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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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e-세상에서 영성을 살기: 재미중독, 의미를 잠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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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3 ㅣ No.442

[e-세상에서 영성을 살기] 재미중독, ‘의미’를 잠식하다!


심심하면 우울해요!

“혼자 근무하다 보면 재미도 없고 심심해요. 그런데 그 지루함이 짜증스럽고 우울하고, 밤이라서 ‘카톡’도 할 수 없고, 미쳐버릴 것 같아요.”

간호사인 진희는 나이트 근무를 하면서 우울증이 올 것 같다고 하소연합니다. 일은 힘들지 않은데, 심심하면 우울하고 외롭다며 눈물까지 그렁 맺힙니다.

물론 소통이란 외적인 접속으로 서로 무언가 지속적으로 주고받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연결망은 갈수록 촘촘해져 눈뜨고 잠자는 순간까지 디지털 기기를 놓지 못하게 합니다. 거대한 가상의 방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은 당연히 산만하고 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분주함이 없는 심심함과 지루함은 마치 지구 밖에 떨어져 나간 외계인이 된 듯 그냥 그 자체가 외롭고 우울한 거지요. 게다가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일’과 ‘재미’가 분리되지 않다 보니 일하면서 즐기고 놀면서 일하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일할 때 일하고 놀때 논다.”는 것은 옛말이 되고 만 셈이지요. 그러니 밤에 홀로 남아 일만 해야 하는 진희는 혼자라는 그 현실이 지루하고 외로워 미칠 것 같다는 것이지요.


‘하지 않는 것’도 적극적인 선택입니다!

미래학자 리처드 왓슨은 “지루함은 창조적 사고의 촉매제”인데 오늘의 우리는 “한 가지 일을 제대로 할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면서 깊이 있는 사고를 죽이고 있는 이 현실을 한탄합니다.

혹시 이런 적 있나요? 전철 안에서 홀로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왠지 어색해서 스마트폰을 꺼내 하릴없이 만지작거리지는 않았는지요. 누군가와 열심히 대화하다가 상대방이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대화를 멈추면 그 짧은 순간도 너무 민망해 급히 스마트폰을 꺼내 ‘톡톡’ 두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여러 친구들을 만났는데 순간 고요해지면 불안해 쓸데없는 이 말 저 말을 꺼내 수다스러운 분위기가 되어야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는지요? 가만히 있으면 “어디 아파요?” “화났어요?” 하며 다그침을 받은 적은 없었는지요?

혹시 1시간만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지내본 적이 있나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순간, 머리의 작동이 멈춰지고 쌓여있는 생각들이 여물고 마음의 먼지를 씻어줍니다. 침묵과 고독은 쌓인 피로를 녹여내면서 곧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니까요.

우리는 피로하면 쉽게 텔레비전을 켜거나 누군가와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놔야 스트레스가 풀린 것 같지만, 신경학자들은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많은 정보들로 머릿속 교통체증만 악화시킨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도 선택해야 하지만 ‘하지 않는 것’도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챘으면 합니다.


‘지루함’을 즐길 수는 없는 걸까요?

디지털 기기는 수고 없이 쉽게 즐기게 해주는 고마운 기계이지요. 감각적인 흥분을 주고 우리의 마음을 재즈처럼 출렁이게 하는 이 ‘재미’의 유효기간은 참으로 짧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룻밤 자고 나면 새로운 도구와 매뉴얼이 생성되어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런 도구사용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생활방식도 바뀌기 마련이고요. 그래서 바쁩니다.

이렇게 디지털 접속이 확장될수록 외적 관심은 높아지고 내면은 점점 피폐해지기 마련입니다. 이 ‘재미’라는 감정은 텅 빈 마음을 채워주는 것 같지만 마약처럼 빠져들게 합니다. 구멍 난 마음속에 쉬지 않고 집어넣는 재미와 쾌락의 감정은 결국 인내하며 집중하는 사유의 과정을 못 견디게 하지요.

점점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지 못하고, 깊은 통찰력과 지혜를 주는 숭고한 예술을 감상하기도 어려워지지요. 잠시 피로를 잊고 우울한 기분을 달래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반복되는 즐거움의 보상은 뇌의 쾌락 중추를 자극하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잃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니 느낌으로 생각하고 감정으로 판단하게 되지요.


‘의미’를 찾는 ‘재미’를 즐기세요!

우리는 재미없으면 통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감정은 모든 경험의 최종 결과물이라고 하지요. 디지털 재미에서 얻는 말초적 즐거움은 우리를 가짜 포만감에 익숙하게 해주기에 돌아서면 초조하여 의미와 성찰을 이끄는 침묵과 고요함을 지루하게 합니다. 익숙해진 재미와 쾌락의 행위는 결국 우리의 감정과 내면 그리고 영혼을 잠식시키고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깊이’의 사고를 할 수 없게 하지요.

사람들은 세계를 놀라게 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비판에도 세상의 대중과 ‘재미’로 소통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겠지요.

누구는 ‘강남스타일’을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음모’라 하며 포르노적 상상을 하게 하는 동물적인 저속함으로 성을 상품화하였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또 누구는 유머와 풍자, 심장 박동수와 유사한 리듬,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말춤은 대중과의 소통에서 성공했다고 하지요. 성욕이 아닌 ‘희화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와 성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조롱하고 있는 데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작품의 의미는 작품자체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읽는 과정에서 의미가 창출된다고 합니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문화상품인 뮤직비디오는 싸이의 것이 아닌 보고 듣고 소비하는 사람, 바로 우리의 것이지요.

똑같은 텍스트를 가지고 누구는 ‘강남’ 속에 갇혀 즐기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강남’ 밖에 서서 진지한 성찰을 일궈내면서 그 재미의 배를 누리기도 합니다. 결국 의미 있는 가치는 해석하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하겠습니다.

가벼운 재미만으로 외적인 삶에 치중하기보다 ‘의미’를 찾는 “모든 노고에서 즐거움을 얻고 그것이 우리의 모든 노고에 대한 몫”(코헬 2,10 참조)임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대중의 ‘재미’를 참 그리스도인의 성찰로 새롭게 해석하면서 더 깊은 재미를 맛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 공부하고 싶으세요?>

인터넷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얕고 가볍게 만든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IT 미래학자인 니콜라스 카는 인터넷이 우리의 뇌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정보를 찾고 습득하면서 더 똑똑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중력 저하와 건망증, 그리고 깊이 있게 생각하는 데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는 ‘인터넷의 아버지’라는 명성답게 현대의 디지털 기기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명쾌하게 풀어내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조언을 건넨다.

* 김용은 제오르지아 - 살레시오수녀회 수녀. 부산 살레시오영성의집 관장으로 청년과 평신도 신심단체를 위한 현대영성 강좌 및 피정지도를 하고 있으며 여러 수도단체에 디지털 시대의 봉헌생활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을 전공하고 버클리신학대학원 내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영성을 수학했다. 「세상을 감싸는 따뜻한 울림」, 「3S 행복 트라이앵글」, 「영성이 여성에게 말하다」 등의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13년 2월호, 글 송용민 · 그림 최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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