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평신도 영성: 초기 그리스도교의 평신도 영성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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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3 ㅣ No.441

[평신도 영성 : 역사 - 인물] 초기 그리스도교의 평신도 영성가들

동일한 영성의 다양한 실천


평신도 영성에 관해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에 고마움과 함께 반성을 한다. 조선시대의 평신도들이 우리 땅에 복음을 들여오고 정착시키고자 온 생애를 바치고 순교에 이르기까지 열정을 바친 것에 비해 침묵을 큰 덕인 양 살고 있는 평신도인 나의 모습을. 못난 모습의 부끄러움을 잠시 접어두고 훌륭한 신앙의 선조들을 찾아내어 소개를 하는 동안 그 숨결이 내게도 배어들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으로 시작한다.


평신도의 모델,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


교계제도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일어난 뒤 백여 년이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과 그들의 성격에서 평신도의 모델을 찾는 것이 좋겠다.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12명, 제자 또는 사도로 불리는 이들은 베드로에서 시작하여 스승을 팔아넘긴 유다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예수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주제넘게 앞서고, 심지어 스승을 돈에 팔아넘겼다. 그럼에도 그들이 사도의 권위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인품, 지위, 재산, 학력과 상관없이 부르심에 응답해서 예수님을 따라나섰다는 그 한 가지이다.

대단치 않아 보이는 그들이 내린 결단, 그것이 바로 새로운 질서로 이루어질 세상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다양한 배경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였던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헤어졌다가 부활을 경험하고 다시 모였고, 다양한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는 열매를 맺었다.

베드로와 야고보의 순교, 안드레아와 토마스의 선교, 스승을 팔아넘겼다가 곧 죄를 뉘우치고 자살했다는 유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자들의 모습에서 일상을 넘어서는 결단 안에서 또 다른 삶의 일상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한 가지 신앙에서 시작된 사도, 제자들, 추종자들은 어떻게 복음을 위해 헌신했는지 성경을 펼쳐보자.


순교자와 선교사들

첫째,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이들, 곧 순교자이다. 12사도들 중에서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스승이 매달린 십자가에 감히 같은 자세로 달릴 수 없다는 겸손으로 그렇게 순교하였고,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은 바로 그의 무덤에 기초를 두고 세워졌다. 교회는 이렇게 바위와 같은 순교자들의 고백과 열정을 반석으로 하여 튼튼한 기초를 놓을 수 있었다.

12사도 이외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고, 초대교회는 늘어나는 신자들을 위하여 제자들 가운데 일곱 봉사자를 임명했는데, 그 가운데 뛰어난 이가 스테파노였다. 그는 봉사자로서의 능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은총과 능력이 충만하여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키고, 그의 말에서는 지혜와 성령이 드러나 반대자들은 대항할 수 없었다(사도 6,8-10). 결국 그는 예수님처럼 원로와 율법학자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최고의회에서 유다교의 예언을 이룬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하다 돌에 맞아 죽고, 첫 번째 순교자로 기록되었다(사도 7장).

둘째, 복음을 전하려고 자신의 땅을 떠나 돌아올 기약 없이 낯선 땅으로 떠나간 사도, 곧 선교사들이다. 스승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동료들의 증언을 믿지 않다가 부활한 이의 몸에 남겨진 못 자국을 보고서야 믿었다는 토마스(요한 20,24-29)는 눈으로 확인한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고자 인도에까지 이르렀다 한다. 인도의 서남쪽 뭄바이 지역에는 토마스 성인 도착을 기념하는 비가 있고, 이미 1세기에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인 인도인들은 동방교회의 한 갈래인 말라바르 교회를 세웠다.

여러 해 전에 로마의 ‘데레사’ 대학 도서관에서 함께 일했던 인도인 존 신부는 수염을 기르는 삼십대 중반의 호인이었다. 어느 날 선교에 관한 토론을 하다가 그가 바로 말라바르 교회의 사제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스페인보다 먼저 세워진 인도교회의 뿌리에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근대 이후 서구인들의 선교를 통해 비로소 아시아에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가톨릭교회의 선교역사에 관해 코웃음으로 답하던 그의 모습은 충격을 넘어서는 신선함이었다.


