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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성독지남: 성 안토니우스를 불태웠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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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25 ㅣ No.354

[聖讀指南] 성 안토니우스를 불태웠던 말씀


지난 여름 소임지가 바뀌어 수도원 본원을 떠나 대구 파티마 병원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동안 새로운 얼굴들과 환경에 적응하느라 무척이나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어떻게 도시 한복판에서 사부 성 베네딕도의 영성과 사막의 영성을 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하나의 크나큰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스승인 성 베네딕도를 따르는 수녀님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크나큰 위안이다.

지난 호에 우리는 고대 수도승 전통 안에서 발견되는 렉시오 디비나의 3가지 키워드인 ‘기억’과 ‘반복’ 그리고 ‘마음’의 중요성을 살펴보았다. 특별히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 전체를 기억 속에 간직하였던 성 안토니우스의 모범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말씀에 다가가야 하는지, 하나의 구체적인 실례를 보여준다. 이번에는 은수자들의 스승인 성 안토니우스의 삶과 영적 여정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성 안토니우스는 251년 이집트의 베니 수에프(Beni Suef)라는 마을의 부유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종교교육을 착실히 받고 자라났다. 18살 즈음에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뜨자, 그는 갑자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누이동생을 부양해야 할 의무를 졌다. 그러나 그때 그의 내면에서는 ‘어떻게 하면 완전한 자가 되는가?’,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 부분에 있어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고대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완전함 혹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증이 간절하지 못한 것 같다. 우리가 만일 고대인들처럼 이러한 근본적인 신앙의 문제들에 더 초점을 맞춘다면 아마도 우리의 영적 여정은 더 기쁘고 행복할 것이다. 아무튼 그 당시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깊은 고민에 휩싸였는데, 그때 예기치 않게 주님의 소리를 듣게 된다.

어느 날 그가 성당에 갔을 때, 그날 선포된 말씀 중에 유독 한 말씀이 그의 마음을 강하게 불타게 하였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그는 이 말씀을 주님께서 자기에게 주시는 구체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성경의 말씀처럼 실제로 가진 재산을 거의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여동생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에 그는 여동생을 위해 약간의 유산을 남겨 두었다. 이제 다시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날, 성당에 갔을 때 그날 선포된 말씀 중에 하나가 또 다시 주님의 메시지로 다가왔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이제 안토니우스는 여동생을 위해 조금 남겨두었던 재산마저도 다 팔아 아무런 미련 없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후, 여동생은 동정녀들에게 맡겼다.

이렇게 모든 사회적인 의무들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는 이제 하느님만을 향한 영적 여정을 시작한다. 그때 나이는 20살이었는데, 그는 먼저 마을 변두리로 물러나 수행생활의 기본기들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수행자로서 어떻게 사탄과 싸워야 하는지, 무엇을 먹고 먹지 말아야 하는지, 기도와 밤샘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행생활의 기본기들을 하나하나 직접 체득하게 된다. 이것은 단지 머리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수도생활에 필요한 덕목들을 온몸과 마음으로 배우는 수행을 말한다. 이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영적으로 싸울 준비가 되자, 그는 곧 사탄과 직면하기 위해 마을 변두리에서 더 멀리 떨어진 무덤가로 물러났다. 성인은 이곳에서 사탄과 적나라한 싸움을 치르게 되는데, 격렬한 싸움 후에 비로소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사탄과 싸움으로 몹시 지친 안토니우스에게 갑자기 하늘에서 한줄기 강한 빛이 비추더니 주님께서 다가오셨다. 그때 안토니우스는 주님께, “제가 사탄과 힘들게 싸우고 있을 때, 대체 당신은 어디 계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때 주님은 그에게 “나는 그때 너와 함께 있었다!”라고 말해주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내면 깊은 곳에서 말 못할 기쁨이 흘러넘침을 체험하게 된다. 그는 홀로 사탄과 힘겹게 대면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주님께서 그 고통스러운 시간들에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주님의 현시를 깊이 체험한 후에, 안토니우스는 이제 더 깊은 사막을 향해 나일 강을 건너 마을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사막으로 물러났다. 그때 그의 나이 35살이었다. 바로 그곳이 피스피르(Pispir)인데, 현대 지명으로는 메이문(Maymoun)이다. 이곳에서 그는 더 깊은 고독과 침묵 속에 철저히 은수자로서 20년을 머물렀다. 그리고 그의 나이 55살이 되었을 때, 그의 친구들이 다가와 그의 은거처의 문을 부수고 그를 세상으로 나오게 하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때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변모되었다. 이로써 세상에 나온 그는 이제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개방하기 시작하여 6년을 지낸 후에, 그는 더 깊은 고독과 침묵에 대한 갈증으로 그곳을 떠나 더 깊은 사막인 홍해 근처 콜짐산(Mt. Colzim)의 동굴로 물러났다. 그곳에서 44년 동안 철저히 고독과 침묵 중에 살다가 356년, 105세의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성 안토니우스의 영적 여정을 보면, 그는 하느님을 찾아 세상 한복판으로부터 멀리, 더 멀리 떠났다. 그리고 20년 동안 철저히 고독과 침묵 중에 머물며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모되었다. 그리고 다시 세상 한복판으로 깊게, 더 깊게 나아가는 여정을 통해 우리의 영적 여정의 구체적인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그는 마을 변두리로 물러나 매일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또 읽고 깊이 묵상함으로써 그의 기억력이 성경 전체를 대신할 정도였다고 하니, 성독 수행을 게을리하는 우리들에게 따끔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분도, 2011년 가을호, 
글 · 사진제공 허성준 가브리엘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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