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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가르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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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4-27 ㅣ No.550

[현대교회의 가르침] (14) ‘생명을 주시는 주님’ (1)


하느님의 모든 구원활동 원리이신 ‘성령’

 

 

1986년 성령 강림 대축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년)는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을 발표하였다. 이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다섯 번째 회칙으로서, 현대 교도권의 가르침 중 유일하게 성령에 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8~1903년)의 1897년 회칙 ‘신적 책무’도 어느 정도 성령에 관해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은총론적 관점에서 작성된 것이기도 하다. 1979년의 첫 회칙 ‘인간의 구원자’가 성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1980년의 두 번째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이 성부에 관해 고찰한다면, 이제 1986년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통해 성령에 관한 성찰을 제시함으로써,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한 삼위일체론적 묵상의 완결이 이루어진다.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에 나오는 신학적 주제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것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계승’, ‘창조와 육화의 단일성에 관한 성령론적 전망’, ‘세상의 죄(罪)를 드러내시는 성령’,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성령론적 성찰’의 네 가지이다. 이 네 가지 중심 주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 공통된 특징은, 그 성령론적 성찰이 기존의 신학적 주제들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관점을 보완하여 이루어지면서 궁극적으로는 구원경륜적 삼위일체 차원의 묵상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계승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은 기본적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계승’이라는 맥락에서 발표되었다. 그 서문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문헌의 역사적 배경으로 레오 13세의 1897년 회칙 ‘신적 책무’와 비오 12세(재위 1939~1958년)의 1943년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Mystici Corporis Christi)를 언급한다.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는 ‘교회의 영혼’이며 ‘생명의 원리’인 성령께서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교회 안에서 활동하신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특별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부터 고조된 성령론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다.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년)의 진술을 인용하여, 공의회의 가르침은 성령론의 계발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근에 와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령께 대한 교리에 새로운 관심이 요청됨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의회의 그리스도론, 특히 그 교회론에 이어 성령께 대한 새로운 연구와 신심이 계발되어야 하겠습니다. 공의회의 가르침을 보완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2항) 

 

그런데 여기에서 강조하는 성령론의 계발 촉구는 궁극적으로 삼위일체 신비로의 복귀를 지향한다. 사실, 삼위일체론적 차원의 회복이야말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남긴 가장 핵심적 과제이다. 

 

“이 회칙은 지난 공의회가 남겨 준 유산의 가장 중요한 원천에서 나온 것입니다. 실상, 교회 자체와 세상 안에서 교회의 사명에 관한 공의회의 가르침을 전해 주는 문서들은 복음서, 교부학, 전례학 등의 연구를 통해 하느님의 성삼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우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 성삼 신비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로’라는 정식으로 흔히 표현됩니다.”(2항) 

 

이는 ‘교회 내부의 차원’,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 차원’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교회 문제를 다룬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그 논의의 결과로 발표한 문헌에서 삼위일체론적 차원의 회복과 심화를 요구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공의회 이후에 필연적으로 성령에 대한 회칙이 나오게 되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렇듯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성령론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취지 설명에 뒤이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기본 정신과 성과를 성령론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우리는 모두 그 공의회가 특별히 ‘교회론적’ 공의회였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교회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한 공의회였던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이 공의회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성령론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영혼’인 성령에 관한 진리로 물들여진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구세사의 현 단계에 대해서 ‘성령께서 교회에 말씀하시는 모든 것’(묵시 2,29 3,6.13.22 참조)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그 풍부한 가르침 안에 틀림없이 보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공의회는 진리의 성령의 인도를 받고 그와 함께 증언하면서 성령-파라클레토스의 현존을 특별히 강하게 확인시켰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이 공의회가 어려움을 많이 안고 있는 우리 시대에 성령을 새로이 ‘현존’하게 하였습니다.”(26항)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안을 향한 교회’와 ‘밖을 향한 교회’라는 기본 노선을 따라 개최된 교회론적 공의회인데, 여기에 성령론적 차원 또한 연결되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친교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 안에서 교회를 온전한 진리에로 인도하며(요한 8,31-32 16,13 참조) 그 구원 활동을 주관하시는 성령이라는 점에서, 공의회의 교회론적 관심은 필연적으로 성령론적 전망에로 발전될 수밖에 없었고, 바로 이것이 우리 시대를 위한 공의회의 기여와 공헌인 것이다.

