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신유박해 순교자들: 조용삼 베드로 - 옥중 세례받고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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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1 ㅣ No.244

신유박해 순교자들 (14) 조용삼 베드로


"몸은 약하나 위대한 영혼 지녀", 모진 형벌 마다않고 옥중 세례받고 숨져

 

 

양근(楊根)고을에 살던 한양 조씨가문의 양반 조재동은 불행하게도 상처하고부터 가세가 기울었다. 그는 몹시 가난해지자 더 이상 살길이 없어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여주(驪州)고을 점돌에 살고 있는 임희영이라는 양반집에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다. 임희영은 그들을 너그럽게 대하고 있었지만, 조재동의 큰아들 조용삼(?-1801년)은 기질이 심약하고 외양도 못생기고 병약할 뿐만 아니라 세상물정에 캄캄한데다가 가난하여 아버지를 따라 동생과 함께 더부살이하는 처지이니 모두가 그를 업신여겼다. 그래서 그는 나이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못 들었고 관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를 놀렸는데 정약종(丁若種)만은 허약한 그의 몸 안에 있는 위대한 영혼을 알아보았다. 약종만은 용삼을 극진히 대하고 그의 신앙과 덕을 찬양하여 마지않았다.

 

그러던 1800년 4월에 포졸이 임희영을 체포하러 그의 집에 찾아들었을 때 조용삼 베드로와 그의 아버지 조재동도 함께 잡혀가게 되었다. 길을 가는 동안 아버지 조재동은 아들에게 "이번에 나는 하느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으니, 나는 틀림없이 순교자가 될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하고 물었다. 조용삼은 "아무도 자기 결심과 자기 힘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약하고 불쌍한 제가 어떻게 감히 순교하기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하였다. 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자식의 나약한 대답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관장 앞에 끌려가 첫 번째 심문을 받을 때부터 아버지는 슬프게도 굴복하고 말았다. 참으로 인간의 어리석은 자만과 자기 과신으로는 결코 주님의 진리를 증거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되었다.

 

관장은 조용삼에게 "너도 배교하여라"하니, 조용삼은 "저는 배교할 수가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아니 네 아버지가 목숨을 보존하려고 하는데 너는 죽기를 원한단 말이냐? 그것은 효도를 어기는 것이 아니냐?"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가 그런 길을 가더라도 자식들이 그 본분을 다하기를 계속한다면 그것을 어찌 효도를 어기는 것이라 하겠습니까? 각자가 자기 부모를 공경하고 섬겨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모보다 먼저 또 부모 위에 천지만물의 대왕이시며 공통된 아버지이신 분이 계시니, 그 분이야 말로 제 부모에게 생명을 주셨고 제게도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관장은 화가 나서 여느 때보다 더 혹독한 고문을 곁들인 심문을 거듭하였다. 조용삼은 이 형벌로 무릎이 부러져 종지뼈가 다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등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관장은 형벌과 권고가 소용없음을 알고 아버지를 데려오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나는 네 아들 때문에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들에게 말하라. 네 말 한마디로 너희 둘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이 바로 너에게 달렸으니, 마음을 돌리도록 네 아들에게 권고하라" 그리고는 조용삼이 보는 앞에서 그의 아버지를 혹독하게 치게 하였다. 조용삼은 소리쳤다.

 

"저는 인륜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저 때문에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하기를 원치 않으니, 우리 둘을 살려 주십시오."

 

뼈가 부서지는 고통도 이긴 조용삼은 아버지에 대한 효도 때문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조용삼은 관아에서 나오다가 이중배(李中培)를 만나 그의 충고를 듣고는 맹목적인 효성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게 되었다. 그 밤을 통회의 눈물로 새우고는 날이 밝자 관장 앞에 다시 나아가 "제가 어저께 한 일을 지금 후회합니다. 그러니 사또께서는 저의 죄대로 죽이시고 아버지는 그의 원대로 다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각자는 자기의 행실대로 다루어져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관장은 용삼의 허약한 모습만을 보고 쉽게 다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는 엄중히 심문하며 위협하였다. 그러나 이제 조용삼은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이후 혹독한 형벌로 인해 몸이 어스러졌으나 그의 신앙은 더욱 굳건해졌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피투성이의 몸으로 "하늘에는 두 임금이 없고, 사람은 두 마음이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다만 하느님을 위하여 죽는 것뿐입니다. 저에게 더 이상 물어 보시는 것은 무익한 일이며, 저는 이제 다른 말씀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하고 용감히 그의 신앙을 고백했다. 관장은 외양으로는 허약해 보이던 그의 몸 속에서 놀랍고 위대한 불굴의 넋과 영혼을 보며 내심 두려웠다.

 

그의 마지막 신앙고백이 된 "하늘에는 두 임금이 없고, 사람은 두 마음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이틀 후인 1801년 2월 14일 그는 옥중에서 베드로를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고 바로 숨을 거두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예비신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그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에 불빛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퍼졌다. 포졸들과 구경꾼들이 그것을 확인하러 갔는데, 그 장소에는 불이 아니라 현란한 광채가 보였다. 이로 인해 당시 그 고을 사람들은 조용삼 베드로에게 크나 큰 공경심을 갖게 되었고, 그의 장한 순교의 모습을 깊은 경의와 신뢰를 갖고 전하게 되었다.

 

[가톨릭신문, 2001년 6월 17일, 김길수(전 대구가톨릭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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