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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양제의 홍콩 교회: 홍콩의 인권운동에 앞장 선 젠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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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2 ㅣ No.34

[세계 교회는 지금] 일국양제의 홍콩 교회 : 홍콩의 인권운동에 앞장선 젠 주교

 

 

지난 6월, 인구 650만 명의 홍콩에서 국가보안법 입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무려 50만 명이나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 시위의 선두에는 또다시 홍콩 교구 젠제키운 주교가 있었다. 젠 주교는 작년에 우쳉충 추기경이 죽은 뒤 교구장직을 승계했다. 이날 시위는 1989년에 천안문사태 유혈진압에 항의하는 시위 이후 최대규모였다. 시위 직후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 안에서도 국가보안법 문제 때문에 사직하는 고위인사들이 잇달아 나왔고, 결국 입법안은 유예되었다. 둥젠화 특별행정구 장관까지 사임 압력에 시달렸다.

 

이런 가운데 중국 주교회의 주석인 베이징 교구의 푸톄산 주교가 젠 주교를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7월 28일, 특정한 이름은 지적하지 않은 채 홍콩 교구의 어떤 이가 보편교회의 “행동 원칙”에 어긋나게 행동하면서 홍콩 사회의 안정을 해치고 홍콩 교회의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발언은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보도됐으며, 홍콩의 교회 인사들과 매체들은 홍콩의 젠제키운 주교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지난 3월에도 기자들이 국가보안법 문제에 관한 젠 주교의 입장에 대해 묻자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야 한다.”고 대답한 바 있다.

 

푸 주교는 올 초 종교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 부주석단(국회 부의장)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푸 주교는 자신이 부주석이 된 것은 중국 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교회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천주교는 이슬람교, 개신교, 불교보다 신자수가 적다. 중국이 가톨릭 교회를 단순히 한 종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이완과 통일문제, 그리고 대외적 자주성과 연관해서 보기 때문에 의미가 남다른 것이다.

 

중국은 교황청과 외교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교황청이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끊을 것, 그리고 중국 내 교회문제에 간섭하지 말 것(교황이 주교를 임명하지 않을 것)을 요구해 왔는데, 특히 후자가 쟁점이었다.

 

푸 주교의 이날 발언은 미국 워싱턴 대교구의 씨어도어 맥카릭 추기경의 방문을 맞는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의 종교자유에 대해 비판적 보고서를 여러 차례 냈던 미 국무부 산하 국제종교자유위원회 위원이었던 맥카릭 추기경은 당시 개인 자격으로 방문중이었으며, 푸 주교를 인민대회당(국회의사당)에서 만났다.

 

신화통신 7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푸 주교는 중국의 한 주교로서 자신은 중국과 교황청 관계에 “어떤 이의 부적절한 말과 행위로” 새로 복잡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푸 주교의 발언에 대해 홍콩 링난 대학 교수로서 중국 교회 전문가인 륭킷푼(베아트리체) 수녀는 7월 30일 UCAN 통신에 가톨릭 교회가 홍콩의 민주주의 운동을 지원하는 데 “도덕적 권위”가 있음을 중국 지도자들이 걱정하고 있기 때문에 젠 주교가 공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륭 수녀는 중국이 민주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첫 단계로 교회를 민주주의 세력으로부터 떼어놓으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천주교 애국회 류바이녠(안토니오) 부주석은 7월 29일 UCAN 통신에 “누구나 각자의 관점이 있기 때문에” 자신은 젠 주교의 “반공적” 입장에 대해 논평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으나, 중국의 비가톨릭인 대다수는 젠 주교가 자기 개인의 입장을 말하는지 아니면 교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것이며, 상당수는 젠 주교가 교황청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분명히 중국-교황청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럼에도 현재까지는 홍콩 교회와 중국 교회의 관계는 젠 주교의 입장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도 홍콩 교회에서 신학자들을 초청해 우리 신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기층 단위의 접촉은 계속되고 있다.”

 

한편 푸 주교의 발언 사흘 전인 7월 25일에 중국의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가 젠 주교를 격렬히 비난하는 논평을 실었다. 이 논평은 “정치를 위해 제단을 저버린 가톨릭 지도자들”이란 제목 아래 젠 주교가 반정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고 비난했다.

 

또 젠 주교가 정치문제에 대해 “손 안 대는 데가 없다.”고 비판하며, 본토 출신자의 홍콩 거주권을 지지한 것과 국가보안법에 공개 반대한 것을 들었다. 나아가 젠 주교와 다른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어디서나 불화의 씨를 뿌리고 “분쟁과 갈등을 부추김으로써 ‘카이사르’와 같은 노릇을 했다.”고 비난하고, “몇몇 가톨릭 지도자들이 일상적으로 정치 문제에 관여함으로써 교회의 가르침을 어기고 있는 것은 가톨릭 교회가 정치 무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징표”라고 주장했다.

 

젠 주교는 7월 25일 기자들에게 이 논평기사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고 말하고 자기가 홍콩 당국의 정책에 대해 발언한 것은 “자신의 양심에 따른 것일 뿐이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논평기사가 “상당부분 과장돼 있고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에” 중국 중앙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국 교회 전문가인 홍콩 교구 성신연구 센터의 람수이키(안토니오) 수석연구원은, 교회는 “정치 참여는 공직을 맡거나 의원직을 얻으려고 선거에 나서는 것이라고 분명히 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홍콩의 정치학자들은, 중국이 젠 주교를 공격한 것은 실제 교황청과 외교관계 문제와는 별 상관없다고 평가했다. 젠 주교가 홍콩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떠오른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콩은 지난 1997년 12월에 다시 중국으로 통합되었다. 당시 중국은 반환 이후 50년 동안 홍콩에서 자본주의를 보장하겠다는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약속했다. 홍콩인들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뒤 홍콩인의 자녀로 본토에서 태어난 이들의 홍콩 거주권 문제를 놓고 대체로 교회를 비롯한 인권단체와 민주파들은 찬성했고 중국 정부는 반대했다. 결국 이 문제는 중국측에 해석권이 있다는 주장에 따라 중국측 의견대로 결정되었지만, 일국양제가 완전한 보장이 아니라는 의문에 불을 당겼으며, 이를 배경으로 이번 국가보안법 반대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경향잡지, 2003년 9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뉴스(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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