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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회: 중국 교회 최고의 의사결정 기구-중국 천주교 대표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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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2 ㅣ No.46

[아시아 아시아] 중국교회 : 중국교회 최고의 의사결정 기구


중국 천주교 대표대회

 

 

평신도, 수도자, 사제, 주교가 참석하는 일종의 총회 중국의 공식교회가 지난 7월 7-9일에 베이징에서 ‘제7차 중국 천주교 대표대회’를 열었다. 대표대회는 평신도, 수도자, 사제, 주교들이 대표로 참석하는 일종의 총회로서 중국교회에서 최고 의사결정 기구 구실을 한다.

 

대회 보고에 따르면, 1998년 1월에 열린 6차 대회 이래 주교 15명과 부주교 8명이 서품되었으며, 7백 개 이상의 교회가 새로 세워져 현재 중국에는 교회가 적어도 6천 개 있다고 한다.

 

또 1998년 이래 54만 명이 세례를 받아, 현재 신자는 530만 명이다. 사제는 1천 7백 명이 넘으며, 이들 가운데 613명은 지난 6년 사이에 서품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중국의 12개 대신학교 가운데 한 곳을 나왔다. 현재 중국에는 대신학생과 소신학생을 합해 2천 명이 넘는다. 지난 6년 동안 수녀 345명이 종신서원을 했으며, 유기서원을 한 수녀나 수련수녀는 적어도 3천 명이 넘는다.

 

보고서는 사제와 수녀, 평신도의 영적 양성뿐 아니라 사제성소와 교회출판 활성화에서 거둔 업적을 강조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이런 분야들에서도 정치교육이 강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학교 교육의 질은 교수진의 해외교류와 훈련을 통해 강화되었다. 또 통일된 교과과정과 표준화된 교육자료들을 마련하고, 적어도 7개 대신학교를 확장하거나 보수했다.

 

또 이 보고서는 2000-2001년에 정부에서 베이징 전국신학교와 허베이 가톨릭 신학교를 평가했으며, “관련 규정과 체제를 개선하고 공식화하고자” 이 학교들에 대한 지침을 개정했다고 지적했다. 2000년 1월에는 베이징 전국신학교에서 공부하는 신학생들이 교황승인 없이 베이징에서 이루어진 주교 다섯 명의 서품식에 참석하기를 거부한 적이 있다.

 

 

교황청과 상관없는 독자적인 주교 선출과 서품

 

1998년, 애국회와 주교회의에서는 ‘자선자성(自選自聖)’(교황청과 상관없는 독자적인 주교 선출과 서품) 원칙 4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했으며, 2000년에는 중국 천주교회의 독립과 자주를 통한 반제국주의 운동 50주년 기념식을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거행했다.

 

또 “지하교회”에 대해 “주님 안의 잃어버린 형제들”이라고 언급하면서, “이들이 이 나라와 교회를 사랑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이해를 촉진하기 위한 교육과 협조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애국회와 주교회의가 2000년 10월 1일 교황청의 중국 순교자 120명의 시성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사실에 대해, “이 움직임은 대중에게서 큰 찬사를 받았으며, 교회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시성된 선교사 일부가 제국주의 침략에 적극 협조한 사람들이라고 강력히 반발한 바 있다. 또 2003년 3월 애국회와 주교회의에서 교회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애국회와 주교회의, 가톨릭 교구들의 규정과 행정체계를 개선한 세 건의 문서를 통과시킨 사실도 언급했다. 이 모든 움직임은 2000년 시성을 둘러싼 갈등 이후 중국 정부가 가톨릭 교회에 대한 고삐를 다시 죄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에서는 별도 항목으로 교회의 사회봉사에 대해 언급하면서, 재난구조와 가난한 이를 위한 교육, 노인과 장애인, 병자에 대한 배려를 위한 기금이 조성되었다고 밝혔다. 해외 교류도 늘어났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중국 천주교회는 독립과 자주를 향해 나아가는 동시에 민주적인 운영과 사회주의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제와 수녀의 양성을 개선하고, 신학 발전을 촉진하며, 국유화된 교회 자산의 반환을 포함한 자립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한편 이 대회에서는 베이징 교구의 푸톄산 미카엘 주교가 천주교 애국회 주석으로 재선출되었다. 부주석으로 선출된 류바이녠 안토니오(평신도)가 공식교회의 실세다.

