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211.....연중 제5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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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2-10 ㅣ No.1697

연중 제5주간 수요일 - 홀수 해

창세기 2,4-9. 15-17           마르코 7,14-21

2015. 2. 11. 이태원. 병자의 날

주제 : 하느님의 뜻

우리는 살면서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의 뜻을 아주 쉽게 짐작하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겪어봤더니, 그 사람은 분명히 이런 뜻을 갖고 세상을 살겠지!’라고 하거나 내가 아는 한 그 사람은 이런 뜻을 가진 사람이야!’하고 장담하는 표현이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 그가 가진 삶의 뜻에 대해서 잘 알까요?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요? 상상에 근거한 질문이었습니다만, 분명히 그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혹은 심도가 있게 보셨을 예수님께서, 사람들에 대하여 판단하신 말씀이 오늘 복음에는 나왔습니다. 15절의 말씀으로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전부 다 옳다는 전제를 두고 하는 얘기이니, 그 말씀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어떤 반대의 논리를 꺼내야 하는지 어렵겠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판단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전제로 한다면,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판단이 틀렸으니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옳은(??) 생각을 주장하면서 살아야할까요? 아니면 그래도 예수님의 말씀에 진리(眞理)가 있을 터이니, 그 사실은 전제(前提)로 해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것 역시도 선택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오늘 독서로 읽은 창세기2장의 말씀은 어제와 그제 읽은 창세기1장의 말씀보다 기록된 역사가 500년은 앞섰다고 하는 얘기입니다. 사실 여부는 우리들 각자가 모르지만, 성경학계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그런 주장에 맞는 다양한 얘기를 합니다.

더 오래된 창조이야기에는 사람과 동식물에 대한 창조에 대한 얘기는 없고, 신앙에서 민감하게 관심을 가질 주제인 선()과 악()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냅니다. 헌데 애석한 것은 하느님께서 에덴동산에 어째서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유혹에 빠지도록 하신 것은 아닐 것이고, 지금부터 3000년 전쯤, 솔로몬시대에 가졌을 아주 커다란 궁금증은 선과 악에 대한 문제였고, 그 문제를 세상이 시작될 때 이야기와 연결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판단하게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다면, 사람이 악한 길을 선택하고 선한 길을 버리게 되는 것도 하느님의 탓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사람의 삶에는 선한 길고 악한 길이 동시에 있습니다. 어떤 것을 먼저 선택하고 그 결과를 내 앞에 가까이 두게 하느냐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훗날 후회한다고 해서 그 결과와 함께 내 삶에서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에게서 코를 통하여 숨을 받은 생명체,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실현하는 생명체로 살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비를 함께 청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기도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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