 

 

창조 · 육화 단일성에 관한 성령론적 전망 

 

‘생명을 주시는 주님’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신학적 주제는 바로 ‘창조와 육화의 단일성에 관한 강조’이다. 창조와 육화의 연속성과 단일성은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 안에서 발견한다. 이 회칙의 제3부에서는 2000년 대희년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사건이기에 “직접적으로 그리스도론적인 특성”을 지니지만, 그와 동시에 “성령론적 특성”도 지니고 있음을 설명한다. 강생의 신비는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 “성령의 업적”이기 때문이다. 

 

“강생의 신비는 위격-사랑이시며, 창조되지 않은 선물이시요, 창조계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선물의 영원한 원천이며, 은총계 안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건네주실 때 그 행위의 직접적 원리이시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 주체이신 분, 그런 성령의 업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스스로를 건네주시는 그 자기 증여, 그 선사 행위의 극치가 강생 신비입니다. 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와 탄생은 창조와 구원의 역사 전체에서 성령께서 이룩하신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대희년 경축 사건은 이 업적을 기억할 것이며, 우리가 그 의미를 더 깊이 탐구한다면, 이 업적을 수행해 내신 주인공인 성령의 위격도 같이 기억할 것입니다.”(50항) 

 

여기에서는 성령을 통한 ‘창조와 육화의 단일성’을 강조하며,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를 성령에 의한 하느님 자기 전달 역사의 정점으로 해석한다. 이렇듯 하느님 자기 전달의 원리이자 주체로서 제시된 성령에 대한 해석은 자연스럽게 구원 역사 전반에 걸친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이라는 중요한 신학적 주제에로 연결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이루어지는 성령의 구원적 활동을 설명한다. 

 

“실상, 이 모든 곳, 모든 시대를 망라하고, 모든 사람 안에서까지 구원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 이 활동은 진행되었으며, 이 영원한 구원 계획 안에서 성령의 활동은 강생의 신비와 구속의 신비에 긴밀하게 연결되었습니다.”(53항) 

 

그리고 같은 53항을 통해, 성령께서는 교회의 가시적 경계를 넘어서도 신비로이 활동하심을 말한다. 

 

“우리는 더 긴 안목을 가지고, ‘더 멀리까지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와의 대화 중에 인용하셨던 표상대로,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요한 3,8 참조)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주로 교회를 중심 주제로 해서 모였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령께서 교회의 보이는 몸 ‘밖’에서도 활동하심을 상기시켰습니다.” 

 

이어서 54항에서는 지금까지 창조론, 구원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교회론, 은총론 등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졌던 모든 신학적 논의를 삼위일체론의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결론짓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 역사 안에 은총이 ‘나타나는 일’은 성령에 의해서 성취되었습니다. 이 성령께서는 세상 안에서 이룩하시는 하느님의 모든 구원 활동의 원리이시며, ‘숨어 계신 하느님’(이사 45,15 참조)이신데, 이분께서는 또 사랑과 선물로서 ‘온 세상에 충만’(지혜 1,7 참조)하십니다.” 

 

이러한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의 신비가 이 회칙의 가장 원천적인 신학적 기반인 것이다. 이 회칙에서 그리스도론과 성령론을 연결시키는 것은 바로 “구원의 경륜 속에서 성령과 그리스도 사이에는 내밀한 끈으로 이어진 관계”(7항)가 있음에 대한 확신이며, 동시에 그 “신적이고 삼위적인 원천의 단일성”(7항)에 대한 믿음이다. 이러한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서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현재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서, 성령을 통해서 성취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이제 교회의 기억 안에서 되살아나 현존하게 되는 것 역시 성령을 통해서인 것이다(51항 참조).

