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330.....성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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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3-29 ㅣ No.1738

성주간 월요일

이사야 42,1-7        요한 12,1-11

2015. 3. 30.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기준

하느님께서 세상을 향해서 어떤 일을 하실까요? 질문은 이렇게 하지만, 그것을 사람의 눈으로 보고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특히 신앙에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표현으로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말합니다. 과연 하느님은 세상의 일에 당신의 모습을 어떻게 드러낼까요?



우리가 이렇게 하느님께서 행동하신다는 표현을 쓰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굳이 만들자면, 하느님께서 하신다는 일이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일 겁니다. 사람의 지식과 지혜의 차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일어날 수도 없는 일, 특별한 대우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되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반대하는 데도 실행되는 것을 보고 사람이 흥분하는 소리일 것입니다.



지난주간 토요일의 경제신문에 이런 내용의 제목이 있었습니다. ‘자유경제원 기업센터소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분이었는데, 그는 복지(福祉,=행복한 삶,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의 환경)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일까? (아니다.) 남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강요된 자선일 뿐이라는 참으로 무서운 지식을 가진 사람이 쓴 글을 보고, 어째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유세계라고 하니까, 남들이 어떤 말을 하든 자유이기는 할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남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는 먼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 나온 말씀을 대하면서, 두 가지 기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두 가지 중에 하나는 하느님의 기준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인간의 기준입니다. 하느님으로 표현한 기준은 인간이 바라볼 때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세입니다. 그들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산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세상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없애야 정상이라거나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고, 세상의 경제논리를 무시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향유를 낭비한 여인, 마리아는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말하는 일일 것입니다. 정말로 세상의 기준을 적용해서 그렇게 판단하고 말해도 될까요?



하느님의 기준은 인간이 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하느님의 기준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사람은 신앙을 자기 삶의 도구로 생각하고 이용하려다다가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집니다. 나는 하느님의 행동방식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소리치면서. 우리가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외치면, 하느님은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의 이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주실까요?



예수님은 자신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 마리아를 옹호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하시나요? 그럴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시나요?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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