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e-세상에서 영성을 살기: 스마트한 세상, 손안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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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3 ㅣ No.448

[e-세상에서 영성을 살기] 스마트한 세상, 손안에 갇히다!


전지전능한 스마트 신, 노예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요?

어디든지 계시고 무엇이든 다 알고 계시며 못하시는 것 없는 분, 나를 환히 알고 계시고, 앉아도 서도 걸어도 누워도 내 모든 것을 아시는 분(시편 139,1-3 참조), 바로 우리의 전지전능한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요즘 스마트 신(gods)이 나타나 이렇게 외칩니다. “당신들의 하느님은 숨기도 하고 대답도 바로 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즉각적으로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날짜와 시간까지 맞춰 해줄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신적 권능을 당신 손에 쥐어주겠다.” 우리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욕망, “동산의 열매를 먹으면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리라.”(창세 3,5 참조)는 달콤한 유혹이지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부적처럼 지니고 다닙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유비쿼터스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는 라틴어로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뜻으로 종교적이고 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유비쿼터스 환경에서는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연결해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 필요한 것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전지전능한 신이 되긴 한 걸까요? 기계와 합일체를 이루고 기계를 내세워 무엇이든 알아내고,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찾아 더없이 분주하게 헤매는 우리들, 혹시 스마트한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는 ‘척’만 해도 아는 것이 되는 지식, 스마트한가요?

개그콘서트 ‘위 캔 척’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아는 척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코너입니다. 첫 부분만 단어 뜻을 설명하다가 이내 “그냥 외워라, 그러면 무시당하지 않는다.” 하며 덮어버립니다. 그저 아는 척만 하면 아는 것이 되는 이 시대의 ‘가벼움’을 정말 잘 풍자한 코너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지식이 DVD로 쌓으면 달을 왕복하는 거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을 우리는 한순간 손에 쥐고 30초 내에 무엇이든 찾을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뇌에서 불러내는 것과 기계에서 불러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지요. 깊은 뜻을 알 필요도 자세히 읽을 필요도 없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한두 마디만 찾아서 기억하면 다 아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꿰뚫어보는 투시력, 스마트한가요?

어디를 가든 낯선 곳에서도 맛집이나 백화점이나 관공서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굳이 기억을 회상할 필요도, 헤매면서 누군가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GPS가 내장된 스마트폰의 앱을 이용하면 주변의 장소를 한눈에 볼 수 있으니까요. 또한 상품을 살 때는 이것저것 살피면서 생각해 보고 만져볼 필요도 없습니다. QR코드를 찍으면 관련정보와 고객의 평가도 볼 수 있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어디를 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여기 없어도 일어나는 동시성, 스마트한가요?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갈 때도 누군가 만나 대화를 할 때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수많은 동일한 사건을 한꺼번에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즉각적으로 말입니다. 기다릴 여유도 없습니다. 동시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을 한꺼번에 대응해 주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일하면서도 놀고 말하면서도 듣고 들으면서도 봅니다. 신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절대공간과 시간에서 자유로워졌으니까요.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인한 동시성과 즉각성은 한시도 우리를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바쁘고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사색하고 성찰할 여유도 필요도 사라졌습니다. 질 높은 메시지보다 빠르고 생생한 정보가 더 중요하게 되었으니까요. 하루만 지나도 오래된 정보가 되고 맙니다. ‘현재’여야 합니다. 실시간 주고받는 대화에 익숙해져 이메일이나 문자는 더디기만 합니다.


어디든지 현존하는 편재성, 스마트한가요?

스마트폰의 원격현존으로 편재성의 욕망은 커지고 더욱더 강력하게 된 ‘나’는 세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연결하고 싶은 사람들과 연결합니다. 그러다 보니 선택적으로 주의집중하면서 다른 것에 수용하기도 몰입하기도 어려워지지요. 유사한 사람들의 생각으로 무장하면서 기존의 신념만 더 강화되는 것 같고요.

우리는 더 이상 관계만을 그리고 대화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욕구(wants)와 필요(needs)를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어찌 사람만으로 만족하겠습니까? 그러니 어떻게 숨어계신 하느님을 찾고 인내하며 기다리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속도’보다 ‘깊이’ 안에 계십니다

사람을 앞에 두고도 스크린만 바라보는 풍경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눈과 음성, 부드러운 몸짓과 행동으로 인간만의 소중한 면대면 대화보다 문자와 이미지 그리고 다양한 기호로 웃고 우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늘 도구가 있고 그 도구에 의해 우리는 생각하고 지각하고 행동합니다.

스마트폰은 더 이상 기계가 아닙니다. 그저 사용하고 즐기다 버리는 도구가 아닙니다. 인간의 분신이고 아바타입니다. 그래서 SNS는 우리의 절대적인 삶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깊이 있는 성찰과 진정성의 교류가 있어야겠습니다. 가벼운 농담과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원하는 것만, 원하는 사람들끼리만 연결하는 ‘폐쇄성’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니 잘못된 스마트폰 사용 습관을 바꾸어야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스마트폰이 부르면 여지없이 노예처럼 달려가지요.

기억합시다. 분신처럼 되어버린 도구로 인하여 어느 순간 우리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시편 135,16-17 참조)기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계를 신뢰하는 자들 모두 기계와 같이(시편 135,18 참조)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속도’보다 ‘깊이’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 거룩한 신앙을 고백할 때입니다.


<더 공부하고 싶으세요?>

멈춰요! 그리고 ‘깊이’ 생각해요!

「속도에서 깊이로」의 저자 윌리엄 파워스는,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는 가장 소중한 내면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스마트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분주한 이유가 무엇일까? 도대체 어디까지가 대중의 생각이며 어디까지 나의 생각인지를 알 수 없는 시대,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깊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셜미디어 속에 흠뻑 젖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 바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끄고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멈추고 호흡하고 깊이 있게 생각할 것을 권한다.

* 김용은 제오르지아 - 살레시오수녀회 수녀. 부산 살레시오영성의집 관장으로 청년과 평신도 신심단체를 위한 현대영성 강좌 및 피정지도를 하고 있으며 여러 수도단체에 디지털 시대의 봉헌생활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을 전공하고 버클리신학대학원 내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영성을 수학했다. 「세상을 감싸는 따뜻한 울림」, 「3S 행복 트라이앵글」, 「영성이 여성에게 말하다」 등의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13년 4월호, 김용은 제오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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