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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성독지남: 말씀 안에서 친교를 이룬 수도공동체, 코이노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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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25 ㅣ No.356

[聖讀指南] 말씀 안에서 친교를 이룬 수도공동체, 코이노니아


이제 기나 긴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따뜻한 봄이 다가왔다. 봄은 특별히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생명의 약동을 선물로 가져다주기에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지난 호부터 다루는 파코미우스는 고대의 수도승 전통 안에 있었던 렉시오 디비나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을 주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성 파코미우스(St. Pachomius, 292-346)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구체적인 길로서 코이노니아(koinonia)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설립했다. 그는 시간이 가면서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는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과 또한 경제적 측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규칙서를 손수 저술했고 또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가 족과 소유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고서는 참된 주님 제자됨의 길을 결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불과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후에 거대한 코이노니아 공동체는 후계자 문제로 많은 긴장과 대립에 노출되었다. 비록 파코미우스의 뛰어난 두 제자 테오도루스(Theodorus)와 호르시에시우스(Horsiesius)가 얼마동안 수도회의 장상이 되어 공동체를 이끌었지만, 테오도루스(+368)와 호르시에시우스(+387)가 죽자 파코미우스의 공동체는 곧 모든 것이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파코미우스의 공동체에서 하느님 말씀이 그들 삶의 중심에 있었음을 그의 규칙서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최초의 수도규칙서인 파코미우스 규칙서는 고대 이집트어인 콥트어로 저술되었다. 현재 파코미우스 규칙서의 콥트어 원문은 단편만 남아있고, 희랍어 역본은 발췌본만 전해져 오고 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파코미우스 규칙서의 전문은 라틴어 본으로만 남아 있다. 파코미우스 규칙서는 이후 동방과 서방의 모든 규칙서들에 직접 간접으로 크게 영향을 미쳤던 최초의 규칙서이다.

라틴 교부총서(Patrologia Latina 23)에 있는 파코미우스의 라틴어 규칙서는 베들레헴 수도공동체에 머물렀던 히에로니무스가 특별한 동기 때문에 404년에 희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 사실 404년 1월 26일에, 히에로니무스는 영적인 벗이었던 바울라(347-404)의 죽음으로 인해 매우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때 예기치 않게 하느님의 사람이었던 사제 실바노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청을 하였다. 즉 실바노는 이집트 테바이데의 공동체들, 즉 메타노이아 수도원에 콥트어와 희랍어를 모르는 라틴어권 사람들을 위해 파코미우스 규칙서를 라틴어로 번역해 줄 것을 그에게 간곡히 요청하였다. 그러자 그는 바울라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오랜 침묵을 깨고 이에 응답하게 된다. 특별히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많은 이들과 그녀의 공동체와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형제들을 위해 그는 이러한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비로소 파코미우스 공동체의 삶과 영성이 서방교회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파코미우스 공동체인 코이노니아에는 9개의 남자 수도원과 3개의 여자 수녀원으로 이루어져 총 12개의 수도원이 있었다. 그리고 한 수도원에는 대개 30~40개의 집(casa)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집에는 같은 일을 하는 형제들, 예를 들면 어떤 집에는 아마천을 짜는 이들만이 있고, 또 다른 집에는 돗자리를 만드는 이들, 혹은 재봉사들 혹은 목수들 혹은 세탁하는 이들 혹은 구두 수선공들이 같은 집에 머물렀으며, 그 인원은 한 집에 대게 30~40명이었다. 그리고 3~4개의 집이 하나의 부족(tribus)을 이루었는데, 그 당시 한 수도원에는 대개 900~1,600명의 수도자들이 함께 살았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있어 히에로니무스는 파코미우스 전 공동체의 총 인원이 약 오만 명이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요한 카시아누스는 오천 명이라고 표현하였고, 팔라디우스는 칠천 명이라고 묘사하 였다.

파코미우스 공동체인 코이노니아에 속한 모든 수도자들은 일 년에 두 차례 함께 모여야 했다. 파스카 시기가 다가오면 모든 수도자들은 최고 장상이 머물던 프보우(Phbow) 수도원에 모여와, 함께 주님의 수난축제를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메소레(Mesore)라고 불리는 달인 8월에는 전 공동체가 함께 모여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화해와 은총의 시간을 가졌다.

파코미우스 공동체의 수도자들의 순서는 세속적인 나이에 관계없이 입회 순서를 따랐다. 먼저 입회한 사람은 항상 앞자리에 앉고, 걸어갈 때도 선임자가 앞서서 걸어갔다. 선임자는 성당에서도 먼저 시편을 외우거나 영성체를 하였으며, 식당에서도 먼저 음식을 먹었다. 그 당시 수도자들의 방은 아주 단순했으며 명시된 물건들 외에는 아무것도 개인적으로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 즉 소매 없는 평상복인 두 벌의 투니까(tunica)와 두 벌의 두건인 꾸꿀라(cuculla), 그리고 멜로타(melota)라고 부르는 염소가죽 옷, 띠, 신발 그리고 여행할 때 사용하는 지팡이가 전부였다. 그들은 하루에 한번 식사를 하였으며 매우 엄격하게 살았다. 부활절부터 성령강림절까지는 예외지만, 그 나머지 날에는 주간에 두 번, 즉 수요일과 금요일에 모두 단식하였다. 그러나 병자 혹은 노약자나 어린이들에게는 예외를 두고 있는데, 이것은 파코미우스가 그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세심한 배려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파코미우스 규칙서는 4개의 모음집들로 이루어졌는데, 즉 『계명집』은 144개 항목, 『계명과 제도집』은 18개 항목, 『계명과 판단집』은 16개 항목, 『계명과 규범집』은 15개 항목으로 총 193개 항목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모음집인 『계명집』은 가장 길 뿐만 아니라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사항들을 규정하고 있는데 반해, 나머지 다른 세 개의 모음집들에서는 몇 가지 새로운 사항들이 첨가되거나 혹은 몇 가지가 더 보완되어 있을 뿐이다. 파코미우스 규칙서의 핵심인 『계명집』과 그의 제자였던 호르시에시우스의 『규정집』에 렉시오 디비나와 관계된 부분들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다음 호에서 계속 살펴보고자 한다.

[분도, 2012년 봄호,
글 · 사진제공 허성준 가브리엘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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