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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현대의 순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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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1 ㅣ No.240

현대의 순교자들

 

 

215명의 한국교회 현대 순교자 명부

 

한국교회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2천 년까지 가능한 한 가장 완전한 형태의 현대 순교자 순교록(명부, sensu latu)을 편찬토록 원하신 뜻에 따라 215명에 이르는 한국교회 현대 순교자 목록을 교황청 대희년중앙위원회의 새순교자위원회에 보냈다. 교황청 새순교자위원회는 세계 각 지역교회에서 보내온 이 목록을 가지고 제이천년기 후반에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가르치신 가치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피를 흘린 사람들, 곧 20세기 신앙 증거의 표징을 담은 총목록를 편찬하게 된다.

 

이 작업은 오늘의 교회 역시 '순교자들의 교회'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성인들과 순교자들이 보여준 신앙의 증거를 바탕으로 삼아 제삼천년기 교회의 존재론적 의미와 그 방향을 가늠해 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제삼천년기의 교회 역시 본질적으로 '순교자들의 교회'라는 존재론적 의의를 벗어나 있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황께서 이천 년 대희년 준비 지침으로 발표한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뚜렷이 밝히신 바와 같이 이름이 알려졌건 덜 알려졌건 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건 간에 '하느님의 위대한 뜻'을 위하여 온몸을 불사른 이 '신앙의 용사들'을 잊지 않는 것은 지역교회와 세계교회 모두의 의무이다. 더구나 이러한 목록 작성 작업에는 갈라진 교회 곧 그리스 정교회, 성공회와 다른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기억까지 포함하도록 하였다. 이는 갈라진 형제들과 함께 신앙에 대한 증거를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이천 년 대희년을 계기로 하여 그리스도 안에 신앙의 일치를 이루어나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립하고자 하신 교황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순교록에 6명의 성공회 신부, 수녀의 명단이 포함된 것도 이런 뜻에서 이루어졌다.

 

한국교회가 제출한 215명의 순교자 목록에 나타난 숫자는, 우연한 일인지는 몰라도 제2천년기 마지막 해인 1999년에 맞는 한국교회의 나이와 일치한다. 1784년에 창립된 한국교회가 지난 215년 동안 간직해 온 값진 신앙의 나이테와 같은 숫자의 현대 순교자 목록을 작성하게 된 것은 한국교회가 103위 성인과 215명의 현대 순교자를 기억하는 고귀한 역사의 유산을 토대로 이천 년 대희년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묵상의 자료를 제공한다.

 

 

현대 순교록 정리 작업의 중요성

 

어느 시기에나 신앙에 대한 배척과 반대로 순교자들은 피를 흘렸다. 그러나 특히 20세기의 순교자들은 무신론적인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그 체제로 희생되었다는 공통된 특징을 보여준다. 1917년의 볼셰비키 혁명 이후 공산체제로 탈바꿈한 구 소련체제의 성립 후 극렬한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했으며, 동유럽의 공산화 이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한국교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우리의 경우는 70년 만에 몰락해 버린 유럽 공산체제와는 달리 아직 건재한 북한체제로 더 길고도 힘든 분단의 현실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그 고통과 희생의 정도가 더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는 6·25를 전후한 시기에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납북된 사제와 수도자, 신학생 등 118명에 이르는 피랍 성직자 현황 명단을 작성 발표한 바 있다. 오로지 하느님을 섬기는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형언키 힘든 고통 속에 희생되고 죽음의 행진에 끌려갔던 순교의 고귀한 가치를 기록, 연구의 자료로 남기게 되었고, 이는 한국교회에서 현대 순교자에 대한 관심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구 차원에서 본다면 15년여에 걸쳐 광범위한 자료 수집을 토대로 평양교구가 펴낸 순교록을 필두로 하여 함흥교구, 서울대교구 차원에서 분단 이후 이북 지역에서 희생된 성직자, 수도자들에 대한 자료 수집 등 관련 작업이 부분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더구나 교황청의 요청에 따라 한국교회의 현대 순교자 총목록을 작성하게 되어 한국교회 전체의 관심과 구체적인 접근 노력이 가시화되기에 이른 것은 정말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 언론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215명의 명단 작성에 포함되지 못한 교구들의 경우 특히 평신도 순교자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6·25 당시 대구대교구와 부산교구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구 관할지역이 공산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이들이 후퇴하면서 무차별적으로 잔인한 학살을 거듭하였다는 점에서 한국교회 전체 차원의 더욱 면밀한 조사가 뒤따르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순교록 작성의 의미와 교훈

 

순교는 신앙의 진리에 대한 최상의 증언이다. 순교란 죽음에까지 이르는 증언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순교자는 자신과 사랑으로 결합된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순교자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죽음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교회의 존재론적 의의를 되살리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에 대한 기억이 점차 소멸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순교의 사실은 직접적인 증언을 필요로 한다. 만약 증언이 가능한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순교의 소중한 가치는 보전되기 힘들다.

 

이런 의미에서 순교록에는 한국교회 전체 차원뿐 아니라 각 교구나 본당 그리고 해당 순교자에 대한 증언과 기록을 보유한 가정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순교자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그들의 신앙적 삶과 용기를 순교신심으로 간직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103위 성인을 모시고 있다. 그러나 103위 성인께 부끄럽지 않을 만큼 오늘의 우리 한국교회가 103위 성인께 대한 순교신심을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1984년에 200주년을 맞으면서 103위 시성식을 거행한 신앙적 열기와 그 감격이 실천적인 순교신심으로 정착되고 있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죽음에까지 이르렀던 순교자적 신심과 그 열정을 본받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순교자들에 대한 순교록 작성은 한국교회의 오늘의 모습을 반성하고 순교자들을 본받는 순교신심의 바탕 위에서 이천 년 대희년과 제삼천년기를 뜻깊게 맞이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은 로마 제국의 오만한 미신숭배적 통치이념과 향락적 퇴폐문화를 거부한 대가로 죽음을 당하였다. 초기 한국교회 박해 때의 순교자들은 봉건적 신분 질서를 뛰어넘는 진정한 인간애와 신앙의 발견에 대한 대가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현대 한국교회의 순교자들은 무신론적 공산이념과 체제 때문에 희생되었다. 그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처럼 "무신론자들의 끈질긴 박해 아래 용감하게 복음을 증언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들의 몸으로 채운 분들"이다. "20세기의 진정한 순교자들인 그들은 교회와 인류의 빛"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본받아 현대 사회의 향락적 생활방식을 거부하고, 자본주의가 빚어내는 부익부 빈익빈의 새로운 신분제도를 초월하며, 집단적 이기주의와 제도적 폭력을 거부하는 순교적 신앙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천 년 대희년을 잘 준비하여 제삼천년기를 맞이하는 신앙의 길이다.

 

더구나 한국교회의 현대 순교자들은 민족 사회의 분단을 야기한 이념적 대결과 갈등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들을 기억하며 이들에게 전구하는 것은 북한 선교와 통일민족사회를 향하여 순교의 가시밭길을 걸어가고 있는 한국교회의 영성을 풍부하게 하고, 갈라진 민족사회에 참된 평화와 구원의 빛을 전하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아 순교신심의 뿌리를 깊게 하면 순교자들의 시성 시복의 길도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잊고 외면한다면 시성 시복의 길이 멀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우리 자신의 신앙도 껍질만의 신앙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순교자의 교회', 그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과 반성을 통해 한국교회 전체가 이천 년 대희년 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경향잡지, 1999년 9월호, 이동호 플라치도 아빠스(함흥교구장 서리,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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