 

 

교황청의 주교임명을 외국 정부의 내정간섭으로 인식

 

그런데 지난 1998년에 40주년을 기념했다는 자선자성이란 무엇인가? 중국은 1949년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이후 한국전쟁 기간에 교황청과 외교관계를 단절했으며, 이어 1958년에는 중국 천주교 애국회가 성립되었다. 또 교황에 의한 주교임명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주교를 선출하고 서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뒤 중국교회는 교황청의 승인없이 주교를 선출, 서품한 공식교회와 이를 부인하고 교황에 대한 충성을 다짐한 지하교회로 나뉘었다. 공식교회는 지하교회와 대비하여 개방교회라고 한다.

 

현행 교회법 1382조는 “성좌의 위임 없이 어떤 이를 주교로 축성하는 주교와, 또한 그에게서 축성을 받는 자”는 자동파문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중국교회가 이후 교황청의 승인 없이 주교를 선출, 서품했음에도 이들에 대한 “파문”은 선언되지 않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개혁에 반대하고 라틴어 전례만을 고집하며 독자적으로 주교를 서품함으로써 파문이 선언된 비오 10세회와 비교된다.

 

이는 과거 영국 성공회의 혹독한 경험 때문이다. 영국 성공회도 “영국의 가톨릭 신자는 영국이 교황과 전쟁할 때 영국 왕에게 충성할 것인가, 아니면 교황에게 충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닌가? 영국에서 수백 년 동안 가톨릭 신자가 공직에 오르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했던 것도, “가톨릭 신자는 영국 왕에게 충성하지 않는 반역자”라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교황청이 중국교회를 파문했다면, 중국교회는 또 하나의 성공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교황청은 중국교회를 이단이나 열교로 선언하는 대신, 조용하고 끈질긴 해법을 시도했다.

 

교회법 377조 1항에는 “교황이 주교들을 임의로 임명하거나 합법적으로 선출된 자들을 추인한다.”고 되어 있다. 1958년 당시부터 1978년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실시될 때까지 교황청은 중국 내부의 교회와 직접 접촉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때문에 사정이 명확히 밝혀지기 전까지는 어떤 결정적인 판단이나 조치를 유보하는 것이 현명했다. 이후 사정을 알아본 뒤, “합법적으로 선출된 자들을 추인”할 수도 있는 것이고, 겉으로는 교황청의 승인이 없었으나 속으로는 몰래 교황청과 연락해서 승인받은 주교 서품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 뒤 공식교회의 많은 새 주교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교황청과 대화하고 주교로 승인 받았다.

 

반대로, 교황의 승인 없는 주교서품을 반대한 지하교회도 그런 상태가 수십 년 지속되면서 소속 주교들이 나이 들어 죽어가자 어쩔 수 없이 교황의 승인 없이 스스로 주교를 서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주교가 없으면 사제서품도 없고, 사제가 없으면 신자들의 성사도 없으며, 그러면 교회 자체가 멸망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교황청의 주교 임명을 “외국 정부”인 바티칸국의 내정간섭으로 보는 것은 형식상으로는 근거가 있으나, 과거 교황령을 지니고 전쟁도 하고 휴전도 했던 시대와 달라진 현대 교황청의 입지를 살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과거 “선교사를 앞세운 제국주의” 침략에 반식민지로 전락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어 이 점에 매우 예민하고 완고하다. 애국회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다. 애국회는 주교들의 모임이 아니라 중국의 반제 투쟁과 독립, 자주라는 대의에 동의하는 평신도, 사제, 주교들의 모임으로, 중국 주교회의와 함께 중국 공식교회의 양대 기둥이다.

 

[경향잡지, 2004년 9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뉴스(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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