바오로 사도

셋째, 스테파노가 순교하던 자리에 앞장서 있던 사울(사도 7,58)은 보수적인 유다인이었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한 뒤에 바오로라고 개명하고 스스로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을 시작했다(갈라 1,11-24). 12사도들을 평신도의 모델로 보았으니, 그 역시 평신도의 모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안티오키아에서 지중해를 가로질러 로마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나 선교여행을 하고, 마침내는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뿐 아니라 소아시아의 여러 신생교회에 편지를 보내 새로운 신자들을 격려하고 교회를 키워낸 설교가인 동시에, 당시 국제사회인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납득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생애와 부활을 믿고 따르는 것의 의미를 해석한 신학자였다.

그가 로마인들에게 쓴 편지인 로마서는 오늘날에도 시들해진 신앙에 새 힘을 북돋우는 영적 잔칫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편지들 이후에 쓰인 네 복음서들 역시 그의 영향으로 작성되었다고 하겠다. 곧 그의 열정과 학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인 만남을 통해서 새로워진 인간, 새로운 질서(로마 8,1-17. 31-39)로 이루어질 세상의 정신적 기초를 마련하는 헌신의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앞에 세워진 그의 동상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베드로와 함께 교회의 주춧돌이 되었다. 그의 뒤를 잇는 다양한 신학자들을 교부라고 부른다. 이렇듯 신앙을 이성으로 해명하여 초기교회의 기초를 다져낸 신학자들 중에는 사제가 아닌 평신도들이 있었고, 나이가 들어서 사제품을 받게 된 이들도 있었다.


순례자와 은수자들

넷째,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초기교회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신앙의 모델은 순례자이다. 우리나라에까지 그 열풍이 일어났던 스페인 북쪽 지방의 순례는 야고보 사도의 순례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스페인 북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여행하고 복음을 전한 순례자이며 선교사로 전해진다. 스페인의 뙤약볕 아래에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매일 걸었던 이들은 이미 그 순례의 의미와 맛을 알고도 남아 또 다른 순례를 꿈꾸고 있으리라.순례자들 가운데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이는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기록으로 남긴 4세기의 여성 에제리아이다. 1884년 이탈리아의 아레초 도서관에서 가무리니가 발견한 여행기에 따르면, 그녀는 갈리아 지방의 낙천적이고 열정적인 신자로, 구약성경의 기록에 따라 모세가 걸어간 시나이반도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곳에서 여러 해를 머물다가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거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여행기는 4세기 말 동방교회의 모습, 성탄에서 성령강림에 이르는 시기의 예루살렘 교회의 전례와 새로운 신자들을 교육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전한다. 구약성경과 초기교회의 상황에 대해 풍부하고 정확한 지식이 있었던 그녀의 여행기를 통해 신앙의 원천을 이루는 역사적 사실들을 직접 경험하고 예루살렘 모교회의 전통을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은 매우 값진 신앙의 유산을 나누는 것이라 하겠다.

다섯째는 박해를 피해서, 또는 박해 이후의 해이해진 교회를 떠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겪은 예수님을 따르고자, 또는 육체적 극기와 한계를 경험하고자 일상의 삶을 떠나서 은수자의 삶을 선택한 이들이다. 이집트의 사막에서 터키의 카파도키아에 이르기까지 백색순교자로 일컬어지는 이들 은수자들의 삶은, 개인적 삶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형태로 확대되어 수도원의 모태가 되었다. 사막의 교부와 교모들의 금언집들은 바구니를 짜는 등 손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아낸 은수자들이 배우고 가르쳤던 유산이다. 그들 가운데 안토니오와 파코미오는 은수자와 수도자의 삶을 시작한 이로 각각 알려져 있다.

예수님을 따른 모든 이는 누구든지 ‘평신도’의 자리에서 시작했음을 교회사를 통해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교계제도가 생겨나면서 그 제도 안에서 부르심과 응답의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니 초기 그리스도교회의 평신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기꺼이 길을 나선 모든 이들, 하나인 신앙의 열정을 다양한 가능성과 구체적인 성소의 이름으로 펼쳐나간 이들 모두를 부르는 이름이라 하겠다.

* 최우혁 미리암 - 평신도 신학자. 교황청 ‘데레사’ 대학과 ‘마리아’ 대학에서 영성과 마리아론을 공부하고, 에디트 슈타인의 사상과 영성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에서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2월호, 최우혁 미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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