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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모자이크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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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7-04 ㅣ No.47

[성미술 이야기] 모자이크 미술

 

 

‘그리스도 임마누엘의 천장’. 베네치아 산마르코 교회의 둥근 천장, 1220년경.

 

히브리어 임마누엘은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이지만,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하다. 둥근 천장의 한복판에 별에 둘러싸인 그리스도가 수염도 없이 젊은 모습으로 등장하고, 바깥으로 큰 원을 그리면서 성모 마리아와 13명의 예언자들이 서 있다.

 

 

- '예수 그리스도와 베드로’. 서기 4세기 로마 제국 후기. 로마 산타 코스탄차 성당.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반석이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베드로가 이후 교회를 이끌면서 많은 시련을 겪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로마의 코스탄차 성당에는 다양한 소재를 담은 그리스도교 미술의 사례들이 풍부하게 남아 있다. 이 작품에서 그림의 가장자리를 두른 꽃줄 장식은 고대 모자이크 미술의 전통에서 빌려온 것이다.

 

 

“작은 돌들의 장엄한 합창” 순금으로 이뤄진 태양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순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순도 99.9% 24K의 거대한 황금덩어리가 하늘에 둥둥 떠서 세상에다 누런 빛살을 쏘아댄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대인들이 태양의 구성성분을 황금이라고 믿고 숭배했던 이유는 오로지 황금만이 스스로 빛을 만들어서 뿜어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홀로 광채를 뿜어내고 영원히 색이 바래지 않는 황금의 성질은 모든 것이 스러지고 흩어지는 헛되고 헛된 세상에서 시간의 위력을 뛰어넘는 불변의 미덕으로 간주되었다. 황금이야말로 모든 물질과 생명의 가치와 기억 위에 군림할 자격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사상은 그리스도교에도 무리 없이 수용되었다. 황금을 떠받들지는 않았지만, 황금의 빛나는 속성에 깊이 주목했다. 하느님은 빛의 존재요, 그 빛은 아름다움과 지혜의 첫 원인이라고 볼 때, 우리의 눈이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밝은 존재인 태양에게 최고의 신성을 부여한 것은 자연스러운 논리이다.

 

또 햇살의 축복을 받는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은 그 아름다움의 빛을 나누어 받는다고 보았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플로티누스가 정리한 「하나의 나눔」의 사상은 미술의 영역에도 시나브로 스며들어서 황금의 광채를 신성과 초월의 상징으로 자주 빌려다 쓰게 된다.

 

 

수천만개의 조각들이 모여…

 

베네치아 산 마르코 교회의 황금 모자이크 천장도 빛의 형이상학과 미술의 신성한 표현이 만난 사례이다. 그리스의 장인들이 12~13세기에 제작했다는데, 두 손가락에 겨우 잡히는 팥알만한 돌 조각을 하나씩 모양대로 갈아 넣어서 큰 그림을 완성했으니 시간과 수고가 엄청 들어간 작품들이다. 둥근 지붕 여섯 개와 벽면을 채우는 데는 족히 수천만 개의 모자이크 조각들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모자이크 그림에 소용되는 돌조각 한 톨을 그리스어로는 「소」, 라틴어로는 「테세라」라고 부른다. 황금모자이크는 얇게 편 황금을 바닥에 깔고 녹인 유리를 입혀서 잘라 쓰는데, 앞뒤로 유리를 씌우면 얇은 황금이 샌드위치처럼 속에 끼워지게 된다.

 

산마르코 교회에 들어가면 너무 캄캄해서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잠시 후에 어둠이 눈에 익으면 갑자기 도처에서 빛나는 황금빛 모자이크의 휘황한 광채를 발견하고 넋을 잃는다. 빛의 향연은 벽과 천장을 빈틈없이 채우며 한 틀의 빛나는 우주를 아른한 환시처럼 보여준다.

 

어둠과 빛 사이의 출렁대는 경계에서 우리들은 오랫동안 모닥불을 응시했을 때처럼 일렁거리는 빛의 최면에 빠져든다. 반짝이는 돌로 빚은 빛의 정원은 꼭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눈이 밝아지기 전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거닐었다는 에덴의 정원을 연상시킨다. 어둠과 빛이 한 공간의 울타리 속에서 이처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정말 어둠 속의 황금 모자이크는 혼자서 빛을 뿜어내는 것이 아닐까?

 

어둠과 빛은 마치 고통과 치유처럼 생명의 한 호흡으로 묶이게 마련이다. 가령, 고대 로마의 군인들이 많이 믿었다는 미트라스 종교는 모임을 반드시 동굴 안에서 치렀다고 한다. 부활 사상을 담고 있는 고대의 다른 미스터리 종교들도 마찬가지였다. 디오니소스나 오르페우스를 따르는 밀교, 피타고라스의 비밀교의, 데메테르의 엘레우시스 미스터리교 따위도 모두 의식의 진행이 어둠에서 시작해서 빛의 발견으로 연결되는 공통점이 있다. 어둠을 강조함으로써 빛의 축복을 드러내는 역설의 수사학은 바로크 시대의 완벽하게 밀폐된 극장구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조명과 빛의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모자이크는 원래…

 

모자이크는 원래 강에서 주운 작은 돌을 붙여서 바닥을 장식하는 수단이었다. 가공하지 않은 동글동글한 돌멩이를 색깔대로 붙여서 형상을 지어내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부터 연마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맨 돌을 깎거나 갈아내지 않고 생긴 그대로 같다 붙인 강 자갈 모자이크는 지금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고향도시 펠라에 여러 점이 남아 있다.

 

모자이크는 내구성이 좋고 불에 타거나 물에 씻기지 않는 이점이 있어서 붓으로 그린 그림보다 오래가는 특징이 있다. 그 대신 제작비용이 비싸게 들어가는 문제가 있어서 색깔이 들어간 모자이크는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도 기껏 공공미술 분야에 한정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폼페이나 인근 베수비우스 화산재 매몰도시에서 발견되는 다색 모자이크는 로마의 식민지 지배가 한창일 때 사회 상류층들의 예외적인 호사취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목욕탕이나 공공극장을 장식하던 고대의 모자이크는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교회내부의 장식수단으로 수용되면서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탈바꿈한다.

 

우선, 바닥 모자이크는 순수하게 양식화된 문양으로 제한되고, 성서의 줄거리나 역사를 기록하는 그림들은 천장이나 높은 벽면으로 위치가 상승한다. 고대의 모자이크가 그 전시장소가 공공건축이든 살림집이든 상관없이 사람이 함부로 밟고 다니는 기능성 부재였다면, 종교 모자이크는 오직 시각적으로만 향유되는 불변하는 그림, 또는 빛나는 창문으로 자리매김 된다. 그 창문은 우리에게 자연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풍경을 보여준다.

 

옛 사람들은 번쩍거리는 황금 모자이크를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12세기에 프랑스에서 최초의 고딕성당을 설계했다는 생드니의 수도원장 쉬제르는 이렇게 말한다.

 

『황금과 눈부심에 이끌리지 말라.

고귀하게 빛나는 광채는 우리의 영혼을 밝히고,

또 참된 빛으로 인도하니, 

그 참된 빛으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생드니 성당의 정문에 붙었던 글)

 

[가톨릭신문, 2004년 2월 29일,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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