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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e-세상에서 영성을 살기: 자아정체성, 돈으로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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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3 ㅣ No.446

[e-세상에서 영성을 살기] 자아정체성, 돈으로 사다!


‘자본’이 신분입니다

저의 가까운 친척 가운데 내로라하는 유명배우가 있습니다. 이름 석 자만 대도 누구나 다 아는 그런 배우지요. 어릴 적 명절이나 방학 때면 그의 집에 놀러가 재미있게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가 일약 스타가 되더니 그의 가족조차도 친척들과 교류가 끊어지기 시작했지요. 그의 결혼식에는 장동건과 이병헌을 비롯한 한류 스타들이 대거 참석하였지만 친척들은 제외되었습니다. 친척어른들은 배신감에 흥분했지만 그와 우리는 이미 ‘혈연’이 아닌 ‘자본’으로 서로의 신분이 갈라진 것이지요.

자본은 ‘돈’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연고와 인맥, 능력과 자격, 신용, 명예, 권위 등이 모두 자본입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하나의 ‘자본’이 증가하면 다른 자본도 커진다고 합니다. 자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요. 배우로 성공하면서 따라온 부의 축적이 곧 인맥과 명예, 권위 등 사회와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거지요. 그래서 그의 가족은 ‘부’의 상징인 ‘강남’에서 상류층 신분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도 안 달라져. 나아지긴 뭐가 나아져, 노력하면 할수록 절망만 더 커져.”

최근 종영한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의 여주인공은 ‘외로워도 슬퍼도 참고 또 참으며’ 최선을 다해 살아도 희망 없는 현실을 한탄합니다. 게다가 세상은 입은 것, 걸친 것이 안목이고 실력이라며 가난한 디자이너의 안목은 후질 수밖에 없다고 대놓고 무시합니다. 세상은 어떤 노력을 하며 살아왔는지를 묻기보다 어떤 취향으로 살아왔는지를 묻는 것이지요. 어떤 자동차를 타고 어떤 옷을 입고 어디서 어떤 집에서 사느냐는 것, 그것이 곧 그 사람의 능력이고 신분이라는 겁니다.

부르디외는 이를 두고 “취향은 계급”이라는 말을 합니다. 브랜드로 서로를 알아보고 소비로 공감하고 소통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나는 무엇을 소비하는가?’와 무엇이 다를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안목과 취향 그리고 가치관과 세계관도 결국 돈으로 사야 하는 것일까요?


SNS, ‘나’를 파는 시장입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돈 슬레이터는 자아는 사회적 지위와 직업을 갖고자 정체성을 생산해서 여러 시장에 팔아야 한다고 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자아는 자기 자신을 시장에서 판매하기 좋게 내걸린 어떤 상품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고요. 그리고 「부유한 노예」의 저자, 로버트 라이시는 성공은 자신을 어떻게 잘 판매하느냐에 달려있기에 자신을 파는 일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고 하지요.

우리는 어떠한가요? 정말 나를 잘 포장하여 어떻게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SNS 안에서 어떤 소통을 하고 있나요? 나는 무엇을 먹었고, 나는 어디에서 즐겼고, 나는 누구와 만났는지를 올리면서 ‘나’를 PR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러면 사람들은 ‘멋져요!’ ‘좋아요!’라는 느낌을 남기겠지요. 결국 우리는 소비를 통해서 ‘나’를 알리고 연결의 욕구를 채워갑니다.

SNS 활용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하고 유명인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외모와 학력, 독특한 경력으로 ‘나’라는 사람을 알리면서 여기저기 유명세를 타고 방송에 나오기도 합니다. SNS에서의 ‘나’는 모델이고 배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소비자인 친구와 지인의 감각에 파고들어 소통하면서 ‘나’를 팔게 되지요.


‘소비’는 삶의 방식이며 문화입니다

소비란 다만 상품을 사고파는 행위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회학자인 보드리야르는 ‘소비’란 가격표가 없는 시간, 지위, 매체, 물과 공기까지 써버리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곧 소비의 메커니즘을 말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욕망하도록 유도하는 모든 환경과 재현하는 기호들과의 소통은 하나의 구매행위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소비의 메커니즘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 세상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날마다 주고받는 문자와 ‘카톡’,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소통행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소비의 메커니즘 속에 갇혀 사는 것이지요. 이러한 일상의 ‘소비’는 우리 삶의 방식을 안내합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다 보니, 나도 알아보지 못하는 ‘나’로 살아갈 수도 있겠지요.


‘나’를 찾는다는 것, 하느님을 찾는 일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상황과 역할에 맞춰 연기하는 또 다른 자아, 페르소나가 있습니다. 문제는 진짜 자아와 페르소나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포장했던 페르소나가 어느 순간 본래의 ‘나’를 밀쳐내기도 합니다.

시인 에드워드 영은 “우리는 모두 원본으로 태어났는데 왜 복사본으로 죽어가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진짜 ‘나’는 소유와 소비 때문에 변질되고 왜곡되어 갑니다.

부자 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잘나고 싶고, 권력과 명예를 얻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진실처럼 다가옵니다. 나의 개성과 정체성은 이러한 집단의 욕망 속에 숨어들고 유행성 감기처럼 ‘부자병’에 감염되고 말지요. 집단최면에 걸려 대중이 설정한 목표를 따라 살고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나는 정말 누구일까요? 나의 정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요? 시간이 흘러도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나의 실체는 있는 걸까요? 나는 ‘나’이니까 남들과 다를 수 있는 나만의 올바른 선택을 할 수는 없는 걸까요?

하느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의 모습으로 ‘나’를 창조하셨음(창세 1,27 참조)을 잊지 않고, 세상을 일구고 돌보라는(창세 2,15 참조) 소중한 사명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원본(original)으로 태어났으니 원본으로 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공부하고 싶으세요?>

“나의 문화적 취향이 곧 내가 속한 계급을 말해준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년)는 ‘취향’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닌 그 개인이 속한 사회적 위치의 반영이라고 말한다. 취향은 경제자본과 문화자본과 연결된다. 결국 취향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아비투스(habitus)가 존재하는 것, 사회화되고 구조화된 것이다. 아비투스는 구조화된 개인의 성향체계로서 문화적 불평을 말한다. 경제적인 부가 특정한 취향을 갖게 하고 그런 행위가 상류와 하류층의 ‘구별 짓기’로 이어진다. 그의 저서 「구별 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은 우리가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하는 소비문화 현상을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안내해 줄 것이다.

* 김용은 제오르지아 - 살레시오수녀회 수녀. 부산 살레시오영성의집 관장으로 청년과 평신도 신심단체를 위한 현대영성 강좌 및 피정지도를 하고 있으며 여러 수도단체에 디지털 시대의 봉헌생활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을 전공하고 버클리신학대학원 내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영성을 수학했다. 「세상을 감싸는 따뜻한 울림」, 「3S 행복 트라이앵글」, 「영성이 여성에게 말하다」 등의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13년 3월호, 김용은 제오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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