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301.....사순 제2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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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2-28 ㅣ No.1713

사순 제2주일 (나해)

창세기 22,1-2.9.10-13.15-18        로마 8,31-34       마르코 9,2-10

2015. 2/28 + 3/1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을 설득할 수 있을까?

신앙인의 생활과 준비에서 중요한 때로 말하는 사순절을 잘 지내고 계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질문하는 사람이 듣고 싶은 대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지금처럼)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아도 어쩔 수는 없지만, 혹시라도 제가 하늘 질문에 여러분이 대답하거나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제게 손해나 이익이 될까요?

오늘은 올해 맞이한 사순절의 두 번째 주일입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의 특별한 시간을 지내고 나서, 복음선포에 나선 것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대하면서 여러분이 어떻게 다른 점을 느꼈을지는 제가 모르지만, 그 자세에 따라서 내 스스로가 여러분 각자가 자기 몸에게 하는 대답은 달라질 것이고, 대답에 따라서 삶의 원칙과 행동방법도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 사순 두 번째 주일에 우리는 복음으로 사순절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화한 내용을 복음으로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이러한 모습변화는 사순시기와 관련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공생활기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역사에서 기억하는 날짜로 정해진 것은 86일입니다. 사순시기에 이러한 말씀을 선택하고 듣게 하는 전례의 의도가 무엇이겠는지 생각할 시간입니다.

영광은 고통과 관련돼 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영광을 얻고 싶으면 반드시 고통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일까요?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모습이 달라졌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고통이후에 다가올 모습이 아름답고 보상을 충분히 주는 것이라고 해도, 우리들 가운데 그 어떤 사람이 그 고통을 선뜻 받아들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이셨으니까, 당신에게 일어날 모든 상황을 아시고 순순히 받아들이셨겠지만, 그런 자신감을 갖고 살지 못하는 우리가 예수님의 본보기를 똑같이 따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내 삶에 찾아온 놀랍고도 기쁜 소식을 잘 숨겨놓아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수고하고 애썼다는 칭찬의 말을 듣기를 원하지 않을 사람은 얼마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오늘 복음의 끝부분에서 특별히 사랑하시던 제자3명에게 분부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지금 본 이 특별하고도 놀라운 경험을 정해진 시간이 되기까지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같은 상황이라면 이 말씀을 과연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을 향하여 그대로 실천하기 어려운 하느님의 요구(!)는 창세기독서말씀에도 나왔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네 후손을 많게 해주시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그 약속의 실현이라고 생각했을 이사악에 대하여, 하느님께서는 그를 번제물로 바치라는 요구를 아브라함에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요구이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령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순히 따른 사람으로 창세기는 기록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그렇게 어이없는 요구를 하셨지만, 우리가 그 말을 듣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지금처럼 성경을 통하여 앞뒤 이야기를 모두 알면, 우리는 당연히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미래의 일을 알기 전이라면 우리가 과연 아브라함과 같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그가 한 것과 같은 행동을 할까요?

하느님은 그렇게 때때로 말도 되지 않는 요구, 인간의 생각으로는 수긍하기 어려운 요구를 인간에게 하시는 잘못된 신일일까요? 만일 우리가 하는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하느님의 행동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설득할 수 있는 지혜를 어디선가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어떤 표현을 쓰면, 인간의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하느님에게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하느님을 바꿔놓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세상에서는 그렇게 살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옳은 사람인지 그른 사람인지는 시간이 대답해줄 것입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가치에만 매몰되어 사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그들에 앞서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세상에 사는 사람들 누구나가 신앙인인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 쉽습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오늘 미사에 오신 여러분 가운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올바른 자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놀라운 방식으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는 하느님, 저희가 당신 앞에서 겸손하게 살도록 해하시어, 당신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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