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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말씀의 선교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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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27 ㅣ No.72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말씀의 선교수도회 (상)

 

 

말씀의 선교수도회 회원들은 한국교회의 다양한 현장에서 선교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사진은 수원교구에 소재한 갈릴래아 이주노동자 상담소 활동 사제들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모습(위).


- 파푸아 뉴기니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용호 신부가 현지인들과 함께 하고 있다(아래).

 

 

창설과 영성

 

라틴어 'Societas Verbi Divini'(영어로는 DIVINE WORD MISSIONARIES)의 약자, 'SVD'라고도 불리는 '말씀의 선교 수도회'는 모든 영성과 활동의 뿌리를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요한 1, 1)에 두고 있다.

 

우리와 친교를 이루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그 말씀이 육화의 총체인 삼위일체 신비에서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셨고, 바로 그러한 삼위일체 신비를 선교회가 따라야할 가장 확실한 선교 지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창설자는 지난 10월 5일 시성된 성 아놀드 얀센 신부. 1837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사제생활을 통해 교회의 열성적인 발전과 특히 해외선교에 대한 원의를 키워갔다. 우선적으로 선교 잡지를 발간, 해외 선교에 대한 인식을 심고자 노력했던 얀센 신부는 이를 토대로 선교사 양성을 위한 신학교 건립을 추진해 나갔다.

 

당시 독일 내에서는 선교 신학교 건립이 금지된 상황이어서 얀센 신부는 독일지역 바깥으로 눈을 돌렸고 마침내 1875년 네덜란드 슈타일에 선교 신학교를 설립, 선교사 양성을 시작했다. 4년이 지난 후에는 요한 밥티스트 신부와 요셉 프라이나데메츠 신부를 첫 선교사로 중국 산뚱 지역에 파견하기에 이른다.

 

말씀의 선교수도회가 지향하는 '선교'의 궁극적 모습은 친교를 위해 사람이 되시어 인간으로 생활하신 '말씀'(Divine Word)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과 모든 사람이 이뤄내는 친교의 성실한 일꾼이 되는 것이다.

 

수도회 회원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삶과 사명은 바로 그들의 삶이고 사명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님을 따르며 그로 인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고 다른 이들을 충만한 삶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어느 교회에 보내지든지 복음을 선포하며 모든 이들이 구원의 길에 이르도록, 또한 말씀의 지력과 성령의 은총으로 죄의 어두움에서 자유로워지도록 한다는 목표도 지니고 있다. 그런 면에서 선교 사업은 이 수도회의 알파요 오메가다.

 

국제 공동체로 구성되는 말씀의 선교수도회는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의 살아있는 상징을 드러내는 모습이기도 하다. 주님과 수도회의 친교 그리고 서로 또 다른 사람과의 친교를 지향하는 이들은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말씀을 경청하면서 성령의 기쁨 안에 함께 기도함으로써 더욱 깊음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창설자 성 아놀드 얀센 신부는 회원들에게 선교사의 필요한 덕목은 인내와 확신, 거짓된 희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위기에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굳건한 신뢰라고 가르쳤다. 그것은 또한 기도를 통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라고 설파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전파는 자신의 나라, 자신의 교구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보편 교회(Ecumenism)로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영적인 욕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던 창립자는 생전에 성 미카엘 선교 신학교 (St.Michael's Mission Seminary,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다섯 개의 선교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첫 선교사가 양성되고 120여년이 지난 현재, 전세계에는 100여개 양성의 집에서 세상 끝날 까지 세상 어디든 달려갈 선교사들이 양성중이다. [가톨릭신문, 2003년 11월 2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말씀의 선교수도회 (하)

 

 

수원교구 왕림에 소재한 어린이 위탁가정 시설 성 마르첼리노의 집 아이들과 함께 한 회원들(위).


- 권혁재 안드레아 회원의 서원갱신식 장면(아래).

 

 

사도직 활동

 

말씀의 선교수도회 선교사들은 그리스도의 상징인 십자가를 삶의 지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며, 그런 면에서 선교사의 삶이란 다양한 문화 인종 언어의 벽을 넘어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적 문화안에서 모두 하나가 될 때 그 가치가 충만해 질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특히 65개국에서 모인 국제 공동체라는 특징은 다른 언어로부터 모인 사람들이 어울려 한 팀을 이루고, 하느님 왕국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분열된 세상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대 세계에 '일치'의 가능성과 타당성을 드러내는 구체적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19일 창설자 아놀드 얀센 신부와 함께 시성된 말씀의 선교 수도회 첫 선교사 성 요셉 프라이나데메츠 신부는 수도회 선교 영성을 세상과 교회 안에 증거한 대표적 인물로 지칭된다.

 

1879년 중국에 파견, 29년 동안 중국에서 활동했던 그는 190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폭적인 믿음과 확고한 소명으로 중국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으며 생전에 한번도 중국을 떠난 일이 없었다. 생의 마지막까지 생활은 물론, 외모까지도 철저한 중국 사람으로 변모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의 온전한 변모는 수도회원들의 영원한 모범이며 과제로 전해지고 있다.

 

외국 선교사들을 전통 종교와 중국 권위에 도전하려는 사람들로 오인하던 당시 중국 상황에서 온갖 고난과 박해를 겪으면서도 중국 선교를 포기하지 않았던 프라이나데메츠 신부는 주교 서품 권유를 받고서도 그저 '요셉 신부'로 불리기를 청했다.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저는 중국과 중국인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천번이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라고 자주 선교사로서의 각오를 밝혔던 그는 중국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한 자리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파할 만큼 철저한 선교사의 삶을 살았고 의화단 난을 당해서도 신자들과 함께 있기위해 자신의 소임지를 떠나지 않았다.

 

현재를 사는 말씀의 선교수도회 회원들은 자신들의 사명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끝나지 않는 영원한 것으로 본다. 삼천년기를 지내면서 보다 더 큰 희망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 인류안에서 모든 곳이 자신들의 자리임을 기억하고 있다. 

 

말씀의 선교수도회 한국 진출은 1984년 8월 24일 당시 수원교구 교구장이었던 김남수 주교 초청으로 이뤄졌다. 한국인 선교사 양성에 주력하며 본당사목을 통해 한국 문화와 정서를 익히며 수도자 평신도들을 위한 피정지도 영성 상담 등에 주력했던 수도회는 현재 외국인 노동자 사목 '갈릴래아' 안산 외국인 사목센터와 수원교구 왕림에서 어린이 위탁가정 시설 '성 마르첼리노의 집'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이들과의 연대를 통한 사회 정의 평화 분야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13명의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한국지부는 두 명의 한국인 선교사를 사제양성 차원에서 미국에 파견했다. 또한 세 명 신학생이 호주에 유학 중이고 서원자 한명은 대만에서 선교실습 중이다. [가톨릭신문, 2003년 11월 9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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