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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아버지 여정: 아버지라고 쓰고 뭐라고 읽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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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7-17 ㅣ No.631

[아버지 여정] ‘아버지’라고 쓰고 뭐라고 읽으십니까?


“우리 모두는 상처를 받습니다. 문제는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힌 사람을 용서할 수 없거나 용서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계속 아프게 하는 상처입니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 중에서).


‘아버지’라고 쓰고 ‘상처’라고 읽는다?

‘아버지’라고 쓰고 ‘상처’라고 읽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문제는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힌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거나 용서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을 계속 아프게 하는 상처입니다. 아버지를 비난하고 원망하는 것은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용서가 필요합니다. 상처를 치유하고자, 삶을 제대로 살고자,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고자 나의 아버지를 용서해야 합니다.

아버지를 용서하기 힘들 때는 아버지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습니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심리기법을 하나 소개합니다.

빈 의자 기법(Empty-chairTechnique)

1단계 - 의자 두 개를 서로 마주 보게 놓고 한쪽에 가서 앉습니다. 그리고 비어있는 반대편 의자에는 아버지가 앉아계시다고 상상하고, 평소에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 과거에 아버지로부터 상처받았던 일 등에 대해 솔직하고 편안하게 이야기합니다.

2단계 - 이야기를 마치면 반대편 의자로 자리를 옮겨 앉아서, 자신이 했던 말에 대해 아버지에게 듣고 싶은 말, 아버지가 해주었으면 하는 말 등에 대해 자신이 실제 아버지가 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게 됩니다. 특히 아버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자신이 직접 하는 2단계에서 많은 치유가 이루어지는데,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직접 말을 한다고 상상을 하면서 천천히 음미하듯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아버지를 용서해 다오”

“사랑하는 아들아! 너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아버지로서 부족한 점이 참으로 많았다는 것을 나 역시도 잘 알고 있단다.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단다. 사랑을 표현하는 게 너무나도 어색했고 그 방법을 잘 몰랐던 것뿐이란다. 사실 나는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아버지 노릇을 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으로 착각했었단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하며 너에게 너무도 무관심하게 대했던 것 같구나. 이런 아버지를 용서해다오!”

“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가며 너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 같구나. 사실 그것은 모두 네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했던 말들이란다. 하지만 그런 나의 말들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너의 마음을 후벼 파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단다. 지금이라도 내가 너에게 쏟아부었던 모든 험한 말들을 주워 담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심정이란다. 이런 아버지를 용서해 다오!”

“나는 남자는 절대로 눈물을 보이면 안 되고, 실패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너를 강하게 키우려 했었단다. 그래서 때로는 너에게 매를 들기도 하고, 때로는 나도 모르게 너에게 손찌검을 하고 말았구나. 다른 방법으로 좋게 타이를 수도 있었을 텐데 너에게 너무도 모질게 굴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구나. 이런 아버지를 용서해 다오!”

“네가 기뻐할 때 함께 웃어주지 못했고, 네가 슬퍼서 눈물을 흘릴 때 함께 울어주지 못했고, 네가 힘들고 지쳤을 때 꼬옥 안아주지 못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럽구나. 이런 것들은 사실 나 자신이 너의 할아버지한테 가장 받고 싶었던 것들이란다. 나는 절대로 너의 할아버지처럼 되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그게 정말 쉽지가 않더구나. 이런 아버지를 용서해다오!”

“돌아보면 너의 할아버지도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남겼단다. 그리고 나는 그 상처를 다시 너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말았구나. 하지만 너는 너의 자녀에게 내가 물려준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 아버지는 이제 너를 도와줄 힘이 없구나. 그것은 전적으로 너의 사명이기 때문이란다. 이 아버지가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너에게 나의 죄스러운 과거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것밖에 없구나. 이런 아버지를 용서해다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좋겠구나.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너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너를 더 많이 안아주고, 정말이지 진정 너에게 존경받을 만한 좋은 아버지로 다시 살고 싶구나. 아들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아들아, 너를 사랑한다.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 지금 이 순간 네가 몹시 그립구나.”


아버지께 마음으로 띄우는 편지

사실 이 예문들은 과거에 필자 본인이 빈 의자 기법을 사용하며 했던 말들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마음을 털어놓고 나니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들이 정말 많이 해소가 되더군요. 그런데 저는 조금 더 욕심이 났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직접 용서해 달라는 말,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지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용기를 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글로 정리해서 아버지께 보여드렸고, 아버지께서는 흔쾌히 저에게 직접 이글을 소리 내어 읽어주셨습니다. 많이 우시더군요.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는 표현은 아마도 이럴 때 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제가 이곳 경향잡지에 올리고 있는 글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으신답니다. 분명히 이번 글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읽으시겠지요. 그런 아버지께, 아니 아빠에게 아들의 마음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띄워 보냅니다.

사랑하는 아빠,
당신은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빠’라고 쓰고 ‘사랑’이라고 읽습니다.
다음 생에서도 저의 아빠가 되어주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 권혁주 라자로 -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 가족관계 프로그램 개발 연구원. 그동안 서울대교구 혼인강좌, 부부여정, 아버지여정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경향잡지, 2012년 7월호, 글 권혁주 · 그림 하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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