 

* 박준양 신부는 1992년 사제로 서품,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신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는 박준양 신부는 신학과사상학회 편집위원장 및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FABC 신학위원회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4월 27일, 박준양 신부]

 

 

[현대교회의 가르침] (15) ‘생명을 주시는 주님’ (2)


성령은 하느님께서 피조물에 내리시는 사랑의 원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86년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제2부는 “세상의 죄를 밝히 드러내 보이시는 성령”이란 제목으로 죄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 이는 인류의 역사와 구원의 경륜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죄의 실재에 대한 성령론적 해석과 전망이다. 이러한 신학적 성찰은 “죄를 드러내는 일은 동시에,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용서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한 것”(31항)이라는 결론에 최종적인 초점을 맞춘다.

 

 

세상의 죄를 드러내시는 성령 

 

‘죄를 드러내시는 성령’이란 신학적 개념은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요한 16,7-8 참조)에 근거한다. 그런데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에서는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가 “세상의 유죄성(有罪性)을 들어 밝힌다”로 해석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27항 참조). 이 회칙은 성령께서 죄를 드러내심은, 먼저 모든 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맺고 있는 관계를 보여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성령께서는 오순절 날에, 골고타의 죄에 대해서, 무고한 어린 양의 죽음에 대해서, ‘세상’의 유죄성(有罪性)을 들어 밝히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는 인간 역사의 어떤 시기에 어떤 장소에서 저질러진 것이라도, 모든 죄에 대해서 같은 역할을 하시어 세상의 유죄성을 밝히십니다. 유죄성을 밝힌다는 말은 죄라고 하는 악을, 어떤 악이든 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관련해서 보여 주는 것을 뜻합니다. 죄는 그것이 숨겨 간직하고 있는 악의 신비(2테살 2,7 참조)로 해서 자기 고유한 악의 모든 차원을 다 가진 채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떠나서는 인간이 죄의 이런 차원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32항)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맺는 관계 안에서 죄의 실체가 드러나게 됨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나는 죄의 정체란 무엇인가? 이를 창세기(1-3장 참조)와 바오로 서간의 증언에 근거하여 순종과 불순종의 대비로 설명한다. 

 

“성 바오로께서 첫 아담의 ‘불순종’에 대응하여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의 ‘순종’을 대치시켜 놓은 것도 그런 뜻에서였습니다. ‘죽음에까지 이르는 순종’(참조 : 로마 5,19 필리 2,8)을 그리스도께서는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한 처음에 관한 증언에 따르면, 원초적 실재 그대로의 죄는 인간의 의지 - 그리고 양심 - 안에서 ‘불순종’, 곧 하느님의 의지를 거슬러 인간이 자기의 의지를 내세우는 일로 이루어집니다. 이 원초적 불순종은 하나의 거절 행위를 전제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진리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전제합니다.”(33항) 

 

여기서는 그리스도 십자가와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나게 되는 죄의 실체와 정체를 원죄에 관한 성찰을 통해서 밝힌다. 즉, 모든 인간적 죄의 근원은 창조주 하느님의 말씀에 담겨 있는 진리를 근본적으로 거부함이라는 사실을, 아담의 불순종과 십자가상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그리스도의 순종을 대비시키며 보여준다. 결국, 죄의 본질과 정체는 “피조물인 인간이 하느님의 의지, 하느님의 구원적 의지를 거슬러서 하는 의지적 행위”(39항)인 것이다. 

 

성령께서 죄를 드러내신다는 것이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 십자가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 근원에 있는 악의 실재, 즉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거부와 불순종을 밝혀내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 궁극적인 의미는 바로 성령께서 죄악의 고통을 구원적 사랑으로 바꾸어 주심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근원적이고도 궁극적인 차원의 성찰은 인간의 죄 때문에 고통 받으시는 하느님에 대한 묵상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느님의 깊은 속을 헤아리지 않고서는’ 죄가 지니고 있는 악의 참혹한 실체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죄를 들어 밝힌다’는 말이 고통을 계시한다는 뜻도 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성경이 의인법적으로 생각하여 죄가 ‘하느님의 깊은 속’에 끼친 것으로 묘사하는, 어떤 의미로는 성삼의 마음속 깊이에 있는 그 형용할 길 없는 고통을 계시한다는 뜻도 같이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교회는 계시로부터 빛을 받아서, 죄란 하느님께 끼쳐 드린 모욕이라고 믿고 선언합니다.”(39항)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한 강생의 신비에 관한 성찰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죄를 밝히시는 분일뿐 아니라 곧 그 죄를 넘어서는 구속적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나오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곧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39항)이시기 때문이다. 즉, 성부와 성자의 사랑이 성령을 통하여 표출되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의 이 헤아릴 수 없고 측량할 길 없는 ‘고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구속적 사랑의 경륜이 탄생하도록 촉진했습니다. 하느님에게, 사랑이신 성령께서는 인간의 죄를 생각할 때 그것이 구원적 사랑을 더욱 풍성히 베풀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하는 일치 속에서, 성령께서는 구원의 경륜을 일으키시어 인간의 역사를 구속의 선물들로 채워 주십니다. 성령께 ‘죄를 들어 밝힌다’는 일은 ‘헛된 일에 묶여 있는’ 창조계와 특히 인간의 가장 깊은 양심 앞에서, 하느님의 어린 양에 의해 죄는 정복되었음을 밝혀 주는 일을 의미합니다.”(39항) 

