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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천주공경가와 십계명가 그리고 문서 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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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1-20 ㅣ No.1007

[천주가사 속 하느님 나라 이야기] 「천주공경가」와 「십계명가」 그리고 문서 전교

 

 

한국 천주교회는 선교사의 도움 없이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하였다. 이 특이한 현상은 전적으로 서적을 통하여 진리를 깨우치고 신앙을 키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실마리는 조선 정조 3년인 1779년 겨울, 지금의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에 자리한 주어사에서 열린 남인 소장 유학자들의 강학회였다.

 

 

천주교 가르침의 감흥을 노래에 담아

 

파리외방전교회 샤를르 달레 신부가 쓴 「한국천주교회사」에 따르면 권철신이 주도하고 정약전, 김원성, 권상학, 이총억, 이윤하 등이 앵자봉 기슭의 주어사에 모여 강학했다. 그들은 십여 일 동안 다양한 서적을 읽고 토론하며 안목을 넓혔다.

 

그때 강학하던 이들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하던 천주교 서적들을 대하고 적지 않게 놀랐다. 천주교의 가르침에 탄복한 이벽은 그의 친구이자 정약용의 매부인 이승훈에게 중국에 가서 천주교에 대해 알아 오라고 부탁하였다. 마침 이승훈의 부친 이동욱이 중국에 파견되는 동지사 서장관으로 발탁되었기 때문이었다.

 

1783년 이승훈은 북경의 북당 천주당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에게 교리를 배운 뒤, 장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이듬해 마태오 리치 신부가 쓴 「천주실의」를 비롯한 한문 서학서와 교리서, 십자고상, 상본 등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승훈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이벽은 그가 가지고 온 서적들을 받자마자 외딴집을 세내어 독서와 묵상에 전념하였다.

 

이벽이 그 책들을 통하여 천주교의 교리를 깨우치고 난 뒤 이처럼 외쳤다고 달레 신부는 기록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도리이고 참된 길이오. 위대하신 천주께서는 우리나라의 무수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가 그들에게 구속의 은혜에 참여케 하기를 원하시오. 이것은 천주의 명령이오. 우리는 천주의 부르심에 귀를 막고 있을 수가 없소. 천주교를 전파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오.”

 

이벽은 1784년 9월 한양 수표교 근처 자신의 집에서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승훈은 정약전, 정약용,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주었고, 이벽은 최창현, 최인길, 김종교 등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신자 공동체를 이루어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되었다.

 

선교사가 아닌 서적으로 비롯하여 설립된 교회였다. 책을 강독하면서 새로운 진리를 깨우친 소장 유학자들은 그 감흥을 당시에 유행하던 가사 장르에 담아 ‘천주가사’로 창작하였다. 바로 「천주공경가」와 「십계명가」이다. 이 노래들은 「만천유고」(蔓川遺稿, 만천은 이승훈의 호)에 실려 전해 오는데, 오늘날 전승되는 200여 편에 이르는 천주가사의 효시가 되었다.

 

 

천주를 공경하고 내세를 노래하다

 

이벽은 주어사에서 강학한 뒤 4음보 17행의 「천주공경가」를 창작하였다.* 그는 영혼은 불멸하므로 생전에 천주를 공경하여 지옥을 피해야 한다고 노래하였다.

 

이는 2행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세상을 다스리는 천주를 공경해야 한다는 전교의 뜻을 담았다. 그 바탕에는 영혼은 불멸하므로 죽어서 맞이할 지옥과 천당을 생각해야 한다는 교리가 깔려 있다.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인륜도덕 천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면은

살아서는 목석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라

 

이어 그는 전교와 더불어 천주교에 적대적인 이들에 대해 호교의 뜻을 내보였다. 현세에 살면서 지옥과 천당이라는 내세를 상기하여 삼강오륜과 마찬가지로 천주 공경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있는천당 모른선비 천당없다 어이아노

시비마소 천주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영원무궁 영광일세 영원무궁 영광일세.

 

그 당시 이 땅에 단 한 명의 선교사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벽은 서적을 통하여 스스로 천주교의 가르침을 깨우치고 천주가사로써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한편, 남들에게도 그 환한 진리를 전하고자 했다.

 

 

천주의 계명에 따라 살기를 권유하다

 

정약전과 권철신, 이총억 또한 강학한 뒤 그 소회를 4음보 70행의 「십계명가」에 담아 불렀다. 이 노래는 첫 행에서 “세상사람 선비님네 이 아니 우스운가”라고 사작하여, 유학자를 비롯한 일반 대중의 우매함을 깨우치려는 의도를 전면에 드러낸다. 귀신과 마귀, 미신 같은 것에 미혹되어 “간신 소부”나 “거름 곁에 파리 떼”처럼 살지 말고 천주의 계명에 따라 사람답게 살 것을 권유한다.

 

하늘위에 계신천주 벌레같은 우리보소

광대무한 이우주에 인간목숨 내어주사

대혜지각 깨달으며 우주섭리 알고나면

천주은혜 밝은빛을 무궁토록 받을런가

 

작자들은 ‘천주’가 바로 ‘창조주’라는 사실을 부각하고 있다. 따라서 피조물인 인간은 나를 창조한 천주와 나를 낳아 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삼강오륜의 으뜸 덕목인 효도가 부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천주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전교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에 42행에서 이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제라도 천주뜻을 사람마다 지켜보세”라고 권유한다.

 

천지고금 만물지사 부모효도 으뜸일세 

부모은혜 모르고서 불효자식 되고나면  

죄중에서 제일크고 죽은후에 지옥가네

하늘같이 넓은대자 부모정이 일컬으면

인간금수 초목만물 그아버지 천주일세 

부모효도 알고지면 천주공경 알고지고

 

작자들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이치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62-63행에서처럼 “한마음 넓게눈떠 천주큰뜻 알고나면 / 벌레같은 인간세상 군뜻이 전혀없네”와 같은 경지에 이른다고 토로한다. 천주의 계명에 따라 나를 있게 한 존재를 공경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이자 낙원에서의 삶이며,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는 길이라 밝힌 것이다.

 

「천주공경가」와 「십계명가」는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되기 이전에 쓰인 최초의 천주가사였으므로 천주교 교리가 간략하게 담겨 있다. 곧 천주 존재와 천지 창조, 죽은 뒤 천당과 지옥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그 존재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작자들은 이 노래들을 통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아버지와 같으신 천주를 계율에 따라 공경하겠다는 고백과 아울러 이를 신앙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였다. 나아가 천주교 교리를 모르는 이들이 깨우칠 수 있도록 전교하는 한편, 천주교의 실상을 알지 못하며 비난하는 적대자들에게는 실체를 알리려는 호교의 뜻을 담았다. 다소 성글게 보이는 이 노래들이 우리의 가슴에 파고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김문태 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이며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기획홍보위원장으로 계간지 「평신도」 편집장을 맡고 있다. 중국 선교 답사기 「둥베이는 말한다」, 장편 소설 「세 신학생 이야기」 등을 펴냈으며, 「천주가사」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경향잡지, 2019년 1월호, 김문태 힐라리오]

 

(* 편집자 주 - 2019년 1월 호 71쪽 “이벽은 ~’천주공경가’를 창작하였다.”란 내용과 달리, 위작이라는 연구 발표도 있습니다.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 윤민구 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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