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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독지남: 회수도생활의 창시자 성 파코미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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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讀指南] 회수도생활의 창시자 성 파코미우스
소임지를 대구 파티마 병원으로 옮긴지도 어느 덧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기나긴 여름 동안 더위에 땀을 흘리는가 싶더니,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떨구고 이제 겨울이 성큼 다가와 있다. 우리의 삶도 세월처럼 그냥 잠시 흘러가 버리고 말 것이 아닌가. 다시금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잠시 지나가는 세월에 너무 많은 기대와 욕심과 헛된 영광을 쫓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혜로운 삶은 분명 아닌 듯하다. 죽는 날까지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은총이고 축복이다. 그러기에 일상 안에서 수행자라는 깊은 자각과 이에 걸맞은 영적 수행이 더 요구된다. 이런 측면에서 성독 수행은 일상 안에서 어떻게 말씀과 함께 말씀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312년 동로마에서도 역시 막시미누스 다이아(Maximinus Daia)가 리치니우스(Licinius) 황제를 거슬러 반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황제는 많은 젊은이들을 강제로 징집했다. 바로 이즈음 파코미우스는 다른 젊은이들과 함께 마을에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붙잡혀갔다. 그 당시 파코미우스는 20살이었다. 그는 같이 붙잡힌 젊은이들과 함께 배에 태워져 나일 강을 따라 알렉산드리아로 끌려갔다. 징집병들을 가득 실은 배는 저녁이 되자 테베(현대지명 룩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정박했고, 군인들은 그들을 마을에 있는 감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밤에 그들에게 몰래 다가와 음식을 나누어 주며 자선을 베풀어 주었다. 그때 파코미우스는 그들이 누구인지 몰랐으나, 다른 동료가 ‘저들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라고 알려주었다. 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그 날 밤 한쪽으로 물러나 하느님께 다음과 같이 간절히 기도했다. ‘만약 당신이 나를 자유의 몸이 되게 하신다면, 나의 남은 삶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온전히 봉헌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리스도인들이 베푼 자선이 이교도였던 그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고, 이 일은 파코미우스의 전 생애 동안 결코 잊혀 질 수가 없었다. 그의 눈에 그리스도인들이란 모든 사람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로 보였다. 이러한 생각은 훗날 그의 수도승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파코미우스는 하느님과 형제들을 섬기는 일을 수도승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312년에 반란을 일으켰던 막시미누스 다이아가 이듬해 리치니우스 황제에게 크게 패하자, 곧 파코미우스는 안티노에(Antinoe)에서 풀려났다. 이때 그의 나이는 21살이었다. 그는 이미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네셋(Seneset)이라는 마을 근처에 살면서 개종하여 세례를 받았다. 그는 하느님과 사람들을 섬기겠다고 한 약속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봉사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파코미우스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은수자들처럼 고독과 침묵 중에 하느님만을 간절히 섬기며 살겠다는 갈망이 솟아올랐다. 파코미우스는 은수자가 되기 위해서 세네셋을 떠나 은수자 팔라몬(Palamon)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그는 처음에 은수자로서 안토니우스처럼 많은 유혹들을 겪어야 했으며, 또한 그와 비슷한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은 그와 달랐다. 어느 날 그는 환시를 통해 혼자 하느님을 찬미하는 삶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공동 수도생활을 시작하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31살에 스승인 팔라몬과 헤어져 당시 버려진 마을이었던 타벤네시(Tabennesi)로 가서 살았다. 처음에는 친형인 요한이 합류하여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했지만, 곧 시간이 가면서 두 형제 사이에 의견 대립이 생기게 되었다. 요한은 그냥 작은 독방에서 계속 살면서 은수생활에 충실하기를 바랐지만, 하느님의 메시지를 받았던 파코미우스는 큰 수도공동체를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파코미우스와 요한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그 이후에 파코미우스 주위로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파코미우스는 ‘코이노니아’ 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장상이 되었다. [분도, 2011년 겨울호, 글 · 사진제공 허성준 가브리엘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0 1,217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