 

이 대목은, 죄에 대한 성령론적 성찰이 최종적으로는 삼위일체적 차원의 구원경륜에로 귀결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성부의 고통과 성자의 강생이 하느님의 본질인 사랑에서 비롯하는 것이며, 그러한 신적 사랑의 위격적 표출이 바로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삼위일체적 구원경륜 안에서 인간의 죄가 밝혀지고 극복된다는 것이 바로 그 핵심 요점이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죄를 드러내시는 성령께서는 바로 “성삼적 선물이며, 한편으로는 하느님께서 피조물들에게 내리시는 사랑의 원천”(39항)인 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성령론적 성찰 

 

‘생명을 주시는 주님’에는 또한 탁월한 인간학적 성찰이 담겨 있다. 그 요지는, 인간은 성령 안에서 하느님과 맺게 되는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의 참다운 자유와 존엄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성령을 통해서만 인간의 죄가 근원적으로 드러나고 사해진다는 인간학적-성령론적 성찰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망이다. 

 

“인간은 성령 안에서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인간성을 제대로 파악하게 됩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느님의 모습이고 그분의 모습을 따라 창조된 존재이지만, 그 사실이 그제야 제대로 파악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에 관한 이 진리는 인간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거울삼아, 이를 끊임없이 새로 발견해야 합니다. 인간은 이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배우고, 그분께서 주신 성령을 통해 이를 각자의 삶에서 실현합니다. 하나이시며 삼위이신 하느님께서는 자체로서는 위격 상호 간의 선물이라는 초월적 실재로서 존재하시고, 성령 안에서 인간에게 자신을 선물로 건네주심으로써 인간 세상을 안으로부터 변화시키십니다.”(59항) 

 

이는 인간 존재에 관한 성령론적 성찰을 제시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창세 1,27) 창조되었지만, 그러한 자기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것은 바로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과 맺게 되는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1933-) 추기경은 명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연약한 인간을 도우러 오시는 하느님의 영에 자신을 개방하는 경우에만 우리가 인간 현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여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445쪽 참조). 즉,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시며,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근원적 존엄성을 발견하게 되며, 이를 각 개인의 삶 안에서 진정한 자유로 실현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학적-성령론적 성찰은 종국에 가서 삼위일체론의 차원에로 수렴된다. 즉,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관한 전망을 삼위일체 신학의 주요 원리들을 통해서 설명한다. 위 인용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느님께서는 자체로서는 위격 상호 간의 선물이라는 초월적 실재로서 존재하시고”라는 문장을 통해 ‘내재적 삼위일체’의 차원에서 하느님의 세 위격들 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내재성’의 신비를 설명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인간에게 자신을 선물로 건네주심으로써 인간 세상을 안으로부터 변화시키심”이라는 표현을 통해서는,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위격적 특징인 성화(聖化)의 활동을 묘사한다. 다시 말해서, ‘성령을 통한 인간 존엄성과 자유의 발견’이란 주제를 삼위일체론 차원에서 근원적으로 재조명하는 것이다. 

 

이처럼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을 주시는 주님’은 인간과 세상 안에 신비로이 현존하시며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대하여 설명한다. 이처럼 성령에 관한 신학적 성찰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현존과 구원 역사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갖게 될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5월 4일, 박준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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