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227.....사순 제1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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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2-27 ㅣ No.1712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에제키엘 18,21-28       마태오 5,20-26

2015. 2. 27.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자비는 내 맘에 드는가?

사람의 삶은 하루에도 수차례, 혹은 수십 차례 때로는 그 이상 판단의 연속입니다. 이것과 저것 중에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그 이상의 더 많은 가짓수에서 선택하거나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내 맘에 들거나 내 뜻에 맞아서 그 일에 함께 한다고 합니다만, 실제로 100% 내 뜻에 일치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견해를 대변한다는 환상을 갖게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최면에 걸려,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빼낼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 것이 선택되면, 나라와 사회 또 공동체는 퇴보하기도 하지만 파멸하기도 합니다. 그런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후회와 반성은 의미가 없지요?

오늘 독서와 복음은 세상을 대하는 하느님의 방식을 말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사람이 직접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다시 말해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말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밝히셨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독서는 히브리백성이 유배상황에 빠져 있을 때, 하느님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세상을 어떻게 보시는 분이신지 그 기준을 예언자의 입을 통해서 말한 것이고, 복음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사람들을 모아놓고 산상설교에서 하신 말씀의 일부분입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서 퍼뜩 질문한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드러내시는 자비의 모습을 나는 달가워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판단에 따라, 나는 세상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그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보다 더 정의롭고 더 공의롭게 살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개인이 할 일이지만, 세상에 여전히 드러나는 악에 대한 우리의 판단, 내가 보기에 못되게 사는 사람들이 잘 누리고 사는 세상을 보면서, 하느님에 대한 비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이라면 악인은 모조리 치울텐데...’하고 말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은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나에게도 그렇게 악인의 요소가 남아있거나 내 몸의 어느 구석에 그런 것이 잘 숨어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갑갑해지는 일이지요?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판단할 능력이 나에게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재빠른 단정보다는 삶의 여유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비가 어떻게 드러나야 한다고 여기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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