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이스라엘2: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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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23 ㅣ No.999

[이스라엘 성지 길라잡이]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 가나안 : 북쪽 단에서 남쪽 브에르 세바까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진 후손들이 아옹다옹 싸우는 문제는 자식들 사이에서 번민하고 있을 아버지 아브라함을 무척이나 생각나게 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하)

긴 마름모 꼴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에는 남쪽으로 네겝 광야가 있고, 광야가 시작되는 경계선에 브에르 세바라는 성서 시대 도시가 있다(오른쪽 지도 참조).

가나안 땅에 대한 정의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일반적인 경계는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이다(판관 20,1; 1사무 3,20). 이스라엘에서 자연적인 농경이 가능했던 최남단이 바로 브에르 세바였기 때문이다.

브에르 세바가 성경에 제일 먼저 언급되는 곳은 창세기 20-21장으로서, 당시 필리스티아 땅이었던 그라르에서 아브라함이 나그네 생활을 했었다.

그때 아브라함의 종들이 우물을 팠지만, 물이 귀한 땅이니만큼 그 우물로 말미암아 그라르 왕 아비멜렉의 종들과 다투게 된다.

그러나 나중에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어린 암양 일곱 마리를 걸고 우호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브에르 세바라는 이름을 얻은 이 도시는 ‘맹세의 우물’ 또는 ‘일곱 우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브에르 세바에서 반 유목 생활을 하는 동안, 하느님은 그곳에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고자 하셨다(창세 22장). 뜬금없이 약속받은 아들 이사악을 바치라는, 언뜻 보기에도 모질게 느껴지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도 아브라함은 한마디 반박이나 망설임 없이 모리야 땅으로 이동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어렵게 얻은 아들을 직접 봉헌하려고 길을 떠난 아비의 마음.

그러나 최종의 선을 준비하실 거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움으로 인정받음같이(창세 15,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생살을 찢는 듯한 아비의 고통은 모리야에서 “야훼 이레”로 승화되었고,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이사악 대신 숫양을 번제물로 바쳤다.

지금도 모리야 땅이 정확히 어디인지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많지만, 기원전 10세기 솔로몬이 모리야 위에 하느님의 성전을 지어 봉헌했다는 기록으로 보아(2역대 3,1), 아마도 예루살렘에 있었던 듯하다. 브에르 세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버스로 1시간 반가량, 도보로는 꼬박 사흘 이상이 걸린다(지도 참조 : 브에르 세바에서 예루살렘까지).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 브에르 세바는 유다인들이 사는 현대적 도시로 발전했고, 모리야에는 ‘황금사원’이라 부르는 모스크가 지어져 마호메트의 승천설과 연결되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예루살렘 모리야(성전산)에서 승천하여 유일하신 하느님 알라를 만나고 메카와 메디나로 돌아갔다는 무슬림 전승에 따라 서기 7세기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쿠란에는 마호메트가 정확히 어디에서 승천했다는 말은 없고, “멀리 떨어진 어떤 장소”라고만 나올 뿐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예루살렘과 연결된 이후 마호메트가 실제로 예루살렘에 왔건 안 왔건 황금사원은 이슬람교의 성지가 되었고, 황금사원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무슬림들과 유다교의 중심인 모리야 산이자 성전산에 대한 열망을 가진 유다인들 사이에서 ‘세계의 화약고’라는 애칭 아닌 애칭이 붙어버렸다.



1967년 이스라엘이 6일 전쟁을 하면서 요르단으로부터 성전산을 정복하긴 했지만, 자칫 잘못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정치적 · 종교적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종국에는 황금사원을 이슬람 종교성 와크프(Waqf)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전 세계적 아버지로서 역사의 물꼬를 틀었던 아브라함은 1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에게 구입하여 사라를 묻은 헤브론 막펠라 동굴에 함께 묻혔다(창세 23장, 25장 : 위 사진 참조).

그러나 죽어서도 끝끝내 바람 잘 날 없는 아브라함은 막펠라 무덤 또한 유다인과 아랍 무슬림들의 구역으로 분리되었고, 헤브론에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사이에 섞여 살고 있는 유다 정착민들을 보호하려고 군인들이 늘 주둔하고 있다.

치고 들어오는 유다인들을 몰아내고자 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과 헤브론 전체를 향한 극우파 유다인들의 목숨을 건 열망 사이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는 곳. 하늘에서 아브라함이 이 분쟁을 본다면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어느 자식에게 양보하라 할 것인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진 후손들이 아옹다옹 싸우는 문제는 자식들 사이에서 번민하고 있을 아버지 아브라함을 무척이나 생각나게 한다.

* 김명숙 소피아 - 부산교구 우정본당 신자로 이스라엘에서 성지순례 안내자로 일하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2월호,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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