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220.....사순시작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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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2-19 ㅣ No.1705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사야 58,1-9ㄱ            마태오 9,14-15

2015. 2. 20. 이태원

주제 : 다른 이의 뜻을 읽기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다른 대상의 뜻을 읽고 읽은 대로 행동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상대방의 삶에 비교하여, 그렇게 낮은 자세(!)로 살지는 않겠다고 말할 법도 하지만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서 혼자 산다고 하더라도, 내가 다른 대상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른 대상이 처한 상황을 읽고 그에 바르게 대해야만 곡식을 얻든지 양식을 얻든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그 대상이 자연의 식물들이나 사람의 의지에 거슬러서 그저 조용히(!)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사람의 삶은 힘겨워지는 법입니다.

 

올해는 설날을 맞이하기 하루 전부터 사순절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명절과 신앙의 특별한 절기가 함께 연결되다보면 어느 한쪽이 희생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세상의 삶을 무시하거나 그것을 가볍게 본다고는 말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세상의 상황에 맞춰, 신앙의 모습이 한 걸음 물러서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하는 일에 잘하는 것이냐 혹은 잘못하는 것이냐 하는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잣대를 들이대면, 어느 한쪽에 대한 평가가 심각해지는 법이고, 그에 따라 부작용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순절의 규정준수와 명절이 부딪히면서 서울교구에서는 관면(寬免)이라는 표현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만, 똑같은 일을 한 주간 늦추어서 실행하라고 권고한 교구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순절에 실천할 것으로 제시하는 단식(斷食)’에 대한 이사야예언서의 말씀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을 왜 지키지 않느냐고 세례자요한의 제자들이 항의하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그런 단식을 왜 지키지 못하겠느냐고 하면서, 형식적인 대답으로 흐를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형식적인 대답이 옳은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우리 신앙에서 말하는 단식(=>금식/禁食)은 외형으로 드러나는 일에 초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외형으로 드러나는 일과 함께 안으로 의미를 담는다면 참 좋은 일이겠지만, 한 가지만 선택한다면, 이사야예언서가 전하는 의미를 바르게 알아들어야 합니다. 이사야예언자가 전하는 하느님의 뜻은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는 것이다.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입니다. 당연히 실천은 어렵다고 할 것이고,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나서겠습니까? 그러려면,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겠습니까? 내가 만족하는 수준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정하실 기준이어야 한다는 것이 철칙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잊지 않고 살게 해주시라고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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