도 신학자. 교황청 ‘데레사’대학과 ‘마리아’대학에서 영성과 마리아론을 공부하고, 에디트 슈타인의 사상과 영성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에서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5월호, 최우혁 미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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