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611.....바르나바사도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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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6-11 ㅣ No.1785

바르나바사도축일(0611)

사도행전 11,21-26;13,1-3         마태오10,7-13

주제 : 둘째나 보조자로 산다는 것

둘째가라고 하면, 누구나 서러운 것이 사람의 삶일 것입니다. 경쟁사회라고 하는 세상에서, 또 누구나 1등을 목표로 살고, 남들을 따라 사는 것보다 남들을 인도하는 것이 삶의 재미를 느낀다고 말하는 세상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2등의 삶도 있는데, 그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선택하겠느냐고 물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할까요?


이 질문에 대답이 금방 나올 성격은 아닙니다. 이런 질문이야 말로 때가 있는 것이고, 그렇게 가정하는 질문에 대답은 쉽사리 나올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1등을 찾든지 2등을 하든지 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오늘은 바오로사도를 그리스도교회공동체로 이끌었던 사람이었지만, 바오로사도의 그늘(!)에 가려 살았으면서도 아무런 불만을 갖지 않았던, ‘바르나바사도의 축일입니다. 이렇게 부르는 바오로사도나 바르나바사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셨던 12사도에는 들어가지 않는 사도들입니다. 사도라는 이 말은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적용된 용어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선택을 입었던 12사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범위가 넓어진 표현입니다.

사람이 2등으로 살아도 아무런 불만이 없는 삶을 우리는 오늘 기억하는 바

르나바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마음자세와 태도를 가지면, 앞으로 나서지 않고 둘째로 살아도 아무런 불만이나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질문은 합니다만, 세상의 논리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2등은 패배자요 실패자라고 말하는 것이 세상의 논리이지만, 신앙의 논리에서는 둘째도 첫째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고, 같은 영예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사실입니다. 바라보는 기준이 다르니, 판단도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조하면, 세상의 기준이 나을까요, 아니면 신앙의 기준이 낫겠습니까?


세상의 논리는 주었으면 받을 권리를 계산하지만, 신앙의 논리에서는 내가 받은 것을 공짜로, 또 무료로 나누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들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가능할까요? 설사 내가 공짜로 얻었기로서니, 그것을 남에게 대가를 받지 않고 줄 수 있을까요? 신앙의 논리와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삶에서 행동으로 드러내야하는 소리일 때 좀 더 심각하고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일을 세상에 하고 있다면, 그 세상의 일을 하는데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내가 가지려고 할 때 내게 다가오는 것이라는 설명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 말이 어디까지 우리 삶에 적용되는 것인지 말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내가 평화를 선포하는 사람으로 살려면, 그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평화를 누리는 사람이 돼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은 내가 올바른 삶의 태도를 가질 때에 내게 실현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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