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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선교4: 한국교회의 선교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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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08 ㅣ No.75

[공의회는 끝나지 않았다] 선교 4. 한국교회의 선교 대안


체험과 감동의 증거, 이것이 선교다

 

 

- 신앙체험이 녹아든 삶을 나누고 증거하는 것이 선교의 본 모습이다. 선교는 ‘복음화’ 안에서 재해석되고 바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변화가 시대의 주요한 흐름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스스로 변하거나 최소한 변화의 흐름이라도 좇아가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시대 정신을 담은 이 카피는 현대의 존재 양태를 잘 대변해준다.

 

쇄신을 외치며 끊임없이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세상 속에서 교회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 교회 안에서라고 변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교회의 위기’라는 선교의 위기를 말하면서도 이러한 위기의 본질은 고사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게 지금의 교회 모습이다.

 

이러다 보니 교회가 걸어가야 할 변화의 지향점은 물론이고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조차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다른 이들은 모두 뛰고 있는데 교회는 제자리걸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마저 일고 있다.

 

 

개신교의 선교 전략과 양상

 

통계청의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 예상 밖의 성적표를 받아든 개신교는 부산스럽다고 할 정도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개신교에서는 이번 통계 결과가 던지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새로운 선교 대안을 도출해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개신교 신학자들은 오늘날 개신교가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세속화’에서 찾는데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는 달리 말해 개신교회가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구조와 조직을 구축하고 세속적 흐름에 깊이 젖어들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 더해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성을 끊임없이 제공하지 못하고 영적인 고갈 상태를 맞음으로써 ‘교리적 배타’만이 남은 독선적 모습으로 계속 내리막길로 치닫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고 진단한다.

 

나아가 신학자들은 ‘지속가능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자들의 생활양식과 교회의 구조를 바꾸기 위한 내적 복음화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뤄내고 있다.

 

이러한 진단에서 나오고 있는 개신교계의 선교 전략들이 ‘현대 사회에 대한 쇄신과 적응’을 강조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가톨릭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 개신교가 맞닥뜨린 선교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개신교계의 전략은 쇄신과 적응을 위한 ‘현장사역(사목)’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은 삶의 현장에 한발 더 다가섬으로써 세상이 필요로 하는 변화의 기류를 정확히 읽어내고 쇄신 방안을 찾아내자는 의도로 보인다.

 

이러한 모색의 결과가 개신교계의 대표적 전도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하우스 사역’이다. 하우스 사역은 과거의 대규모 입교 프로그램으로 인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새 신자 정착 프로그램’으로 근래 들어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히 비신자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선교 전략이라는 점이다. 비신자를 처음부터 교회로 이끌거나 출석을 강요하지 않고 기존 신자 가정에 자연스레 드나들게 하면서 교리를 접하게 하고 스스로 교회를 찾을 때까지 기다린다.

 

또, 새 신자가 교회에 정착하게 되면 다른 신자 가정으로 만남의 장을 옮겨가며 교회와 신자들의 이질적인 문화에 쉽게 적응해 나가도록 이끈다.

 

실제 이러한 전략을 도입한 지방의 한 개신교회의 경우 새 신자가 기존 신자들 가운데 정착하는 비율이 거의 100%에 이를 정도여서 해외의 개신교회에서도 선교 노하우를 배워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개신교계의 움직임이 아직 뿌리를 내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학교 등 캠퍼스나 각 영역으로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 있음은 뚜렷한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교회 선교 정책과 방향

 

1990년대의 위기 상황을 거쳐 2000년대 들어선 한국 교회는 아직 선교 전략이나 방향에 있어 눈에 띌만한 커다란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2000년 이후 각 교구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선교 정책들은 그간 효과를 인정받아온 사회복지를 중심으로 한 대 사회 기여의 확대 등으로 국한되는 모습이다.

 

특히 이러한 대 사회적 활동들조차 장기적인 전망이나 전략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기 보다 임기응변식의 즉각적인 대응이 주를 이루고 있어 삼천년기를 일궈갈 교회가 지향해야 할 선교 전략과 방향성 확보라는 측면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청소년과 가정 문제가 사회 문제로 불거지자 이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한 사목과 선교 방안이 사목 방향의 주를 이루는가 하면 노인문제가 새롭게 부각되자 노인을 비롯한 세대별 특성을 감안한 선교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기도 했다.

 

하지만 어떠한 단발성 대책이나 프로그램으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깊은 수렁에 빠져있는 게 한국 교회 선교의 현재라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교회가 처한 현실에 대한 진단과 문제의식 마저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교회 내부에 있다. 구조적, 근본적 문제를 외면한 결과 타 종교와의 경쟁에서 계속 밀리고 있는 개신교의 모습은 우리 교회에 별다른 자극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교회가 서 있는 선교 지형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바탕으로 한 인식의 대전환이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다.

 

 

새로운 인식과 자세 요청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한국 교회에서 사제는 관리자의 모습으로 강하게 다가오고 있다. 이로 인해 교회 전반에 대한 관리는 사제의 몫으로, 선교를 비롯한 세상과 관련된 일은 평신도에 맡겨진 모양새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하느님 백성 전체의 본연의 사명이요, 제일가는 사명으로 재확인된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틀을 구축하는 게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현대 사회에의 적응을 모색하기 위해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체의 이론적 귀결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선교교령)은 선교에 있어 평신도들이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독자적인 권리와 책임을 지니고 자주적으로 활동해야 할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재인식시키고 있다.

 

아울러 공의회는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사제생활교령)을 통해 교회 안에서 지도층을 형성하는 사제단의 협력 없이는 공의회가 목표로 한 교회의 ‘현대화’를 추진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교회 내에서의 사제의 위상을 새롭게 돌아볼 것을 촉구한다. 이는 숨 돌릴 틈 없는 현대 사회의 급속한 변화가 사제의 직무를 갈수록 복잡하게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특히 사제생활교령은 사제의 임무와 생활을 현대의 요구에 적응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사제의 직무 가운데 선교의 우위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의회가 열린 지 한 세대가 훨씬 지났음에도 한국 교회 내에는 아직 선교에 대한 ‘한국적 적응’ 모습, 또는 토착화된 모델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는 선교에 대한 교회 지도자들은 물론 모든 신자들의 각성과 분발을 새롭게 요청하고 있다.

 

 

전통 속에서 새로운 전망을

 

한국 교회는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여 키워온 믿음의 역사 속에 훌륭한 신앙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헌신성과 능동성을 바탕으로 먼저 다가섰던 모습은 대표적인 신앙 유산이다. 믿음의 씨앗이 뿌려지던 시기, 신앙 선조들은 하느님에 대한 자신들의 체험뿐 아니라 그러한 체험이 녹아든 삶을 나누고 함께 함으로써 박해 가운데서도 눈부신 보화를 일궈냈다.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오늘에 되살려 새롭게 꽃피우게 하기 위해서는 신앙 선조들의 삶과 자세를 ‘쇄신과 적응’이라는 현대 교회의 틀에 녹여내 지속적인 내적 복음화를 위한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끊임없는 내적 복음화를 바탕으로 세상 속으로 나아갈 때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7년 1월 28일, 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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