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225.....사순 제1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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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2-25 ㅣ No.1710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요나 3,1-10 루카 11,29-32

2015. 2. 25. 이태원

주제 : 요나의 표징이 통하는 세상

세상에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선뜻 그런 질문을 들으면, ‘나는 무조건 행복합니다(!)’하고 대답할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혹시라도 지금 돈 얘기를 하는 거야, 건강얘기를 하는 거야하고 그 말이 적용될 분야를 구별하지는 않을까요? 그래서 이 일은 행복하지만, 저 일에는 아니고, 그래서 결론은 아직 행복하다고 말할 수가 없지...하고 대답을 끝내지는 않을까요?


사람의 삶에 행복이란 참 요원한 일입니다. 사람들마다 판단기준이 다른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나 혼자만 누리는 것이라거나, (?)들의 간섭을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판단한다면 더 큰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요나예언서독서를 통하여, 우리 삶에 있을 법한 행복을 깨는 사람의 본보기를 만났습니다. 요나는 니네베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러 간 사람일까요? 불행을 얘기하러 간 사람일까요?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향에 따라 우리들의 삶에도 뭔가가 달라질 것입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중국의 고사성어(故事成語)인데, 이 말의 내용을 오늘말씀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나예언자가 선포한 예언은 분명, 그들의 삶에 불행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니네베사람들이 불행을 얘기하는 예언을 그저 불행을 얘기하는 것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행복의 요소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해도 된다는 자유의식을 갖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나쁘다/혹은/좋다는 것은 그 다음문제입니다. 그렇게 드러내는 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결과이니, 지금 당장은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만약, 요나의 삶과 같은 표징이 통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우리는 불행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그저 놀라운 것만 찾을 것이기 때문이고, 놀라운 일에만 반응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놀라운 것을 찾는 것을 탓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이 드러내는 특징이요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귀중하게 듣고 사는지, 개인적으로라도 판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까이에서 듣던 군중들이나, 요나예언자의 선포를 불러들인 니네베사람들이 드러냈던 삶의 모습은 우리들과 얼마나 가까이에 있겠습니까? 가깝거나 먼 것을 파악하여 올바로 행동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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